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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북·일 납치자 협상, 평양은 일본 여론 식기만 기다린다”

인터뷰 l 한반도 전문가 오코노기 마사오 일본 게이오대 명예교수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북·일 납치자 협상, 평양은 일본 여론 식기만 기다린다”

“북·일 납치자 협상, 평양은 일본 여론 식기만 기다린다”
2014년 5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진행된 북·일 국장급 회담의 충격파는 컸다. 북한 내 일본인 납치자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에 경제제재 해제와 북·일 관계 정상화까지 연동한 합의 내용은 북한과 일본이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기에 충분했다. ‘동북아의 골칫거리’로 떠오른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악화된 국제사회 여론을 돌파하기 위해 ‘전략적 제휴’를 맺은 것이라는 분석도 쏟아졌다.

8개월의 시간이 흐른 지금, 상황은 예상과 사뭇 다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던 두 나라의 협상이 답보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 납치자 문제에 얽힌 아베와 김정은의 노림수는 과연 무엇이고, 안갯속으로 접어든 북·일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일본의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로 손꼽히는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일본 게이오대 명예교수(사진)는 이를 명징하게 정리해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다. 한일공동연구포럼의 일본 측 좌장,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일본 측 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는 그는, 고이즈미 내각과 후쿠다 내각 시기에는 일본의 중·장기 외교전략을 수립하는 총리 자문기구의 위원을 맡기도 했다. 1월 하순 일주일 일정으로 서울을 방문해 국내 주요 안보연구기관과 두루 비공개 토론을 가진 오코노기 교수를 만났다. 부족한 부분은 e메일을 통해 보충했다.



아베 정치 생명 건 위험한 도박



▼ 한국에서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은 북·일 수교나 납치자 문제와 관련해 아베 내각의 진짜 목표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납치자 문제가 북·일 관계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결정적 계기는 2002년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 방문이었다. 당시 일본 정부에서 추산한 납치 피해자는 총 17명이었지만, 북한은 방북한 고이즈미 총리에게 납치 피해자 중 생존자는 5명, 사망자는 8명이며 나머지는 입국한 일이 없다고 답했다. 이러한 답변에 대해 일본 내에서 강한 비판 여론이 나왔고, 국교정상화 협상은 큰 타격을 입었다.

이후 일본 정부는 새로운 문제를 떠안게 됐다. 북측에서 말한 사망자 8명은 정말 죽은 것일까. 피랍자 가족들은 이를 믿지 않았다. 납북 가능성이 있는 일본인 실종자가 17명보다 훨씬 많다는 집계도 나왔다. 이들의 행방을 찾는 일이 새로운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2004년 다시 방북해 생존자 5명을 데리고 나왔지만, 남은 사람들의 행방 역시 여전히 확인되지 않았다.

사실 아베 총리가 총리 후보에 오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강경한 태도가 일본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얻었기 때문이다. 2006년 1기 아베 정권 당시에는 어떤 성과도 없었기 때문에 부담은 한층 커졌다. 2기 아베 정권에서 이 문제가 정권 차원의 공약이 된 배경이다.

그러나 아베 총리에게 이 문제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이다. 임기 내 해결하기에는 너무 높은 장벽이지만, 해결한다면 국내에서의 리더십은 비약적으로 강화될 것이다. 단순한 선거 승리 차원이 아니라 헌법 개정 등 본인의 어젠다를 성공적으로 밀어붙일 동력을 확보하게 될 테고, 아베 정권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 역시 탄력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서 국민이 원하는 성과를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기대치가 워낙 높기 때문이다. 끝내 이 문제가 좌초한다면 아베 총리 역시 정치인으로서 신용을 잃게 된다. 한마디로 납치자 문제 해결은 그의 정치 인생을 좌우할 과제인 셈이다.”

▼ 거꾸로 김정은 제1비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평양의 요구는 한결같다. 첫째는 식민지배에 대한 충분한 사과와 보상, 두 번째는 국교정상화다. 이에 대해 일본은 사과는 그간 한국 측에 했던 무라야마 담화 등의 수위라면 먼저 할 수도 있지만, 북한이 원하는 보상, 즉 대규모 경제협력을 타진하려면 국교가 먼저 정상화돼야 한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쉽게 말해 납치자 문제가 해결돼야 국교정상화든 경제협력이든 가능하다는 취지다.

지난해 스톡홀름 합의는 이러한 조치의 선후관계에 대해 앞으로의 프로세스를 정리한 것이다. 북한은 국가안전보위부의 책임 하에 북한에 거주하는 모든 일본인과 그 배우자까지 철저한 진상조사를 다시 진행하고, 일본은 그 보상으로 인적 왕래 허용, 대북 송금에 대한 보고의무 완화, 인도적 목적으로 일본에 오는 북한 선박의 정박 허가 등을 내놓았다. 북한이 진행하는 진상조사 작업의 성과에 따라 무역금지 해제까지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이게 아베 총리가 말하는 ‘행동 대 행동(action to action)’ 방식이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합의

▼ 양측이 걸고 있는 기대가 이렇듯 높다면, 예상과 달리 진전이 한없이 더딘 점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일본 측에서는 조사기간을 1년 정도로 잡았고 북한의 첫 보고서가 지난해 8월 말이나 9월 초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에 따라 7월 초 두 나라는 스톡홀름 합의의 1단계 조치 실행에 들어섰다. 평양은 조사위원회 활동이 시작됐다고 선언하고, 일본은 대북제재 일부 해제를 선언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9월에도 첫 보고서는 나오지 않았다. 일본 측이 재촉하자 북한은 ‘직접 평양에 와서 조사위원회 관계자들을 만나라’고 응했고 그에 따라 10월 말 일본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했지만, 북한은 이때도 자료공개를 거부하고 첫 보고 시기를 연말로 미뤘다. 조사를 철저하게 진행하다 보니 시간이 걸린다고 변명했다.

