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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우리는 동물원으로 출근한다”

사육사가 천직이라는 세 청년 이야기… ‘자식 같은 동물’과 있으니 고된 3D 노동도 즐거워

  • 김지현 객원기자 koreanazalea@naver.com

“우리는 동물원으로 출근한다”

2월 12일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에서 사육사가 사자에게 물려 사망했다. 사육사는 방사장에 있던 사자 4마리를 내실에 격리하려 했지만, 경찰이 폐쇄회로(CC)TV를 분석한 결과 당시 내실의 잠금장치가 풀려 있었다. 이에 방사장으로 나온 사자 2마리가 사육사를 공격한 것이다. 내실은 동물들이 휴식을 취하는 밀폐된 방이고, 방사장은 관람객이 동물을 볼 수 있도록 공개해놓은 야외 공간을 가리킨다. 사자 같은 맹수는 베테랑 사육사라도 대면하지 않고 격리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날 숨진 사육사는 20여 년 경력의 전문가지만, 흥분한 사자에게 물려 참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물이 사육사를 공격하는 사고는 툭 하면 발생하는 데다, 일단 났다 하면 중상 내지 사망 등 대형사고인 경우가 많다. 2006년에는 대구 달성공원 사육사가 불곰에 다리를 물려 중상을 입었고, 2013년에는 제주의 한 테마파크에서 70대 사육사가 반달가슴곰 2마리에게 공격당해 사망했으며, 같은 해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의 서울동물원에서는 사육사가 호랑이에게 물려 숨졌다.

사실 동물원에서 일한다는 것은 ‘3D (Dangerous, Dirty, Difficult) 노동’에 가깝다. 주말과 어린이날, 명절 등에는 더 바쁘고, 말이 통하지 않는 동물들과 ‘기싸움’까지 해가며 먹이를 주고 똥을 치우며 돌봐야 한다. 구제역이나 AI(조류인플루엔자) 등이 확산될 때는 방역 문제로 몇 주일씩 초긴장 상태가 이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동물 전문가를 꿈꾸는 젊은이는 매년 늘고 있다. 2015년 천안연암대 동물보호계열의 입시 경쟁률은 수시모집 1차 8.33 대 1, 2차 95.5 대 1, 정시모집 25.5 대 1로 이 대학에서 가장 높은 편이었다. 신구대 자원동물과 애완동물전공의 2014년 수시모집 1차 경쟁률도 인문계 전형 23.79 대 1, 전문계 전형 29 대 1이었다.

사육사 지망생들이 선호하는 학과는 축산학, 동물자원학, 동물생명공학, 애완동물관리학 등이다. 이들은 재학 중 틈틈이 동물원 관련 근무 경험을 쌓고 졸업 후 3~5년 동안 인턴이나 공공근로를 하면서 입사시험을 보는 것이 ‘필수 코스’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대학을 나와도 취업문이 좁다. 서미려 서울동물원 사육사는 “요즘 사육사 지망생은 실습, 대학생 아르바이트, 공공근로, 기간제 근무 등의 긴 단계를 순서대로 거치고 입사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 동물원 수가 많지 않은 탓”이라고 말했다. 현재 전국에서 ‘동물원’으로 지정된 곳은 13개. 사육사의 동물원 입사 경쟁률도 높다. 서울동물원의 경우 15 대 1 정도다.



사육사가 되면 일부 불안전한 업무 환경에도 적응해야 한다. 지인환 서울동물원 사육사는 “동물원에서 일어나는 사고는 개인 부주의와 시스템 미비 양쪽에 책임이 있다.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사육사와 동물원 모두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육사는 주로 오전 6시 반부터 12시간 이상 일하고, 월급 200만 원 내외의 계약직이 정규직을 대체하는 추세다. 이러한 불리한 근무 조건에도 젊은이들이 사육사를 희망하는 이유는 뭘까. 치열한 경쟁을 뚫고 신참 사육사가 됐거나 사육사를 지망하는 청년 3명을 만났다. 20대인 이들은 동물을 “내 자식 같은 아이들”이라고 불렀다.

청주동물원 권혁범

“영리한 원숭이는 사람과 ‘기싸움’ 하기도”

“우리는 동물원으로 출근한다”

일본원숭이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권혁범 청주동물원 사육사.

“초등학생 때부터 수업 이후엔 서울 청계천 애완동물거리에서 살다시피 했죠. 당시 서울 정릉에 살았는데 매일 버스로 오가도 피곤하지 않았어요. TV나 전자오락보다 동물들을 보는 게 더 신났어요.”

