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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성장통 겪는 한국 뮤지컬

‘창작’을 버려야 사는 이유

민족주의적 발상 벗어나 다양한 텍스트로 글로벌 시장 공략해야

  • 최승연 뮤지컬 평론가·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cocco0815@daum.net

‘창작’을 버려야 사는 이유

‘창작’을 버려야 사는 이유
뮤지컬은 영상예술과 달리 현장감이 생명이다. 뮤지컬 한 편을 보려면 극장에 가서 수많은 인력의 노동력을 비싼 값에 사야 한다. 이런 점 때문에 뮤지컬은 일반 대중의 일상과 괴리되기 마련이다. 일상을 아기자기하게 다루는 TV 드라마와 달리 뮤지컬이 유독 판타지를 즐겨 다루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올해 방송을 시작한 SBS 아침드라마 ‘황홀한 이웃’은 뮤지컬 배우가 직업인 남녀주인공이 등장하는 전형적인 주부용 불륜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창작 뮤지컬 ‘글루미데이’를 적극적으로 PPL 마케팅(영화나 드라마에 협찬 기업의 상품 또는 브랜드 이미지를 끼워 넣는 광고기법)하고 있으며, 실제 뮤지컬 배우 윤희석과 서범석 등이 열연하고 있다. 불륜과 복수가 난무하는 소위 막장 드라마의 배경으로 뮤지컬의 쇼 비즈니스 세계가 선택될 만큼 이제는 대중과 뮤지컬이 일상 속에서 만나고 있지만, 뮤지컬이 소구되는 방식은 여전히 이벤트성이거나 마니아들의 향유로 지속된다.

지난 한 해 인터넷 종합쇼핑몰 인터파크 티켓 사이트에서 티켓이 팔린 뮤지컬은 총 2560편이다. 국내 시장에서 뮤지컬은 여전히 마니악한 장르다. 그럼에도 이토록 많은 작품이 제작, 공연되는 것 자체가 기이한 현상이다. 또한 2013년 말 ‘뉴욕타임스’ 공연 담당 기자 패트릭 힐리의 기획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자본 흐름상 국내 뮤지컬 시장이 더는 로컬 질서로만 유지되지 않고 초국가적으로 주목되는 글로벌 시장이라는 사실 역시 놀랍다. 실제로 국내 자본이 브로드웨이에 투자되고 그 결과물이 브로드웨이의 주류가 된 ‘킹키부츠’ 같은 작품도 생겨나고 있다. 이에 따라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재가 뮤지컬 시장으로 쏠리는 것은 당연지사.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것일까.

위기와 도약의 갈림길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핑크빛 현상과 뮤지컬 시장의 속사정은 전혀 무관하다는 점이다. 줄곧 창의적인 작품을 시도해 독특한 입지를 구축했던 제작사 뮤지컬해븐이 지난해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은 대다수 뮤지컬 제작사의 풍전등화 같은 재정 상태를 잘 보여준다. 창작 뮤지컬의 제작 방법론이 부재한 채 오랫동안 라이선스 뮤지컬의 위용에 짓눌려 있던 국내 뮤지컬 시장의 콤플렉스는 결국 한국 시장을 해외 뮤지컬 수입 및 제작의 각축장으로 만들었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이 세계화 기치를 더 높이 올릴수록 국내에서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뮤지컬은 더는 해외에서 불어오는 ‘소문’이 아니라, 해외여행이 가능한 문화엘리트의 ‘문화자본’이 됐다. 해외 유명 뮤지컬은 뮤지컬의 문화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앞다퉈 수입됐고, 한국이 인터넷 강국이 될수록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 등 전 방위로 포진한 영상물을 통해 마니아를 중심으로 쉽게 소개됐다.



따라서 창작 뮤지컬은 라이선스 뮤지컬과의 극심한 격차 속에서 ‘그럼에도 해야 한다’는 민족주의적 발상으로 만들어졌지만 ‘시도’로 그치기 일쑤였고, 국내 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시장 구조에서 명멸하는 수많은 제작사의 ‘제 살 깎기’식 생존경쟁이 지속돼온 것이다.

창작 뮤지컬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 있다. 현재 국내 뮤지컬 시장은 위기와 도약의 갈림길에 서 있다. 지난해 배우와 연주자들의 임금 체불 문제를 부각했던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의 파행은 시장 위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줬으며, 창작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성공은 창작 뮤지컬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줬다.

