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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영재 우러러보는 사회 부작용은 아이 몫?

사회에 융화 실패로 영재성 포기하기도…인성교육·심리치료 필수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영재 우러러보는 사회 부작용은 아이 몫?

영재 우러러보는 사회 부작용은 아이 몫?

설 연휴에 방송된 SBS 파일럿 예능프로그램 ‘영재 발굴단’. 초등학생 5명이 테스트를 통해 각기 다른 영재성을 발휘해 화제가 됐다.

부모는 자녀가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혼자 깨치고 놀라운 기억력을 보이면 ‘혹시 우리 아이도 영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기 마련이다. 일부 부모는 아이를 영재로 만들겠다며 발 벗고 나선다. 실제로 사교육 중심지인 서울 강남구 대치동과 양천구 목동에는 영재교육원 입학을 위한 입시학원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선행학습이 일반화한 요즘 자녀의 빠른 습득력을 영재성으로 착각한 부모들이 지나치게 앞서 나가는 것이다.

설 연휴에 방송된 SBS 파일럿 예능프로그램 ‘영재 발굴단’이 이목을 끌었다. 방송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초등 1~4학년생 5명의 일상과 영재성을 테스트하는 과정이 고스란히 공개됐다. 출연 학생들은 각기 다른 영재성을 드러내 시청자를 놀라게 했다.

10세 오유찬 군은 수학 관련 전문서적을 어렵지 않게 읽으면서 피타고라스의 정의를 쉽게 설명했고, 동갑내기 권찬혁 군은 1년에 100여 권의 서적을 섭렵해 박학다식한 언어력을 구사했다. 11세 정현승 군은 한자 5000자를 암기하고 최연소로 한자사범 자격증을 따낸 이력의 소유자였고, 8세 김은지 양은 바둑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프로 9단을 이기는 실력을 갖췄으며, 10세 박소윤 양은 평소 산만해 보이지만 집중할 때는 놀라운 암기력을 보였다.

방송에 출연한 영재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선발된 걸까. 이 프로그램을 연출한 김재원 PD는 “영재라고 소문난 아이들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다”고 했다. 가장 먼저 살펴본 것이 각종 경시대회 입상 리스트.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름이 있었는데 수학 과목에서 영재성을 보인 오유찬 군이었다. 김 PD는 “목동 지역에서 워낙 유명해, 이곳에 사는 우리 회사 직원도 오군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뛰어난 과제 집착력과 승부욕



제작진은 다양성을 위해 분야별로 영재를 찾았는데 그 과정에서 바둑계에서 이름난 초등학생을 만났다. 서울 지역 바둑 전문가들에게 추천을 부탁했더니 뜻밖에도 전주에 사는 김은지 양을 추천한 것. 한자 신동을 찾는 과정에서 제작진은 제주 지역 신문에 등장한 정현승 군의 이름을 발견했다. 김 PD는 “아이를 만나러 제주에 갔는데 사교육을 전혀 접할 수 없는 시골 아이라 더욱 놀랐다”고 말했다. 정군은 최근 핵물리학에 빠져 스스로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고 원리를 탐구하고 있단다.

방송에서 각종 물고기와 버섯 이름을 줄줄 외우고, 어른 뺨치는 어휘력을 구사한 권찬혁 군은 일선 교사의 추천으로 찾아냈다. 김 PD는 “권군의 독서량은 일반 초등학생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가수 박상민의 딸 박소윤 양은 SBS 예능프로그램 ‘붕어빵’에 출연해 얼굴이 알려졌는데 김 PD는 첫 만남에서 “아이가 너무 산만해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가 아닐까 의심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막상 과제가 주어지면 놀라운 집중력을 보였고 이해력도 비상했다고. 반신반의하던 부모가 기관에 데려가 영재검사를 해본 결과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출연 학생들을 지켜본 김 PD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모두 스스로 관심 분야에 빠져들었다는 것. 그는 “본인이 꽂혀야 한다는 가정이 있었으나 모두 무서울 정도로 집중력을 보였고, 맡은 과제를 해내려는 집착력이 높았으며, 지지 않겠다는 승부욕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학생들을 검증한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각기 다른 분야에 관심을 보였지만 본인이 즐기면서 탐구한다는 점, 단순히 습득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분야를 넓혀간다는 점 등이 공통적으로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영재 우러러보는 사회 부작용은 아이 몫?

