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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호 “MLB, 본때를 보여주마”

홈런포, 강한 어깨 장점 아메리칸드림 시간문제

  • 이경호 스포츠동아 기자 rush@donga.com

강정호 “MLB, 본때를 보여주마”

강정호 “MLB, 본때를 보여주마”

포스팅시스템(비공개경쟁입찰)을 통해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을 타진한 넥센 유격수 강정호가 2014년 12월 21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야구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03년 겨울. 그해 56개 홈런으로 아시아 기록을 달성한 이승엽은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날아갔다. 오랜 꿈인 메이저리그 도전이었다. 그러나 빅리그 구단의 반응은 차가웠다. 훗날 이승엽은 “가지 않은 것이 반, 못 간 것이 반”이라고 말했다. 한국 최고 타자였지만 한국 프로야구를 마이너리그 더블A와 트리플A 중간 정도 수준으로 여겼던 미국 팀들은 이승엽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제시했다. 금전적인 부분뿐 아니라 로스터 보장 문제 등 세부 조건도 자존심에 상처를 줬다.

미국 대신 일본 프로야구를 택한 이승엽은 요미우리 4번 타자로 활약하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지만, 메이저리그는 본인이나 야구팬 모두에게 진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2003년은 한국 야구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지금과 많이 달랐다. 한국 야구는 2006년과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4강과 준우승을 차지하며 그 위상이 높아졌다. 2013년 LA 다저스에 입단한 류현진이 2년 연속 14승을 달성하며 ‘한국 최고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정상급 선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러나 양현종(KIA)과 김광현(SK)이 예상보다 훨씬 낮은 포스팅(공개경쟁입찰) 금액을 제시받은 사실은 여전히 세계 최고 선수들이 모이는 빅리그 도전의 어려움을 보여줬다.

20개 아치 넘기면 돈방석

500만2015달러. 넥센 유격수 강정호(27)와 독점교섭권을 따내기 위해 미국 메이저리그 피츠버그 파이어리츠가 써낸 금액이다. 피츠버그는 메이저리그 30구단 중 연봉총액 순위가 27위인 대표적인 ‘스몰마켓’이자 저비용, 고효율을 추구하는 팀이다. 피츠버그의 500만 달러는 부자구단 뉴욕 양키스나 보스턴, LA 다저스의 1000만, 2000만 달러 이상이다.

동양인 타자, 그것도 일본처럼 메이저리그에서 검증 선례가 없는 한국 프로야구 출신 야수에게 500만 달러 선투자는 그 자체만으로 높은 가치와 의미가 따른다. 강정호의 500만2015달러는 역대 동양인 야수 포스팅 3위, 내야수로는 2위 기록이다. 시애틀이 2000년 스즈키 이치로에게 1312만5000달러를 써낸 것이 최고액이었다. 이어 미네소타가 2010년 니시오카 쓰요시에게 532만9000달러를 제시한 것이 2위이자 내야수 1위 금액이다.



교섭권을 따낸 구단이 피츠버그라는 사실이 공개된 후 일부에서는 500만 달러의 액수를 고려해 다른 팀의 전력 보강을 막기 위한 위장 포스팅, 연봉 계약의 어려움 등을 전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피츠버그는 지난 1년간 한국에서 강정호를 가장 세심하게 관찰한 구단이다. 스몰마켓 구단이지만 리빌딩을 완성해 지난해 내셔널리그 최우수선수(MVP) 앤드루 매커천을 중심으로 월드시리즈까지 노리는 강한 전력을 갖췄다.

한국에서 40홈런을 친 강정호가 메이저리그에서 20개 이상을 기록할 수 있다면 포스팅 500만 달러에 2~3년 연봉 계약을 더해 총액 1000만 달러, 혹은 1200만 달러 수준 투자는 매우 성공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20홈런 이상이 가능한 장타력을 갖춘 유격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특별한 존재다. 만약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영입하려면 1억 달러 수준의 실탄이 필요하다.

특히 피츠버그가 이 정도 수준의 투자를 결정했다면 강정호를 풀타임 주전으로 생각한다는 의미다. 보스턴의 500만 달러 포스팅은 백업 멤버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피츠버그는 전혀 다르다. 재정적으로 넉넉한 팀이 아니지만 오히려 긍정적인 요소가 많은 이유다.

