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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연일 자폭 청와대 01

‘수첩 파동’에 자중지란 청와대

‘문고리 3인방’에 면죄부 줘도, ‘수첩 파동’으로 다시 불거진 십상시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수첩 파동’에 자중지란 청와대

‘수첩 파동’에 자중지란 청와대
비선(秘線) 실세 논란을 불러일으킨 ‘정윤회 문건 파동’은 문건 작성에 관여한 조응천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천 전 행정관에 대한 기소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번엔 ‘문건 배후’가 기록된 ‘수첩 파동’으로 당청 갈등이 재현되고 있다. 잇따른 청와대발(發) 악재가 집권 3년 차를 맞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발목을 잡고 있는 모양새다. 역대 정부에서는 대통령 친인척이 주로 추문의 주연으로 등장했다면, 박근혜 정부에서는 청와대 내부 인사들이 파문의 주인공으로 연거푸 등장하고 있다. 청와대는 왜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는 것일까.

십상시로 지목된 청와대 실세 행정관

‘정윤회 문건’에는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등 이른바 문고리 3인방과 청와대 실세 행정관 등으로 구성된 ‘십상시’가 등장한다. 문건에는 이들이 서울 모처에서 모임을 갖고 국정운영에 깊이 개입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검찰은 문건 내용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의 수사 발표 이후 ‘정윤회 문건’ 파문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그러나 십상시 가운데 한 사람으로 거론되는 음종환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의 ‘문건 배후’ 발언이 공개되면서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청와대 실세 행정관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원내대표 출마를 앞둔 유승민 의원을 배후로 거론했다는 점에서 청와대가 당을 바라보는 인식을 짐작할 수 있다. ‘수첩 파동’이 당청 갈등의 새로운 도화선이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민의 눈은 다시 박 대통령 주변에 포진한 문고리 3인방과 십상시를 향하고 있다. ‘수첩 파동’ 책임을 지고 1월 14일 사표를 제출한 음 전 행정관은 청와대 내에서 비서관급 행정관으로 통할 만큼 ‘핵심 참모’로 손꼽혔다. 그는 문고리 3인방 가운데 한 명인 정호성 비서관과 대학(고려대) 동기로 친분이 두터울 뿐 아니라 권영세 주중대사,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 등 친박근혜계 의원의 보좌관을 지냈다. 2012년 대통령선거(대선) 때는 박근혜 대선 캠프에서 공보기획팀장으로 활동했다.



문고리 3인방이 박 대통령을 오래 보좌하고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이들이라면, 이른바 십상시라 불리는 이들은 2012년 대선 때 실무 책임자로 캠프 구성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시 박근혜 대선 캠프는 대세론에 힘입어 매머드급으로 꾸려졌다. 각 분야에서 다양한 사람이 캠프로 모여들었고, 실무 책임자들이 대선 캠프 참여 인사를 선별하는 일을 담당했다. 음 전 행정관의 경우, 대선 때 직능위원회 구성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때 박근혜 캠프 직능위원회에 참여한 인사는 “음종환 전 행정관이 사실상 면접을 봤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고리 3인방이 대선 당시 박 대통령과 캠프에 참여한 주요 인사 사이에서 연락책을 담당했다면, 십상시는 각 분야 캠프 구성 때 실무 책임자로 제2의 문고리 노릇을 한 셈이다.

흔히 권력 크기는 권력자와 함께한 시간에 비례하고, 권력자와의 거리에 반비례한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문고리 3인방은 실세의 두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왔기에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뜻을 가장 잘 헤아려 ‘메신저’ 구실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십상시 역시 문고리 3인방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던 공신들이다.

인사수석실 무용론 솔솔

‘수첩 파동’에 자중지란 청와대

1월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비선 실세 의혹 문건 유출 파동과 관련해 그 배후를 암시하는 메모가 적힌 수첩을 뒤적이고 있다.

