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6

2015.02.16

조선 왕 고질병 이명 허임 침법으로 잡다

‘왕의 한의학’ 저자 이상곤 박사의 이명 치료법 | 명절 스트레스가 주범…장원고, 청음고, 보신고로 치료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15-02-16 11: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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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왕 고질병 이명 허임 침법으로 잡다
    설은 음력 한 해를 시작하며 조상에게 건강과 무탈함을 비는 주술적 성격이 강한 명절이지만, 극심한 명절 스트레스로 오히려 병을 얻는 이도 적잖다. 친지와의 불화, 집중된 가사노동, 오랜 운전, 교통체증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면역체계를 무너뜨리고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것. 그중 ‘귀울음’이라 부르는 이명(耳鳴·귀울림)이 생기거나 재발해 고생하는 환자도 적잖다. 문제는 이명이 한방과 양방을 통틀어 좀처럼 치료하기 어려운 난치병으로 알려졌다는 점.

    이명의 주증상은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서 다른 사람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선 두통이나 어지럼증,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이도 적잖다. 때로는 귀가 꽉 막힌 것 같은 폐색감과 귀에 뭔가가 들어간 것 같은 이물감을 느끼기도 한다. 귀가 아픈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이르러 자살을 시도하는 이도 있다.

    이명은 스트레스, 피로나 과로, 중이염이나 감기, 내이질환(메니에르병, 돌발성난청), 교통사고나 대수술, 큰 음향 노출, 약물 복용, 수면 부족, 잦은 기압 차이(비행기 탑승, 고지대 등산) 등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끝내 원인을 밝히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보면 스트레스로 발병한 경우가 가장 많고, 피로나 과로가 그 뒤를 잇는다.

    선조 이명 치료한 보사(補瀉)침법

    한평생 신권(臣權)의 도전을 받으며 왕위를 뺏길까 봐 노심초사했던 조선의 왕 가운데 유독 이명에 시달린 사람이 많다. 선조, 인조, 효종, 영조가 대표적이다. 하나같이 정실의 자식이 아니거나 반정을 통해 정권을 잡아 정통성이 취약한 왕들이었다. 과연 조선의 왕들은 이명을 어떤 방식으로 치료했을까. 국내 최초로 조선시대 왕들의 건강과 질병에 대한 분석서 ‘왕의 한의학’을 출간한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전 대구한의대 교수·한의학 박사·사진)에게 그 해답을 구했다. 이 박사는 ‘동의보감’ 저자인 허준이 조선 으뜸의 침의(鍼醫)라 극찬한 허임(어의 역임) 일대기를 소설화한 ‘조선 제일침, 허임’의 저자이기도 하다. 실제로 허임은 선조의 이명을 치료했다.



    ▼ 한방에선 이명의 원인을 무엇으로 보나.

    “이명을 한자로 ‘耳鳴’이라 쓴다. ‘귀소리’라 하지 않고 ‘귀울음’이라 표현한 것으로, 심적으로 고통스러운 상태에 있음을 의미한다. 지금으로 말하면 스트레스다. 스트레스가 생기면 교감신경계가 흥분하고 우리 몸은 긴장한다. 싸울 때 주먹을 움켜쥐듯 혈관이 좁아지면서 몸이 굳고 저리게 된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서 흥분하거나 열 받는 상태가 된다.

    ‘동의보감’ 귀울음 조문에는 ‘스트레스를 주관하는 경락은 간담이다. 간담이 열을 받으면 기가 치밀어 오르면서 귓속에서 소리가 난다’고 쓰여 있다. 한방에선 귀가 차가워야 건강하다고 본다. 뜨거운 것에 손을 데었을 때 무의식적으로 귓불을 만지는 것도 귀가 차기 때문이다. 차가워야 정상인 귀가 열을 받아 더워지면 병적인 상태다. 이게 바로 이명이다.”

    갑산한의원이 내원한 이명 환자 100명을 대상으로 질환의 원인을 조사해봤더니 스트레스 37명, 피로나 과로 17명, 중이염이나 감기 13명으로 나타났다. 그다음은 내이질환을 앓고 난 후 8명, 큰 소리에 자주 노출된 경우 7명 순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경우도 10명에 달했다.

    조선 왕 고질병 이명 허임 침법으로 잡다

    허임의 보사침법은 중국, 일본까지 알려져 있으나 정작 종주 국인 한국에서만 사장돼왔다.

    ▼ 조선시대에 이명이 가장 심했던 왕은 누구인가.

