주간동아 986

2015.05.04

문 너머 동화 세상이 열린다면

뮤지컬 ‘쓰루 더 도어’

  • 구희언 주간동아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5-05-04 10: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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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결혼 생활, 행복한가. 고려대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페미니스트 이코노믹스’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결혼에 대한 만족도는 여성의 경우 2년 후 사라지지만 남성은 결혼 생활 내내 지속된다고 한다. 불같이 사랑해서 결혼했다 해도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게 권태기다. 국내에서 첫선을 보인 뮤지컬 ‘쓰루 더 도어’ 주인공인 샬롯과 레니도 권태기에 빠진 흔한 부부 가운데 하나다.

    7년 전 단편소설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지만 이후 이렇다 할 작품을 쓰지 못해 집필에 매진하는 전업주부 샬롯. 승진을 위해 끊임없는 야근과 출장을 마다하지 않는 건축가 레니. 연애할 때 무도회장에서 밤새워 춤추고 사랑을 나누던 남녀는 사라지고, 이제 집에는 피곤에 찌든 남편과 애정 결핍으로 의기소침한 아내만 있다. 샬롯은 남편과 사이가 벌어지자 소설 쓰기에 더욱 집착한다. 그러던 어느 날, 평범했던 다용도실 문을 열자 자신이 집필 중인 소설 속 세계가 펼쳐진다.

    엘리베이터나 옷장 문 등을 열었을 때 현실과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설정은 언제 봐도 지겹지 않다. ‘쓰루 더 도어’에선 평범한 다용도실 문이 샬롯의 환상세계로 이어지는 워프 장치다. 이곳에는 일과 성공에 눈먼 남편이 아닌, 소설 주인공이자 환상세계 왕자인 카일이 살고 있다. 카일은 남편과 달리 샬롯의 몸짓 하나하나에 신경 쓰고, 그의 말에 집중하며, 그를 온전한 여인으로 바라봐준다. 초기 샬롯은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이중생활을 즐기지만, 점차 동화 속 세상으로 도피하듯 젖어 들어간다.

    작품은 영국 뮤지컬 작가 및 작곡가들을 위한 네트워크인 퍼펙트 피치(Perfect Pitch)를 통해 수정, 보완을 거듭하며 만들어졌다. 2008, 2009년 런던 쇼케이스, 2011년 미국 뉴욕 리딩을 거친 후 국내 기획 및 제작팀이 협력해 3월 서울에서 첫 공연을 했다. 창작이 아닌 라이선스 공연 중 해외에서 작업을 거치고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건 이례적인 경우다. 국내 관객에 맞춰 새로운 곡을 추가하고 대본을 수정하는 등 현지화를 거쳤다.

    여성이라면 공감할 만한 일과 사랑에 대한 고민을 다루는 작품의 여주인공 샬롯은 여성 관객이 자신의 처지를 빗대라고 만들어진 인물이다. 그러나 직장여성이라면 낭만주의자 샬롯보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퇴근했다가도 돌아와 오늘의 남은 업무를 살피는 레니에게 더 몰입할 것이다. 레니가 일에 집착했던 이유도 결국 샬롯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였다. 2막에서는 레니마저 다용도실 문 너머 세상의 존재를 알게 되고, 동화 속에서 삼자대면이 이뤄진다. 여성 관객 위주로 돌아가는 공연계에서 오랜만에 만난, 남성 관객도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6월 7일까지,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



    문 너머 동화 세상이 열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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