여전히 국내 시장에서 라이선스 뮤지컬은 강세이고 창작 뮤지컬은 어렵지만, 창작 뮤지컬의 개발과 제작을 위한 물적 환경을 조성해 크리에이터를 ‘키워내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다면 ‘안정적’ 시장 구조로 돌아설 수 있다는 전망이 가능하다. 안정적이라는 말 속에는 교육과 제도를 포함한 다양한 층위의 내용이 담겨 있지만, 이 모든 것에 앞서 뮤지컬을 어떤 거대 담론이나 정치적 상황의 도구가 아닌, ‘상품화할 수 있는 예술’이라는 이중적 시선으로 사유해야 함을 강박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상품과 예술은 전혀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의 이면이다. 역사적으로 예술은 자본주의의 돈에 의존해왔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 경제학자 타일러 카우언은 “부와 경제적 안정은 예술가에게 사회적 가치를 거부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창작 뮤지컬은 시장 질서와 무관한 ‘예술’을 지향했다. 정치적 목적의 국가 주도 프로젝트로 시작됐기에 태생부터 전통과 역사를 발언해야 하는 중후한 텍스트로 만들어져야 했다. 창작 뮤지컬계의 킬러 콘텐츠로 인식돼온 ‘명성황후’도 명성황후 재조명이라는 역사적 당위성 아래 제작된 것이다. 그러다 ‘뮤지컬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라는 관점에서 ‘뮤지컬 크리에이터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라는 관점으로 전환되면서 창작 뮤지컬에도 ‘감성’을 화두로 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창작’을 버려야 사는 이유
다양한 텍스트 개발로 진화 중

2000년대 중반 이후 많이 만들어진 로맨틱 코미디물은 관객의 감성을 작품이 어떻게 어루만질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이 시기 등장한 뮤지컬 연출가 장유정은 사랑과 인연이라는 화두를 던지며 연대기적 질서를 거부하는 플롯을 장기로 특유의 스토리텔링을 발전시켰다. 뮤지컬이 국가나 공적 이해관계를 떠나 개인의 내밀한 창작 욕구와 결합되기 시작하자 고전을 재맥락화한 ‘날아라, 박씨!’, 영웅을 기억하던 역사에서 동성애의 자장 속으로 역사를 끌어온 ‘풍월주’, 아예 역사 자체를 풍자한 ‘라스트 로얄 패밀리’ 같은 작품도 속속 만들어졌다.

창작 뮤지컬은 나날이 진화 중이다. 진화의 핵심에는 다양한 텍스트의 개발이 있다. 시즌제로 제작되는 ‘셜록 홈즈’ 같은 추리 뮤지컬, 장유정의 ‘그날들’ 같은 주크박스 뮤지컬, 브로맨스와 판타지를 결합한 ‘여신님이 보고 계셔’, 여전한 방법론으로 인식되는 원작의 재창작물인 ‘공동경비구역 JSA’ ‘프랑켄슈타인’ ‘보이첵’ ‘주홍글씨’ 등은 근래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다. 이 중 ‘프랑켄슈타인’은 대극장용 라이선스와 비견될 만한 외견을 갖춘 창작 뮤지컬로, 최근 일본 제작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수출을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올해 창작 뮤지컬은 다양한 인큐베이팅, 크리에이터 지원제도에 힘입어 새로운 소재의 뮤지컬화를 시도하고 있다. 공연을 앞뒀거나 공연 중인 ‘곤, 더 버스커’와 ‘바람직한 청소년’ ‘런웨이 비트’ ‘난쟁이들’ ‘명동 로망스’ 등은 일상과 뮤지컬이 만나는 지점을 포착하거나 현실을 환기하는 판타지를 예고한다.

이러한 진화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결국에는 라이선스 뮤지컬과 창작 뮤지컬이 특별히 구별되지 않고 한국이라는 글로벌한 뮤지컬 시장에서 제작되는 가치중립적 콘텐츠로 존재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이런 순간이 도래한다면 창작 뮤지컬은 비로소 수출을 향한 내적 동력을 제대로 갖추게 될 것이다.



주간동아 2015.03.02 977호 (p64~65)

최승연 뮤지컬 평론가·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cocco081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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