    “후궁 자손으로 처음 왕위에 오른 선조는 지독한 이명으로 고생했다. 후궁 태생이라는 콤플렉스와 나날이 강화되는 신권 때문에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결국 이명이 발병한 것이다. 선조가 직접 ‘왼쪽 귀가 심하게 울리고 들리지도 않는다’ ‘내 병은 심중에서 얻은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똑같이 후궁 자손인 영조도 이명과 난청으로 한평생 고생했는데, 북소리 같은 이명이 그치지 않아 심지어 이로 인해 귀머거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왕위 계승을 두고 많은 문제를 낳았던 인조와 효종도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리며 이명을 앓았다.”

    ▼ 선조의 이명을 치료한 허임의 침법은 무엇인가.

    “선조에게 쓴 침법은 조선 최고 침법으로 알려진 보사침법이다. 천지인(天地人)침법이라고도 부른다. 선조가 허임에게 침을 맞은 것은 ‘조선왕조실록’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허임은 스트레스 때문에 귀로 치밀어 오른 기(氣)를 손발에 침을 놓아 손발 끝으로 분산시켰다. 기를 조화롭게 균형 잡아 귀울음을 해소한 것이다.”

    ▼ 보사침법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보사침법에는 특징이 있는데, 일반 침법이 득기(得氣)를 위주로 한 번 찌르면 되는 반면, 허임의 침법은 세 번에 걸쳐 돌리고 기 방향에 따라 득기를 하면서 침 효과를 극대화한다. 이 침법은 이면에 천지인이라는 철학적 원리를 내포한 조선 고유의 심오한 침법이다. 풍선에 비유하는데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는 것처럼 몸에 기를 팽팽하게 채워 넣는 것이 보법이고, 사법은 이와 반대로 풍선에서 공기를 빼는 것처럼 침을 놓는 것이다. 보사침법은 귀 안 신경세포인 유모세포가 지나치게 흥분한 상태를 가라앉힌다.”

    과로와 피로 해소, 이명 치료제

    조선 왕 고질병 이명 허임 침법으로 잡다
    이 박사는 유교적, 관념적 철학에 빠진 조선 풍토에서 대가 끊기고 사장된 보사침법을 복원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각종 문헌과 구전을 종합하고 자신의 치료 경험을 더해 허임 침법을 완성했다는 이 박사는 깊이에 따라 상중하로 찌르고 빼는 과정이 하늘, 땅, 사람에게서 기를 얻고 빼는 것과 다름없다는 점에 착안해 이 침법을 ‘천지인 침법’이라 부르고 있다.

    이 박사는 귀의 열을 식히고 귀에 집중된 기를 흩어주는 데 외용약물을 쓴다. 외용약물에는 먼저 스트레스성 이명 치료제이자 ‘투관통기약(套管通氣藥)’인 ‘청음고’가 있다. 투관통기약은 막힌 기를 열어줘 통하게 하는 약이라는 뜻. 청음고는 귀 뒤에 붙이거나 귓속에 솜으로 감싸 넣으면 스트레스로 인한 열이 진정되는 효과가 있다.

    ‘동의보감’은 이명의 한 이유로 부신(신장) 기능의 손상을 들고 있다. 부신이 부실하면 스트레스와 함께 이명의 또 다른 큰 원인으로 꼽히는 피로와 과로를 부를 수 있다는 것. 이 박사는 부신 기능을 살리면 보신(補腎)으로써 육체적 피로와 고통이 줄어들고 귀울음 치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 고약을 귓속에 넣는 ‘보신고’를 개발했다. 이 박사는 “‘동의보감’에 귀에 송진, 석창포 같은 약물을 솜으로 감싸 넣으면 신기(腎氣)가 허(虛)해 귀에서 바람 부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종·경소리 같은 소리가 나거나 갑자기 들리지 않는 것을 치료한다고 나와 있다”며 “보신고는 그 원리에 따라 개발됐다”고 밝혔다.

    이 박사가 개발한 아랫배(배꼽)에 붙이는 이명 치료제 ‘장원고’도 보신을 위한 약이다. 이 박사는 “신허(腎虛)와 비슷한 말로 ‘하초가 허하다’ ‘허리 아랫부분이 시원치 않다’ 따위의 표현을 쓰는데 아랫배(배꼽)에 뜸 대신 붙이는 고약으로도 보신 효과를 볼 수 있다. ‘장원고’는 하초의 원기가 허하고 차서 배꼽 둘레가 차고 아픈 것을 치료하는 계피, 오수유를 이용해 만든 고약으로, 먹는 약물과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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