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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우리가 몰랐던 존 말코비치 되기

사이코패스 전문 연기자에서 오페라 출연까지…클래식 공연 내레이션 맡아 방한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우리가 몰랐던 존 말코비치 되기

우리가 몰랐던 존 말코비치 되기
사이코패스, 살인마, 범죄자…. 영화에서 ‘결핍’과 ‘불안’을 주로 연기한 개성파 할리우드 배우 겸 영화감독 존 말코비치(62·사진)가 데뷔 후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새로운 영화가 개봉한 것도, 연극 무대에 서기 위함도 아니었다. 그가 선 무대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월 14일 오후 8시 서울바로크합주단 창단 50주년 기념 특별 정기연주회에 참석하고자 방한해 눈길을 끌었다.

이번 공연에서 말코비치가 맡은 ‘임무’는 내레이션. 말코비치를 영화배우로만 알고 있다면 다소 의아할 법도 하지만 그는 미국, 유럽에서 오페라에 출연했고 아리아도 불렀다. 2008년 연쇄살인범 잭 운터베거를 소재로 제작한 오페라에서는 소프라노 2명과 무대에 올라 살인범을 연기했고, 2011년에는 모차르트의 노래를 엮은 신작 오페라 ‘자코모 변주곡’에서 아리아를 불렀다.

이게 다가 아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1979년 슈니트케가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을 재구성한 새로운 버전이 처음 공개돼 화제를 모았는데, 이 역시 말코비치가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구성한 곡이다. 서울 공연 후에는 그의 내레이션과 함께 영국 런던과 독일 베를린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매력적인 중저음 내레이션에 푹 빠져

말코비치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쉬운 역을 일부러 피했나 싶을 정도로 다채로운 인물들이 등장한다. 1984년 영화 ‘마음의 고향’으로 데뷔한 그는 넓은 연기 스펙트럼과 독보적인 매력 덕에 세계적으로 사랑받아왔다. 영화배우뿐 아니라 연주자, 영화감독, 제작자, 패션디자이너 등 예술 전반에 걸쳐 다양한 능력과 이력을 지녔다.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오비상(오프브로드웨이 연극상) 연기상과 감독상, 전미 비평가 협회상, 에미상, 뉴욕 비평가 협회상 등을 받았고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2차례 올랐다.



‘위험한 관계’(1988), ‘사선에서’(1993), ‘여인의 초상’(1996), ‘콘에어’(1997), ‘아이언 마스크’(1998), ‘존 말코비치 되기’(1999) 등에서 개성 있는 연기를 보여준 그는 ‘클림트’(2006)에서는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를 연기했고 ‘레드’(2010), ‘트랜스포머 3’(2011), ‘레드 : 더 레전드’(2013) 같은 액션 영화에도 출연했다. 그런 그가 클래식 무대에 선다니, 이번에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호기심이 동했다.

공연에 앞서 1월 12일 예술의전당 리허설 룸에서 말코비치를 만났다. 화려한 무늬가 섞인 붉은 재킷 안에 녹색 카디건을 받쳐 입고 넥타이와 청바지를 매치한 모습이었다. 이날 그는 공연에서 선보일 내레이션을 피아니스트 크세니아 코간, 서울바로크합주단 멤버들과 맞춰 봤다. 슈니트케 피아노 협주곡이 연주되는 동안 말코비치가 아르헨티나 소설가 에르네스토 사바토의 소설 ‘영웅들과 무덤에 관해’ 중 3장 ‘장님에 대한 보고서(The Report on the Blind)’를 내레이션했다. 그가 낭송한 부분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페르난도 비달 올모스가 자신을 관찰하는 눈먼 여성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었다.

“1947년 여름날이었다. 나는 마요 플라자와 산마르틴 거리를 지나 시청 앞을 거닐고 있었다. 아무 생각도 없이 무심히 거리를 걷고 있었는데 마치 누군가가 수천 년 동안 자고 있던 나를 깨우기 위해 애를 쓰는 듯 작은 종소리가 들렸다.”

음산한 불협화음이 깔리고 그가 입을 열자 매력적인 중저음이 리허설 룸에 가득 찼다.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 ‘마다가스카의 펭귄’(2014)에서 데이브와 문어 악당 옥토브레인의 목소리 역을 맡았던 말코비치는 어디에도 없었다. 특유의 호흡과 발성 덕에 낭송을 하고 있었지만 종종 랩이나 노래를 하는 것처럼 들렸다. ‘the great secret’이라고 적힌 부분을 읽을 때는 ‘the’와 ‘secret’을 묵직하게 눌러 발음했다. 그는 중간중간 피아니스트와 의견을 나누고 내레이션의 강도를 조율했다.

“‘악(惡)’에 대한 문제는 어릴 적부터 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린아이였을 때, 나는 망치를 손에 들고 개미언덕 옆에 자리 잡고 앉아 아무 이유 없이 그 작은 존재들을 죽이곤 했다. 살아남은 개미들은 공황 상태에 빠져 사방으로 흩어졌고 나는 개미언덕 위에 물을 부어 홍수를 내곤 했다. (중략) 마지막으로 나는 작은 삽을 들어 모든 것을 파괴하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있는 일개미들을 찾아내 미친 듯이 파괴했다. 대참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리가 몰랐던 존 말코비치 되기

1월 14일 서울바로크합주단 창단 50주년 기념 특별 정기연주회에서 내레이션을 하는 존 말코비치.

음악 작업이 삶에 영감 줘

개미언덕을 파괴하는 장면에서는 그냥 이야기를 듣고 있었을 뿐인데, 순간 말코비치가 광기 어린 표정으로 삽을 내리치고 흙 묻은 손으로 땀을 훔칠 것만 같았다. 그는 음악이 고조되자 느릿하고 음산한 말투로 ‘general catastrophe’를 힘주어 읽었다. 객석을 향해 ‘watch…wait…watch…wait…’를 반복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그의 내레이션이 끝나자 합주단 단원들은 발 구르기로 박수를 대신했다.

말코비치가 이번 공연에 합류한 데는 피아니스트 크세니아 코간과의 인연이 있었다.

“2012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한 축제에서 코간과 같이 공연할 기회가 있었어요. 공연을 마치고 또 다른 공동 작업을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죠. 처음에는 피렌체에서 했던 곡을 연주하려고 했는데, 코간이 연주한 슈니트케의 피아노 협주곡에 매력을 느껴 아르헨티나 소설가 사바토의 소설 한 부분을 같이 공연하자고 제안하게 됐어요.”

여러 작품에서 아웃사이더나 심리적으로 불안한 인물을 주로 연기해온 말코비치. 이번 내레이션도 예외는 아니었다. 페르난도는 세상에 대한 왜곡된 집착과 자기혐오를 보이는 인물이다. 말코비치는 “페르난도라는 인물의 특징보다 작가인 사바토가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에 더 초점을 두고 이런 부분을 잘 구현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7~8번 음악 공연 작업에 참여했다”며 “이런 경험을 아주 사랑한다.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데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음악을 사랑해요. 특히 음악가들과 일하면서 많은 영감을 얻죠. 음악은 제 인생에서 특별한 존재예요. 여러 음악가와 일하면서 음악이 얼마나 강렬하고 흥미로운 분야인지를 더욱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주간동아 2015.01.19 972호 (p62~63)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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