권혁범(26) 청주동물원 사육사는 어릴 때부터 오직 사육사가 꿈이었다. 평생 동물 관련 일을 하고 싶어 신구대 자원동물과에 진학했다. 졸업 후 서울동물원에서 6개월 동안 공공근로(파트타임 근무)를 한 후 지난해 11월 청주동물원 사육사가 됐다.

권 사육사는 다양한 동물을 담당한다. 호랑이, 사자, 곰, 여우, 원숭이, 스라소니, 라쿤, 물범, 수달 등. 그중 가장 친한 동물은 원숭이다. 일본원숭이, 알락꼬리여우원숭이, 망토원숭이, 히말라야원숭이, 다람쥐원숭이 등 종류별로 습성도 다르다.

“다람쥐원숭이는 휴식할 때 무리 지어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몸에 배설물을 묻히는 것이 특징이고요. 망토원숭이는 갈기가 망토처럼 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성질이 사나워요. 표범이랑 싸워도 밀리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또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라는 노래의 주인공은 일본원숭이예요. 머리가 좋아 영악하고 사람처럼 온천을 즐기는 녀석이죠. 알락꼬리원숭이는 TV 방송 ‘정글의 법칙’에도 나온 일명 ‘마다가스카르 원숭이’인데 게처럼 옆으로 걸어요. 이 모든 종을 한꺼번에 풀어놓으면요?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싸우겠죠. 서로 이질성을 강하게 느끼니까요.”

영리한 원숭이는 가끔 사육사와 기싸움을 한다.

“일본원숭이 가운데 ‘돌이’라는 꼬마가 있어요. 영악한 놈인데, 방사장을 청소할 때 동물들을 내실로 보내려 하면 요리조리 피하면서 약을 올려요. 들어가라고 혼내면 오히려 화를 내죠. 일본원숭이는 송곳니가 늑대만큼 날카로워서 위협하면 무서워요. 말로 혼내는 것이 소용없을 땐 먹이가 제일 좋은 수단이에요. 내실에 들어간 아이들만 밥을 주는 식이죠. 그러면 녀석이 끙끙 참으며 버티다 결국 내실로 들어가요. 먹을 것 앞에서는 자존심을 내리는 모습을 보면 우습기도 하죠.”

권 사육사가 일하는 청주동물원은 신참 사육사에게 여러 동물을 맡기는 편. 그는 “경력에 비해 다양한 동물과 함께할 수 있어 마냥 행복하다”고 말한다.

“물론 힘든 점도 있죠. 최근 사육사 사고가 이슈화됐을 때 부모님이 ‘그만두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안전수칙을 철저히 지켜 오랫동안 사육사로 일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겨요. 동물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면 사육사가 제 천직인 것 같아요. 특히 번식이 어려운 동물이 새끼를 낳을 때 보람은 말할 수 없이 크죠.”

서울동물원 김희진

“엄마 마음으로 동물들을 돌봐요”

“우리는 동물원으로 출근한다”

미어캣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김희진 서울동물원 사육사.

“아프리카 동물이라 하면 보통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에서 접하잖아요. 멸종위기종이나 국내에서 볼 수 없는 동물. 그런 동물을 관람객이 보고 신기해할 때 가장 보람을 느껴요.”

김희진(29) 서울동물원 제2아프리카관 사육사. 그가 보호하는 동물은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니알라, 시타퉁가, 흰오릭스, 바버리양, 미어캣이다. 미어캣을 제외한 나머지는 영양과 닮은 솟과 초식동물. 귀여운 미어캣은 몸길이 50cm 내외의 몽구스과 잡식동물이다.

김 사육사의 출근 시간은 오전 6시 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동물들의 건강 상태 확인이다.

“밥은 잘 먹었는지, 변은 어떤지 보죠. 변 빛깔이 좋고 단단하면 안심하지만 색이 탁하거나 무르면 주의해서 살펴보고요. 건강에 의심이 가는 개체는 활동력을 확인해요. 좀 더 높이 뛰어보게 하는 식으로요. 무리에서 밀려난 외톨이가 있으면 따로 밥을 먹이기도 하고요. 동물 개체 수가 많을수록 최대한 시간을 확보해서 돌봐요. 엄마 같은 마음으로 하나씩 유심히 관찰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는 ‘작은 동물원’ 같은 집에서 성장했다.

“개, 고양이, 새, 물고기, 거북이, 다람쥐 등을 한꺼번에 키웠어요. 언젠가부터 동물을 빼고는 내 삶을 이야기할 수 없더라고요. 자연스레 사육사를 꿈꾸게 됐죠. 하지만 지원 경쟁이 치열해 잠시 꿈을 접고 동물병원 간호사로 일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애완동물이 아닌 야생동물임을 깨닫고 사육사 취업에 도전했죠.”