6세 나이에 일본의 한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 미적분 문제를 풀면서 천재소년으로 불렸던 김웅용 신한대 교양학부 교수.

반면 영재의 부모들은 이렇다 할 공통 특성이 없었다. 김 PD는 “부모가 교사인 경우에는 아이를 이끌며 학습을 지도해줬지만, 일부 부모는 ‘아이가 하는 말이 너무 어려워 질문에 답을 해주지 못한다’며 버거워했다”고 전했다. 다만 부모가 자녀에게 학습을 강요하지 않은 게 유일한 공통점이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영재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미취학 아동의 경우 남자아이는 어려운 공룡 이름을 줄줄 외우고, 여자아이는 어른과 비슷한 어휘력을 구사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를 영재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을까.

류지영 KAIST(한국과학기술원) 과학영재교육원 교수는 “영재를 판단하는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능성이 보이는 경우 종합적인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나 담임교사가 아이를 일정 기간 지켜보면서 이해력, 직관력, 통찰력, 창의력 등을 다각도로 평가해 가능성이 보이면 전문기관에 테스트를 의뢰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공부를 잘하는 아이를 두고 ‘영재가 아닐까’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살펴보면 그저 암기를 잘할 뿐 영재가 아닌 것으로 판단되는 아이가 많다고. 반면 가정환경이 열악하거나, 부모에게 학업을 지나치게 강요당해 의지가 사라지는 등 극단적인 환경 요인으로 영재성이 묻혀 있는 경우도 있다. 류 교수는 “타고나는 영재도 있지만 주변 환경에 의해 드러나는 영재도 많기 때문에 재능을 썩히지 않으려면 가정에서 신경 쓸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지식 교육보다 배려, 협동심 키워야

전문가가 테스트 결과 영재로 판단한 경우에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영재였던 아이가 교육 과정에서 흥미를 잃고 평범해질 수도 있기 때문. 류 교수는 안타까운 경우를 더러 봤다며 “영재는 대부분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스스로 고민을 많이 한다. 수업시간에 알은척을 했다 친구들로부터 시기, 질투를 받거나 자신만의 벽에 부딪히는 등 다양한 이유로 영재성을 포기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결국 영재교육의 성패는 사회에 얼마나 융화되는 인재로 키우느냐에 달렸다. 류 교수는 “보통 영재교육원에서 1년에 100시간을 교육하는데 그 안에 리더십 프로그램이 20시간가량 포함돼 있다. 영재는 미래 지도자가 될 아이들이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배려와 소외된 이웃에 대한 공감 능력, 사회 구성원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인성을 갖추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청소년기를 겪으면서 심리적 불안감이나 압박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으므로 적절한 심리치료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찍이 신동으로 알려져 유명해진 사람은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천재소년이라 불리며 8세였던 2006년 대학에 입학한 송유근 군은 어린 나이에 대학생들과 어울려 듣는 강의를 낯설어 했고, 또래 친구가 없다는 점을 힘겨워했다. 또 1960년대 6세 나이에 미적분 문제를 풀어 화제가 됐던 IQ 210의 신동 김웅용 신한대 교양학부 교수도 성장통을 겪었다. 11세에 미국 항공우주국(NASA) 선임연구원으로 들어가 5년간 일했지만 가족 하나 없이 일만 하던 삶에 지쳐 귀국했을 때 그에게는 ‘실패한 천재’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영재로 먼저 길을 걸었던 김 교수는 영재 교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한 분야에 천재성을 보이는 아이에게는 적절한 선행학습이 필요하다. 흔히 생각하듯 중학생이 고등학교 전 과목을 미리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한 과목의 전 과정을 통찰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모든 과목에서 1등을 요구하는 현재의 평준화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대한민국에 영재는 많지만 노벨상을 받은 인재가 없다는 것은 교육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다른 부분은 떨어지더라도 뛰어난 한 가지 분야에 파고들 수 있게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견해를 드러냈다.



주간동아 2015.03.02 977호 (p28~29)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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