강정호가 피츠버그와 계약해 메이저리그 무대에 선다면 한국인 야수로는 3번째, 한국 프로야구 출신으로는 첫 번째 빅리그 야수가 된다. 지금까지 한국인 야수로 메이저리그에서 뛴 주인공은 최희섭(KIA)과 추신수(텍사스)뿐이다. 한국 프로야구 출신은 야수와 투수를 통틀어 류현진뿐이다. 강정호는 최희섭, 추신수와는 포지션과 성장 과정이 전혀 다르다. 최희섭은 전형적인 홈런 타자로 대학 2학년 때 시카고 컵스와 계약해 오랜 시간 마이너리그에서 성장한 후 빅리그에 데뷔했다. 추신수는 고교 때 투수로 시애틀에 입단한 후 타자로 변신했다. 최희섭과 마찬가지로 마이너리그에서 장시간 메이저리그 육성 프로그램에 맞춰 성장했다.

강정호 “MLB, 본때를 보여주마”

2013년 6월 4일 오후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넥센과 삼성의 경기를 찾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

최희섭, 추신수가 원석 자체로 미국에 건너가 그들의 도움으로 오랜 시간 다듬어져 빅리그 그라운드에서 빛을 발했다면, 강정호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성장해 완성된 선수로서 메이저리그 문을 두드리고 있다. 포지션 역시 내야의 꽃 유격수다. 수비 하나는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던 일본 프로야구 정상급 유격수들도 메이저리그에서는 ‘수비를 못 한다’는 수모와 망신을 당했다. 충격적인 실패였다. 마쓰이 가즈오는 일본에서 4차례나 유격수 골든글러브를 받았지만,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유격수를 지키지 못하고 2루로 수비 포지션을 옮겨야 했다. 정교하고 빠른 풋워크는 그대로였지만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강한 타구를 받아 1루로 송구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아시아 유격수 No 편견 깰 터”

다른 내야수들도 빠른 타구에 어려움을 겪었다. 강정호 역시 메이저리그 도전을 시작한 이후 수비에 대한 의문이 많이 뒤따랐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많다. 매우 깊이 있는 야구 이론가 중 한 명인 양상문 LG 감독은 “일본 내야수들은 완벽한 풋워크를 자랑한다. 발놀림만으로도 거의 완벽한 수비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강정호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다. 워낙 어깨가 강해 더 큰 그림을 그리며 수비를 한다. 메이저리그에서는 강정호 같은 성향이 더 유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타격은 강정호의 가장 큰 강점이다. 강정호보다 수비를 잘하는 유격수는 한국 프로야구에도 존재한다. 메이저리그는 물론, 마이너리그에도 강견을 자랑하는 내야수가 즐비하다. 그러나 시즌 128경기에서 40홈런을 치는 유격수는 드물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수비가 첫 번째인 유격수 중에서 시즌 30홈런 이상을 칠 수 있는 타자는 콜로라도의 트로이 툴로위츠키밖에 없다. 역대 유격수 거포로는 칼 립켄 주니어, 알렉스 로드리게스 정도가 꼽힌다.

상대적으로 1루와 3루에는 거포가 즐비하다. 강정호가 유격수 자리를 지켜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고질라’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마쓰이 히데키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시즌 50홈런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시즌 최다 홈런은 31개였다. 구장 크기, 투수의 수준 차가 존재한다. 강정호가 빅리그 첫해 20홈런 이상을 기록한다면 큰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강정호는 2014년 40홈런 중 좌측 18개, 좌중간 8개, 우중간 2개, 우측 5개를 기록했다. 왼쪽 비율이 45%로 가장 많다. 피츠버그 홈구장 PNC파크 좌측 펜스는 98m로 국내 구장에 비해 높지 않다. 적응력에 달렸지만 구장 크기에 겁먹을 필요는 없다.

강정호의 훈련을 도와온 이지풍 넥센 트레이닝 코치는 “현지 언론에서 한국의 타고투저를 얘기하며 강정호의 기록을 평가절하하는 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선수의 노력을 보지 않고선 그런 말을 할 수 없다. 걱정하지 않는다. 2013년 22홈런을 친 후 꾸준한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근육량을 늘려 체중이 4~5kg 증가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강정호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유격수를 하고 싶다. 아시아 유격수는 안 된다는 편견을 깨고 싶다. 일본 선수들도 실패한 내야수, 한국 대표로 해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주간동아 2014.12.29 969호 (p56~57)

이경호 스포츠동아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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