그는 3년 동안 서울동물원에서 공공근로를 하며 정직원 채용의 문을 두드렸다. 너덧 번 도전 끝에 사육사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서울동물원에 지난해 12월 정식으로 채용됐다. 꿈꾸던 대로 야생동물을 돌보게 된 기분은 어떨까.

“행복해도 마냥 즐기고만 있을 수는 없죠. 동물들 습성에 늘 주의해야 하니까요. 초식동물이 순할 것 같지만 은근히 사람을 공격해요. 놀라면 뿔을 앞세우기 때문에 사육사가 다칠 수 있고요. 뛰다가 벽에 부딪히는 사고도 발생해요. 그래서 방사장을 청소할 때는 동물이 나를 보고 놀라지 않도록 멀리서부터 큰 소리를 내면서 다가가죠.”

김 사육사는 격주로 쉰다. 일주일 내내 근무하고 그다음 주에는 평일에 2, 3일 나오는 식. 하지만 이마저도 유동적이라 친구와의 약속이나 여행은 꿈도 못 꾼다. 하루 12시간 넘게 일하고 추운 겨울에도 야외에서 동물의 변을 치우는 것도 힘든 일. 일이 고된 만큼 책임감이 투철해야 할 수 있는 직업이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은 기본이고, 자기 생활을 일부 포기하는 희생도 있어요. 단지 동물을 좋아한다면 애완동물 기르기가 답이겠죠. 지금의 열정과 사명감을 정년퇴직 때까지 이어가는 사육사가 되고 싶습니다.”

서울동물원 정효주

“조련보다 사육, 동물복지에 관심 많아”

“우리는 동물원으로 출근한다”

흰코뿔소를 담당하는 정효주 서울동물원 공공근로자.

“종교를 열심히 믿는 사람은 교회나 성당, 절에 가면 가슴이 벅차다고 하잖아요. 제게는 동물원이 그런 곳이었어요.”

정효주(22) 서울동물원 공공근로자. 대(大)동물관에서 코끼리, 흰코뿔소, 큰뿔소, 아시아물소, 아프리카물소를 관리하고 있다. 이러한 동물들은 분뇨 청소가 큰일이다. 코끼리의 경우 5마리가 하루 400kg의 똥을 누는데 매일 삽으로 트럭에 실어야 한다. 그래도 그는 한 달 전부터 시작한 사육사 일이 즐겁기만 하다.

그는 서울동물원에 오기 전 조련사였다. 대경대 동물조련이벤트과를 졸업하고 대구 가창허브힐즈에서 정규직으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동물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더 좋아지면서 사육사로 진로를 바꿨다.

“조련사는 동물을 훈련시키는 직업이에요. 관객에게 묘기를 보여주고자 동물을 엄하게 부리죠. 하지만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상태가 동물에게 더 유익하고, 그런 모습이 관객을 충분히 즐겁게 할 수 있음을 깨달았어요.”

동물원은 종종 동물보호활동가들의 ‘동물원 폐쇄’ 주장에 부딪힌다. 동물을 인공적인 환경에서 구속한다는 점 때문이다. 그는 “동의하는 면도 있지만 동물원이 주는 혜택도 인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동물원이 사람들의 이기심 때문에 세워졌다는 점은 일부 동의해요. 하지만 어린이들이 동물을 그림이 아닌 실제로 봤을 때 경험하는 교육적 효과가 있어요. 멸종위기 동물을 보호하는 데도 의미가 크죠. 요즘엔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동물원도 동물들이 야생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많이 노력하는 편이에요. 동물의 다양한 행동과 반응을 이끌어내는 시도도 하고 있고요.”

그가 어린 시절 놀러간 동물원은 생육 환경이 미흡했다. 시멘트 바닥 위를 힘없이 걸어 다니는 동물들을 보면 불쌍하고 안타까웠다. 하지만 국내에 동물보호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동물원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방사장에 잔디가 깔리고 나무를 심는 등 실제 자연과 비슷해졌다.

“동물원의 변화가 제 탐구심을 길러준 것 같아요. 환경이 바뀐 걸 확인하면 ‘왜 저렇게 바뀌었을까,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고민을 했고 실제 환경은 어떤지 정보도 찾아봤고요. 동물들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늘 궁금했어요.”

20대 초반인 그는 자신의 꿈에 대해 진지했다.

“꾸준히 공부한 결과 제 관심사가 자연, 동물, 사람으로 요약되더군요. 이 세 가지를 조화시키며 평생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오랫동안 고민했어요. 결국 사육사라는 답이 나왔어요. 이 길이 힘든 걸 알지만 언젠가 정직원이 될 거라는 희망으로 일에 매진하고 있어요.”



주간동아 2015.03.02 977호 (p30~32)

김지현 객원기자 koreanazal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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