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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읽어주는 남자

22년 만에 화가의 꿈을 이루다

앙리 루소 ‘꿈’

  • 황규성 미술사가 samsungmuseum@hanmail.net

22년 만에 화가의 꿈을 이루다

22년 만에 화가의 꿈을 이루다

‘꿈(The Dream)’, 앙리 루소, 298.5X204.5cm, 1910년,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앙리 루소(Henri Rousseau·1844~1910)의 작품 ‘꿈’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야드비가’라는 여인의 꿈속 풍경을 그린 것입니다. 그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화면 왼쪽 중앙에 있는 누드의 여인입니다. 짙은 색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 가슴까지 늘어뜨린 이 여인은 긴 소파 위에서 몸은 정면을, 고개는 화면 오른쪽을 향해 있으며, 두 다리를 포갠 채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습니다. 오른팔은 상체를 지지하려고 바닥을 짚고 있고 왼팔은 소파 등받이 위로 길게 뻗어 걸친 채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여인은 푸른빛과 붉은빛의 큰 꽃들에 둘러싸여 있고, 그 뒤 우거진 수풀 사이로 오렌지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나뭇가지에는 금빛과 은빛 날개를 가진 새가 우아하게 앉아 있고, 검은 원숭이들이 매달려 있으며, 나무 사이로 몸을 숨긴 코끼리는 머리만 간신히 보입니다. 여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 동그란 눈을 번뜩이고 있는 사자 두 마리가 있고, 그 앞으로 황갈색의 뱀 한 마리가 지나갑니다. 사자들 뒤에서는 검은 피부의 신비한 여인이 피리를 불고 있는데, 이 여인이 야드비가의 그림자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야드비가는 루소가 젊은 날 헤어진 연인이거나 일찍 세상을 떠난 아내 클레망스, 아니면 죽은 그의 딸이라는 등 여러 해석이 있지만 누군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루소는 이 그림 옆에 야드비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시를 붙여놓았는데, 시의 내용으로 추측해보면 그녀의 꿈과 현실이 결합된 공간을 그린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현실에서 그녀는 프랑스 파리의 어느 거실 소파 위에 누워 있지만, 그 주변을 둘러싼 밀림은 존재하지 않는 꿈속 풍경이자 루소 자신의 꿈의 공간인 것이죠.

파리 센 강 부두 세관의 하급 공무원이었던 루소는 27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화가가 된다는 것은 사치일 뿐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루소는 25세에 15세인 아내 클레망스와 결혼해 7명의 자식을 둔 가장이었기 때문이죠. 루소는 평일에 일하고 주말이면 미술관에 가서 대가들의 그림을 모사하며 독학을 해 ‘일요일의 화가’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그렇게 그림을 배운 지 22년 만에 화가로 정식 데뷔하는데 당시 그의 나이 49세였습니다.

이 그림은 루소가 사망하기 몇 달 전 그린 것으로, 그의 마지막 작품이자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한 화가, 세관원이란 이력으로 루소의 초기 그림은 조롱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극적인 삶을 살았던 다른 후기인상파 화가들과 달리 꿈을 향해 차근차근 자신의 길을 걸었던 루소의 삶이 오히려 그의 그림을 친근하고 특별하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루소는 당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던 경향에 종속되지 않고 그 나름의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이룩했습니다. 특히 전통적 관념이나 이성적 논리에서 벗어나 현실과 꿈의 세계가 공존하는 루소의 그림들은 1920년대 등장한 초현실주의 미술 운동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주간동아 2015.03.23 980호 (p79~79)

황규성 미술사가 samsungmuse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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