권력자 주변에 측근이 포진해 있으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불가피하게 이들에게 권력이 집중될 개연성이 커진다. 인사수석실 신설 이전까지 청와대 인사위원회에는 이재만 총무비서관이 주로 배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인사는 “인사 업무를 담당한 이재만 총무비서관이 후보자가 추천된 배경 등을 설명하기 위해 인사위원회에 참석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대희, 문창극 두 총리 후보자가 연거푸 중도 낙마한 이후 청와대는 지난해 6월 ‘인사 업무에 철저한 사전 검증과 우수한 인사의 발굴 및 평가를 하겠다’며 인사수석실을 신설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대통령 주변에 이른바 문고리 3인방과 십상시 등 실세들이 여전히 포진한 상황에서 새로이 만들어진 인사수석실이 제 기능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는 인사가 많다. 박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을 앞두고 여러 언론에서 이구동성으로 ‘국정쇄신을 위해 인적쇄신이 필요하다’고 조언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1월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과 문고리 3인방의 사퇴 주장에 대해 “사심이 정말 없는 분”이라고 재신임을 명확히 한 후 “세 비서관을 교체할 이유가 없다”고 거부 의사를 밝혔다.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인적쇄신 대상에게 (대통령이) 면죄부보다 더 큰 힘을 실어줘 실제로 문고리 3인방이 실세가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 취임 이후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 단어 가운데 하나는 ‘불통’이다. 국민이 ‘대통령의 불통’을 줄기차게 지적한 이유는 잇따른 인사 실패에서 기인한다. 정권 초 ‘밀봉인사’ ‘수첩인사’라는 말이 나왔을 만큼 박 대통령은 인사에서 철저하게 보안과 비밀을 중시했다. 문제는 수첩에 누가 적혀 있는지를 아는 이는 수첩에 무언가를 기록해놓은 대통령 자신뿐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공직자 인선을 앞두고 대통령으로부터 ‘누구 누구를 접촉해보라’고 지시받은 몇몇 인사 외에는 수첩 내용을 알 길이 없다. ‘대통령 수첩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는 사람도 ‘공직 후보자로 검증하려는 데 동의하느냐’는 청와대 연락을 받은 이들뿐이다.

역대 정부에서는 공직 인사를 앞두고 언론 등을 통해 하마평이 흘러나오곤 했다. 이따금 일부러 후보자를 흘려 사전에 여론 검증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인사 보안’을 중시하는 박 대통령의 취임 이후 ‘하마평=후보 탈락’이란 인식마저 생겨났다. 공직 인사 때 비밀주의가 심화된 계기는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부 비상대책위원 이름이 미리 언론에 보도되자 “촉새가 나불거려서…”라고 한마디 언급한 이후 박 대통령 주변에는 ‘촉새’뿐 아니라 ‘하마평’까지 자취를 감췄다.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은 대선 당시 캠프 구성 과정을 되돌아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2012년 대선 때 박 대통령은 대선 드림팀을 꾸리기 위해 인재 영입에 직접 발 벗고 나섰다. 위원장급은 물론, 각 분과별 위원 영입까지 직접 챙겼다.

“박근혜 후보께서 통화를 원하십니다.”

박근혜 대선 캠프에서 일했던 주요 인사 중에는 이 같은 전화를 받고 영입된 사례가 적잖다. 박 대통령과 전화 연결을 해준 이는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문고리 3인방 가운데 한 명이었다.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청와대와 내각 인선 과정에서 문고리 3인방의 역할이 컸을 것으로 보고 있다.

참여정부에서 실세 비서관으로 불렸던 한 인사는 “문고리 3인방은 대통령을 오랫동안 모셔왔을 뿐 아니라 현재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부인해도 ‘실세’로 비칠 수밖에 없는 운명”이며 “그들이 맡은 업무 특성상 ‘실세’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공직 인사를 단행하기 전 누군가는 공직 후보자에게 먼저 대통령의 뜻을 전해야 한다”며 “‘메신저’ 노릇을 하는 이가 곧 실세로 여겨진다. 지금의 청와대 체제에서는 문고리 3인방이 그런 역할을 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등산할 때는 지팡이가 큰 힘이 된다. 그러나 강을 건너려면 지팡이 대신 뗏목이, 바다를 건너려면 큰 배가 필요하다. 문고리 3인방은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과 당대표, 대선이라는 등성이를 넘는 동안 17년 가까이 함께해온 지팡이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 대통령 취임 이후 망망대해 같은 국정의 바다를 슬기롭게 항해해야 할 대통령에게 지팡이 구실을 잘해낸 이들이 때로는 뗏목으로, 때로는 큰 배로까지 변신해가며 제 몫을 다 해낼 수 있을지 많은 국민이 의구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주간동아 2015.01.19 972호 (p8~9)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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