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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또 ‘부정부패 척결’ 집권 3년 차 너무 빤한 공식

대통령 지지율 상승시킬 전가의 보도 … 검찰 위상 강화에도 도움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또 ‘부정부패 척결’ 집권 3년 차 너무 빤한 공식

또 ‘부정부패 척결’ 집권 3년 차 너무 빤한 공식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2부는 3월 13일 수백억 원대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고 있는 인천 연수구 포스코건설 송도 사옥을 전격 압수수색했고, 관계자가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회계자료, 내부 서류 등을 박스에 담아 나오고 있다.

지난해 11월 말 불거진 이른바 비선(秘線) 실세의 국정 개입 논란을 불러일으킨 ‘정윤회 문건’ 파문은 정권의 지지기반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비선 실세의 실체는 없다”는 수사당국의 발표에도 정권은 치명적인 내상을 입었다. 새해 들어서는 ‘유리지갑’의 분노를 폭발케 한 연말정산 파동이 있었다. 연달아 카운터펀치를 맞은 정권은 비틀거렸다. 대통령 취임 이후 40%대를 유지하며 견고하게 버티던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일시적으로 30% 아래로 하락했다. 지나온 시간보다 더 많은 임기가 남아 있는 대통령과 정부를 향해 이때부터 ‘레임덕’이란 얘기가 공공연히 회자됐다. 흐트러진 공직기강은 물론 사회기강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박 대통령이 남은 임기 국정을 원활히 운영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 계속됐다. ‘부패와의 전쟁’은 이때부터 잉태됐는지 모른다.

최근 두 달 동안 대한민국 권부(權府)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안대희, 문창극 두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선 실패 이후 삼수(修)만에 정홍원 전 총리가 이완구 총리로 교체됐다. 이어 1년 반 만에 대통령비서실장도 이병기 실장으로 바뀌었다. 우병우 민정수석이 새로 임명됐고, 이후 큰 폭의 검찰 인사가 단행됐다. ‘부패와의 전쟁’을 치를 진용이 갖춰진 것. 3월 12일 의욕에 찬 이 총리의 대국민 담화가 있었다. ‘부정부패 척결’을 강조한 총리의 담화문에는 사정(司正)의 방향과 목표가 분명히 나타나 있다.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방위사업 비리 △국가재정에 부담을 주는 해외자원개발 관련 배임, 부실투자 △경제 살리기에 역행하는 일부 대기업의 비자금 조성 및 횡령 △기강을 흔드는 개인의 사익을 위한 공적문서 유출 등이 그것이다.

비리 창고 대방출?

박 대통령도 직접 나서 부패 척결에 대한 강한 의지를 천명했다. 박 대통령은 3월 17일 국무회의에서 “국방 분야뿐 아니라 우리 사회 각 분야에 켜켜이 쌓인 고질적인 부정부패에 대해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이번에야말로 비리의 뿌리를 찾아내 그 뿌리가 움켜쥐고 있는 비리의 덩어리를 들어내야 한다”며 강력한 사정 의지를 밝혔다.

총리 담화와 대통령의 부패 척결 의지 표명 이후 검찰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압수수색’이란 타이틀을 단 검찰발(發) 뉴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총리 담화 다음 날인 3월 13일에는 수백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포스코건설, 17일에는 비자금 창구로 의심받는 협력사에 대한 압수수색이 있었고, 대통령의 부패 척결 의지 표명 다음 날인 18일에는 자원외교 비리와 관련된 혐의로 경남기업과 한국석유공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됐다. 앞으로 신세계, 롯데, 동부, SK건설 등이 검찰 수사선상에 오를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법조계 한 인사는 “기업들이 ‘창고 대방출’을 하듯 검찰이 그동안 캐비닛에 묵혀뒀던 각종 비리 관련 서류를 이번 기회에 대방출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이 사정의 칼을 빼들면 ‘압수수색’을 당한 해당 기업은 물론, 그 기업과 직간접적으로 관계있는 관가와 정계에서도 비명소리, 곡소리가 나기 마련이다. 검찰이 빼든 사정 칼날이 누구를 겨눌지 재계는 물론 관가와 정계에서도 숨죽여 지켜보는 이유다.

집권 3년 차 들어 ‘부정부패 척결’을 명분으로 한 사정 드라이브를 통해 정국 주도권을 쥐려 한 것은 역대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임기 3년 차이던 2010년 씨엔그룹과 한화그룹에 대한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노무현 정부 때도 집권 3년 차인 2005년 론스타 주가조작 사건을 시작으로 이듬해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 등으로 이어졌다.

“우연과 필연이 겹쳐 사정 국면 조성된다”

또 ‘부정부패 척결’ 집권 3년 차 너무 빤한 공식

이완구 국무총리가 3월 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과거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한 인사는 “사정 국면은 정교한 기획에서 시작됐다기보다 우연과 필연이 겹쳐 이뤄진 측면이 강하다”며 “각종 비리 첩보를 수집해놓고 적당한 기회를 엿보던 검찰과 여론 동향에 민감한 청와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 사정 국면이 조성될 개연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올려 국정운영의 동력을 확보해야 하는 청와대뿐 아니라 사정 드라이브를 주도하는 검찰에게도 현 사정 국면은 대국민 인식을 전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덧붙였다.

한동안 검찰은 사회 정의를 바로세우는 보루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각종 추문으로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왔다. 최근 무죄 판결을 받아 다시 한 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벤츠 여검사’ 사건, 피의자와 성관계를 가져 충격을 줬던 서울동부지방검찰청 검사 사건, 음란 행위로 옷을 벗은 제주지방검찰청장 등 검찰 명예를 실추시키는 크고 작은 일들이 적잖았다. 더욱이 박근혜 정부 취임 첫해인 2013년 국내 10대 뉴스 가운데 하나는 검찰총장의 혼외자 파문이었다.

역사적으로 검찰은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사정의 칼날을 휘두를 때마다 국민으로부터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모래시계 검사’로 명성을 얻은 것도 김영삼 대통령 취임 초 ‘부정부패 일소’ 때였고, 안대희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국민검사’ 칭호를 얻은 것도 2003년 ‘대선자금 수사’가 계기가 됐다. 검찰은 우리 사회에 똬리 틀고 있는 병폐를 해소할 때 국민의 박수와 환호를 받아왔다. 이번 사정 국면은 그동안 각종 추문으로 따가운 눈총을 받았던 검찰이 ‘국민의 검찰’로 거듭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셈이다.

다만 정치권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부정부패와의 전쟁’에 담긴 의도를 순수하게만 보지 않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최고위원은 3월 1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특별히 선언할 것도 없이 일상적으로 해야 할 부정부패 수사를 깡통 두드리며 요란하게 광고하는 것은 지지율 하락이나 조기 레임덕 위기를 사정 드라이브로 반전시키려는 의도가 있지 않은가 걱정”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정부의 부정부패 척결 담화 발표 이후 이명박 정부를 겨냥한 사정 논란이 증폭하는 데 대해 “권력 내부의 부패를 먼저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3월 1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안의 부패는 눈을 감고 밖의 부패만 손을 대니 부패가 계속 이어지는 것”이라며 “공직자 부패를 발본색원하고 권력 내부 부패를 먼저 엄중히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으로의 관심사는 검찰이 빼든 사정의 칼날이 겨냥한 비리의 뿌리가 어디이고, 그 비리 덩어리의 규모가 얼마인지다. 이번 사정으로 정권 지지율이 올라갈지, 아니면 검찰 인기가 올라갈지도 주목거리다.



주간동아 2015.03.23 980호 (p10~11)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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