연말이 돼도 북한 측은 보고서를 발표하지 않았지만, 일본 측은 지난해 12월 총선 등 내부 일정 문제가 얽혀 재촉도 하지 않았다. 진전 없는 상태가 이어진 이유다. 사실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스톡홀름 합의 당시의 떠들썩한 분위기와 달리 하이 리턴은커녕 아예 리턴 자체가 없었던 셈이다.”

▼ 북측이 이렇듯 보고서 제출을 미루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쉽게 말해 진상조사에 대한 일본 내 여론의 기대가 가라앉을 때까지 보고서 공개를 미루려는 것이다. 많은 피랍자가 북한에 살아 있을 것이라는 일본 국민의 바람이 냉각돼야만 보고서를 제출한 후에도 협상이 결렬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듯하다. 물론 스톡홀름 합의에 따르면 조사위원회가 발족한 1년 뒤인 올해 7월에는 보고서가 제출돼야 한다. 그러나 이는 쉬운 일이 아니고, 일본 측은 평양이 어떤 카드를 쥐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다. 예컨대 2002년 고이즈미 전 총리가 평양을 방문할 당시 북한 측은 일본인 납치자가 몇 명 살아 있는지 미리 말해주지 않았다. 생존자 수를 미리 말했다면 아마 고이즈미 전 총리는 방북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베 총리도 같은 고민에 빠져 있다. 북한 측이 보고서를 통해 실종자 중 두세 명만 살아 있고 다른 피랍자는 모두 사망했다고 보고한다면 일본 내 상황은 매우 복잡해진다. 북한 측 발표에 포함된 생존자의 가족은 협상을 계속해 그들을 귀국시키라고 요구할 테고, 다른 피랍자 가족은 북한을 신뢰할 수 없다며 협상을 더는 원치 않게 될 것이다. 물론 일본 정부는 살아 있는 일본인이 있는 한 협상을 중단할 수 없다. 한마디로 이후 북·일 관계는 7월까지 나올 북한의 첫 번째 보고서에 달려 있는 셈이다.”

“북·일 납치자 협상, 평양은 일본 여론 식기만 기다린다”

2002년 9월 평양을 방문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오른쪽)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 북측의 보고서가 일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아베 총리는 어떤 행보를 취하게 될까. 예컨대 2002년 고이즈미 전 총리는 납치 피해자들을 일본으로 송환받은 이후에도 당초 합의했던 반대급부를 지급하지 않았다.

“그간 몇 차례 식량원조가 진행되긴 했지만, 그런 측면이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2002년 당시 국내 여론이 악화되자 일본 측도 성의 있게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일본을 믿을 수 없다고 보는 것이고, 가장 효과적으로 보고서를 활용할 수 있는 시기를 저울질하는 것이다. 물론 일본 측이 수용할 수 없는 내용이라고 판단되면 아예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협상을 진행하다 보니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 끌어내려고 일본 이용하는 북한

▼ 한국은 두 나라의 협상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속내가 복잡하다.

“지난해 스톡홀름 합의가 나왔을 때 한국 언론이 이를 매우 불안하게 지켜본 것을 기억한다. 북·일 관계 개선이 한일 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북한은 한국을 협상 테이블에 끌어내고 싶을 때 일본과 먼저 협상을 진행하거나, 거꾸로 일본에 뭔가를 기대할 때 미국이나 한국을 이용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국제 관계를 활용한다. 최근에는 북·일 관계에 진전이 없으므로 전략적으로 남북 대화를 먼저 진행하려는 속내가 보인다. 북·일 관계를 좌우할 보고서 제출 역시 남북 관계 개선이 궤도에 오른 뒤로 미루고 싶을 것이다. 냉정히 말하자면 애초부터 한국 측이 스톡홀름 합의를 너무 과대평가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합의가 현실화하려면 매우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북한이 추가 핵실험 같은 행동을 섣불리 취할 수 없다는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할까. 권력을 물려받은 이래 김정은 제1비서는 경제와 농업 발전을 우선시하고 국제 관계를 강화하는 등 전체적인 국가 재정비를 시도하고 있다. 이른바 병진노선이다. 이러한 노선이 효과가 없다면, 다시 말해 남북 대화나 북·미 관계 등에서 아무런 진전이 없고 체제 불안정만 가속화된다면 무력 도발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10월 조선노동당 창건 70년 행사까지는 현재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김 제1비서로서도 인민에게 뭔가 성과를 보여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 5월 러시아 승전기념일 행사가 김 제1비서의 국제무대 데뷔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아베 총리와의 정상회담도 가능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회의적이다. 미국과 러시아 관계가 이렇듯 안 좋은 상황에서 아베 총리가 러시아에 갈 수 있을지조차 모르겠다. 백악관이 반길 리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은 아마 박근혜 대통령도 마찬가지 아닐까. 만약 김정은 제1비서가 모스크바에 간다면 도리어 아베 총리는 가지 않을 공산이 크다. 두 사람이 이 자리에서 만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뜻이다. 오히려 일본이 염려하는 시나리오는 9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릴 대일(對日) 승전기념 행사에 남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모여 동북아 역사 문제를 논의하는 그림이다. 이렇게 되면 분명 아베 총리에게 큰 고민거리가 될 것이다.”



주간동아 2015.02.02 974호 (p22~24)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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