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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는 왜 망했나

미국은 악할 수 없다?…대통령직에 대한 신화 혹은 착각

  • 황일도 기자 · 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는 왜 망했나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는 왜 망했나
그는 악인이었다. 약점을 쥔 어제의 동업자를 자기 손으로 직접 살해하는 일조차 주저함이 없는 냉혈한이었다. ‘가차 없는 실용주의(ruthless pragmatism)’라는 모토를 목에 걸고 민주당 원내총무에서 부통령으로, 다시 대통령 자리를 향해 질주하는 동안 워싱턴 정치의 부패와 무기력은 그의 가장 큰 자양분이었다. ‘절대악’의 화신과도 같던 행보는 그대로 미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지 폭로하는 상징이었다.

그가 변했다. 음모와 협잡으로 선거 한 번 없이 대통령 자리를 거머쥔 그는, 이제 중동에 투입한 비밀 군사작전에서 사망한 병사의 운명에 고뇌하고, 러시아 대통령의 반인권적 독재를 견제하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오랜 분쟁을 해결하고자 당사자들을 설득한다. 그의 목적은 더 큰 권력이 아니다. 그는, 정말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같은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돌변이다.

‘명백한 운명’의 나라라는 신화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 인터넷 동영상 스트리밍업체 넷플릭스(Netflix)가 2013년 시작한 이 드라마 시리즈는 인터넷 콘텐츠로는 사상 최초로 에미상과 골든글로브 주요 부문을 수상해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주간동아’ 929호 관련 기사 참조). 주연 케빈 스페이시, 제작총괄 데이비드 핀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를 통해 광팬임을 자처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쟁쟁한 이름이 곳곳에 등장하는 이 드라마의 시즌3은 온 미국이 기다려온 대박 상품이었다.

2월 27일(현지시간), 마침내 뚜껑이 열렸다. 매주 한 편씩 방영하는 고전적인 방식 대신 넷플릭스는 한 시즌 13개 에피소드를 한꺼번에 올리는 방식을 택해왔다. 그러나 한 달여가 지난 지금 반응은 기대 이하다. 인터넷과 SNS에서의 관심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주요 언론에 실린 평론가들의 평가 역시 박하기만 하다. 중국 인터넷 동영상 공유 사이트에서조차 1~2위를 다투던 인기는 과거 영광일 뿐이다. 가혹하게 말하자면 처참한 실패다.



도대체 왜? 미국 내 비평가들은 크게 두 부분에 주목한다. 먼저 시즌1과 2에 비해 투입된 예산이 크게 줄었다. 당초 넷플릭스는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의 간판이던 이 드라마에 엄청난 물량을 쏟아부었지만, 어느새 유료가입자 5700만의 세계 최대 스트리밍업체로 안정기에 접어든 지금으로서는 과감한 베팅을 이어나갈 이유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한계는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 행정부에 대한 제작진의 과도한 의식. 국내 경제 침체는 물론 러시아와의 갈등 같은 주요 쟁점에서 현실 속 정부를 ‘배려’하다 보니 시리즈 고유의 극단적 날카로움이 무뎌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외자의 시선으로 보면 ‘진짜 이유’는 더욱 쉽게 모습을 드러낸다. 한마디로 ‘미합중국 대통령직(presidency)’에 대한 미국 국민의 신화 혹은 착각이다. 백악관 주인이 된 주인공 프랜시스 언더우드가 악마와 다름없는 이전의 행태를 지속한다는 건 미국 시청자의 정서상 받아들일 수 없는 설정이었던 셈이다. 정치인의 악행은 욕을 할지언정 흥미로운 구경거리지만, 대통령의 행동과 판단은 인간적 갈등과 고뇌의 산물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다.

이는 시즌3의 주된 소재로 국제정치가 전면에 등장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현실 속 푸틴 대통령과 얼굴마저 비슷해 보이는 러시아 대통령은 모스크바에서 동성애자 인권시위를 벌이던 미국 국적의 시민운동가를 투옥하고, 언더우드 대통령 부부는 이를 해결하고자 러시아로 날아간다. 그러나 석방 조건으로 원치 않는 성명서 낭독을 요구받은 시민운동가는 끝내 자살을 택하는 파국. 두 대통령은 막후 협상을 통해 그의 자살을 ‘미화’하고 더는 문제 삼지 않기로 합의하는 가장 ‘하우스 오브 카드’다운 결정을 내린다.

갈 길 잃은 거인의 뒷모습

다음 순간 상황은 급변한다. 기자회견장에 나선 영부인 클레어가 돌연 눈물을 흘리며 사건의 진실을 공개한 것. 당연히 러시아 대통령의 분노는 정점을 찍는다. 하지만 놀랍게도 언더우드 대통령의 선택은 사실상 영부인의 분노를 추인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악화된 미국과 러시아 관계는 대통령 부부가 ‘대의’를 위해 엄청난 정치적, 개인적 희생을 감수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첨예하기 짝이 없는 국제관계 속에서 미국은 언제나 ‘다른 악’에 맞서 정의를 위해 싸우는 존재이며,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손해도 기꺼이 감수해야 하는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의 나라라는 신화. 국외자에게는 현실과 거리가 있게 느껴지는 이러한 사고방식은 할리우드는 물론 미국 학계에서조차 ‘신성불가침한 진리’에 가깝다.

예컨대 언더우드 대통령이 상대국 정상의 약점을 이용해 상황을 돌파하거나, 반대편 관계자들을 매수 혹은 협박해 판세를 역전한다고 생각해보자. 이것이야말로 그가 앞선 시즌에서 보여준 최대 장기이자 유일한 행동패턴이지만, 미국이 국제관계에서 이렇듯 냉혹한 정치를 구사한다는 주장은 고스란히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비판적이거나 적대적인 제3세계 국가들의 고정 레퍼토리다. 워싱턴의 강대국 일방주의와 독선에 대한 지적이 넘쳐나는 21세기 현실에서, 드라마 속 대통령이 이를 고스란히 체현하는 것은 불가능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갈 길 잃은 드라마는 ‘절대악’이었기에 흥미로웠던 캐릭터를 놓치고, 주인공이 직접 시청자에게 내밀한 속내를 들려주는 방백 같은 짭짤한 도구마저 힘을 잃는다. ‘선한 미국과 악한 러시아’라는 고색창연한 설정에 흥미를 느낄 시청자는 많지 않다. 이렇게 보면 다시 대통령의 재선을 향한 국내 정치 싸움에 몰두하는 시즌3의 마지막 3~4개 에피소드가 훨씬 활력 넘치는 것은 당연한 일. 요컨대 미국이 이끌어온 세계질서가 실제로는 얼마나 ‘하우스 오브 카드’스러운지를 폭로하기란 애초부터 기대난망이었다는 뜻이다.

썩어가는 워싱턴 정치에 대한 풍자는 지지를 받지만, 미합중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은 차마 담아낼 수 없는 한계. 이는 결국 2015년 미국이 끌어안고 있는 위기의식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아직 우리의 세기는 끝나지 않았다’고 끊임없이 되뇌지만, 지구촌 곳곳에서 울려대는 경고음은 이제 지겨울 정도다. 그리하여 ‘하우스 오브 카드’의 위기는 오늘 미국의 위기를 보여주는 또 다른 데칼코마니다. 스스로의 한계에 갇혀 더 많은 것을 놓치고 마는 또 다른 의미의 ‘명백한 운명’이다. 갈 길을 잃은 거인의 뒷모습이다.



주간동아 2015.04.13 983호 (p64~65)

황일도 기자 · 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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