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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톨레랑스(관용) 뒤흔든 ‘성전 테러’

시민들의 ‘무슬림 거부감’ 급증, 극우정치세력 입지 넓혀줘

  • 파리=백연주 통신원 byj513@naver.com

톨레랑스(관용) 뒤흔든 ‘성전 테러’

프랑스 사회는 지금 혼돈의 도가니다. 1월 7일 프랑스 풍자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와 뒤이은 인질극은 사망자 17명과 다수의 부상자를 남겼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프랑스 국민이 입은 정신적 충격은 ‘역사의 비극’이란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사건 발생 후 급속도로 퍼진 ‘나는 샤를리다(Je suis Charlie)’라는 슬로건은 세계적인 애도물결로 이어졌다. 1월 11일 진행된 규탄시위와 행진에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물론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과 전직 총리들, 세계 각국 인사들까지 참여했다. 정상회의 외에는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인물들이 시위대와 합류하려고 정부가 마련한 버스에 줄지어 오르는 비현실적인 장면이 펼쳐지기도 했다.

이날 프랑스 전역에서 희생자 애도에 나선 이는 약 400만 명. 스스로 프랑스의 진정한 가치라 여기는 ‘표현의 자유’와 직결된 사건이기에 반응은 뜨거울 수밖에 없다는 게 현지 시민들의 시각이다. 예상치 못했던 테러 앞에서 모두 슬픔에 잠긴 것은 마찬가지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생각의 차이가 만만치 않다는 점 역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또 무슬림 탓?

먼저 이제까지 사건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무슬림 이민자를 탓해온 극우정치세력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주장이 한층 격해진 것은 물론, 이민자에 대해 딱히 반감이 없던 시민들마저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한 50대 파리 시민의 말이다.



“이렇듯 심각한 사건이 일어난 마당에 끊임없이 증가하는 무슬림 이민자를 마냥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극우파를 지지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다시는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40대 한 여성 시민은 문화의 차이를 염려한다. “프랑스는 무신론의 민주주의 국가이므로 이슬람 문화를 지향하는 무슬림과 맞지 않는 게 당연하다”는 것. 이번 사건 역시 표현의 자유를 이해하지 못한 무슬림이 저지른 일이라는 시각이다. 결국은 프랑스라는 국가의 정체성 자체가 소멸될 수 있다는 게 이러한 생각을 가진 이들의 대체적인 염려다.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한 60대 여성은 “극단적인 처방이 필요한 때”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프랑스에서 일어나는 각종 범죄 대부분이 무슬림 때문이다. 좌파정치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보라. 프랑스에서 태어났다고 프랑스 국민이 되는 건 아니다. 국적을 떠나 사상과 문화에 적응할 수 있어야 진짜 국민이다.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이 차기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는 것만이 (상황을 해결할) 유일한 길이다.”

테러 사건 후 극우파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강해지자 마린 르펜의 부친이자 FN 명예총재인 장마리 르펜은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 “다들 진정하고 르펜에게 한 표를 던지라” 등 노골적인 정치 발언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사기도 했다. 이렇듯 극단주의에 대항하는 또 다른 극단주의는 사건 이후 프랑스가 내놓은 민낯의 한 부분이다.

문제는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피해를 입는 무고한 무슬림이 적잖다는 것. 무슬림 이민자 하시드(37)의 말이다.

“적잖은 이가 테러 주범인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와 평범한 무슬림을 구분하지 못한다. 나는 알제리에서 프랑스로 이민 온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무슬림이다. 무슬림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테러리스트라 부를 수 있는가. 프랑스 아이들과 똑같이 학교를 다녔고 대학원을 졸업한 후 엔지니어로 일하며 프랑스인 아내와 평범하게 살고 있는 나도 지하디스트인가.”

신문방송학과에 재학 중인 스무 살 청년 클레르는 1월 11일 규탄시위에 참여했다. 거리 행진 도중 한 아파트 창문에서 어떤 남자가 ‘나는 무슬림이다, 나도 샤를리다’라는 문구가 쓰인 깃발을 들고 프랑스 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시위대 모두가 국가를 합창했다. “이웃일 수도, 친구일 수도 있는 무슬림은 우리와 다를 게 없다. 극단주의에 저항하는 엄연한 프랑스 국민이다.” 무슬림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사라져야만 한다는 클레르의 말이다.

사건 직후 저명한 이슬람계 지도자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슬람과 신의 이름만을 빌려 악을 행하는 자는 무슬림이 아니다’‘이것은 이슬람이라는 종교와의 싸움이 아니라 테러리스트들과의 싸움이다’ 등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많은 무슬림 시민이 규탄시위에 앞장서기도 했다.



화합이다 vs 가식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국경을 넘어 물결치는 애도는 일시적 현상일 뿐이라는 평가도 있다. 테러라는 비극을 이용하려는 정치인과 ‘유행을 즐기는’ 일부 철없는 일반인, 연예인들의 홍보성 행태가 결합해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는 시각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아모리(33)는 “사건 발생 전에는 그간에도 거침없는 시사풍자로 다양한 협박에 시달려온 샤를리 에브도에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는 내전과 난민 문제에 대해 파리 시민은 한 번도 이런 단결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고 말한다. 50대 가정주부 니콜은 “한동안은 시끄럽겠지만 곧 원점으로 돌아올 것”이라며 “어차피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회의적 태도를 보였다.

“모델 겸 가수인 아내와 동행해 주목받은 사르코지는 엘리제궁에 도착해서도 카메라에만 신경 썼다. 행진 중에도 정해진 구역을 벗어나 자꾸 카메라 앞으로 나서는 게 보였다. 규탄시위와 선거운동을 착각한 것 같다.”(조르주·24·학생)

이러한 일각의 비판에도 프랑스 시민은 대부분 사건의 충격을 극복하려면 긍정적인 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평소 샤를리 에브도의 애독자였고 이번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만화가를 존경해왔다는 만화가 지망생 얀(18)은 “이스라엘 총리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한자리에 서서 함께 행진하는 모습만으로도 희생자 17명의 죽음이 헛된 것이 아님을 증명했다”고 평가했다. 테러 공포에 짓눌리는 대신 유머를 이어가는 것만이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일 것이라는 시각. 동료들의 사망으로 누구보다 충격이 컸을 샤를리 에브도의 칼럼니스트 파트리크 펠루는 “그들은 샤를리 에브도를 죽였다고 외쳤지만 사실은 반대다.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샤를리 에브도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5.01.19 972호 (p52~53)

파리=백연주 통신원 byj5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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