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1

2014.11.03

나도 초다언어 구사자 반열?

7개 국어 구사 대부분 시험으로 공인 자부심

  •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입력2014-11-03 11: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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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초다언어 구사자 반열?
    2003년 우연히 시작하게 된 일본어 공부가 이후 중국어(2005), 프랑스어(2006), 스페인어(2007)로까지 이어졌다. 2007년부터는 4개 외국어를 동시에 유지, 발전시키고자 거의 매일같이 학원을 번갈아 다니면서 공부를 해나가는 고행 길로 접어들게 됐다.

    그 과정에서 2010년에는 ‘50代에 시작한 4개 외국어 도전기’라는 책을 출간해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기도 했고, 개인 버킷리스트 작성을 계기로 2012년 봄에 시작해 1년여 만에 중국어(3월 HSK 6급), 일본어(7월 JLPT N1), 프랑스어(11월 DELF B1), 스페인어(2013년 5월 DELE B2) 능력 평가시험에 모두 합격하는 즐거움도 맛봤다.

    그러나 시험을 모두 성공적으로 끝낸 뒤에도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다. 현상 유지를 넘어 좀 더 높은 수준의 언어 구사 능력을 갖추려면 이전과 변함없이 매일 일정 시간을 할애해 공부에 매진해야 했다. 또 어떤 면에서는 대외적으로 알려진 만큼 그에 상응하는 실력을 유지하기 위해 받는 스트레스까지 더해졌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시험 이후에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은 덕분인지 4개 외국어 모두 전반적으로 실력이 꾸준히 향상됐다. 그러던 중 2013년 ‘언어의 천재들’이란 번역서가 출간됐다는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됐다. ‘세계에서 가장 비범한 언어 학습자들을 찾아서’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의 원서는 2012년 출간된 ‘Babel No More’다.

    저자 마이클 에라드는 미국 언어학자로 ‘초다언어 구사자들의 언어 습득에는 특별한 방법이 있지 않을까’라는 궁금증을 품고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책으로 묶었다. 실증 조사, 인터뷰, 뇌과학 연구자료 분석 등을 통해 그들을 둘러싼 신화와 소문의 진실을 규명하려 했다. 또한 그는 필요에 따라 다양한 언어를 배울 수밖에 없는 현대인에게 초다언어 구사자들에 대한 연구, 분석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리라 보고 연구를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언어 구사 능력 평가 천차만별

    나도 초다언어 구사자 반열?

    초다언어 구사자와 관련한 마이클 에라드의 저서 ‘언어의 천재들’.

    다중언어를 공부하는 처지라 당연히 이런 내용의 책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바쁜 일정상 차일피일 구매를 미루다 비교적 최근에 책을 구해 읽어봤다. 그런데 책을 읽는 도중 그동안 몰랐던 뜻밖의 정보 한 가지를 알게 됐다. 이른바 초다언어 구사자에 대한 정의가 그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여러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을 가리켜 다중언어(multilingual) 구사자라고 부른다. 이 중에서 2개 언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중언어(bilingual) 구사자라 하고 3개 언어를 하는 사람은 삼중언어(trilingual) 구사자라고 특별히 지칭한다.

    그러나 4개 이상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부터는 특별히 정해진 단어가 없이 그냥 다중언어 구사자라고 부른다. 그만큼 4개 이상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 수가 많지 않아 특별히 구별할 단어가 필요치 않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다중언어 구사자는 흔히 그리스어에 어원을 둔 표현으로 폴리글로트(polyglot)라고 부른다.

    이런 다중언어 구사자 가운데 일정 기준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을 특별히 초다언어 구사자(hyperpolyglot)로 정의해 부르는데, 그 기준에 대해 마이클 에라드는 처음에는 관련 학계의 일반 기준에 따라 6개 이상 언어 구사자로 정했다고 한다. 이 기준에 대해 그는 2013년 1월 ‘타임헬스(Time Health)’와 인터뷰에서, 이전의 여러 연구를 통해 다중언어가 통용되는 사회나 국가에서는 특별한 학습 노력 없이도 5개 언어까지 저절로 구사하는 사람이 드물지 않았다는 점에 착안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6개 이상 언어를 구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잖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래서 초다언어 구사자 기준을 좀 더 엄격하게 해 구사자 스스로의 주장으로도 그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 11개 이상 언어 구사자로 상향 조정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문제는 마이클 에라드가 책에서 인정하듯 한 언어를 제대로 구사할 줄 안다는 것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고 확인하느냐 하는 점이었다. 우리 주위에서 보더라도 영어를 할 줄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 중에는 그야말로 고급어휘를 사용하며 자유자재로 말할 줄 아는 사람부터 간단한 생활회화 정도만 가능한 사람, 또는 말은 거의 못하지만 어느 정도 독해는 가능한 사람까지 그 유형이 천차만별임을 알 수 있다.

    마이클 에라드가 시행한 연구에서는 말은 못해도 어느 정도 읽거나 쓸 줄 알면 해당 언어 구사자로 인정해줬다. 심지어 ‘안다’고 하는 정의도 연구 대상자가 직접 판단해 내리도록 했다. 이 때문에 그들이 구사 언어 목록에 당장이라도 말할 수 있는 언어만 포함했는지, 아니면 이제까지 한 번이라도 접해본 언어까지 모두 포함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다중언어 구사 숫자 부풀리기

    또 다른 문제는 휴면 언어의 존재다. 말하자면 한 사람이 구사 가능한 언어에는 언제라도 바로 머리에서 꺼내 말할 수 있는 언어가 있는가 하면, 사용하려면 일정 기간 준비 운동을 통해 휴면 상태의 지식을 깨워야만 하는 언어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언어들까지 구사 언어 목록에 포함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점도 초다언어 구사자의 정의를 어렵게 하는 문제다. 언어학자 프랑수아 그로스장에 따르면, 심지어 자칭 이중언어 구사자 가운데서도 상당수가 두 번째 언어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여기서 내 경우를 살펴봤다. 영어는 일단 오랫동안 공부한 이력과 함께 실제적으로 주위에서 상당 정도의 구사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여기에 지금도 공부하고 있는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스페인어의 경우 1년이란 짧은 기간 내 거의 동시에 공식 시험에 합격했으니 일정 수준 이상의 구사 능력을 공인받은 셈이다.

    독일어도 빼놓을 수 없다. 독일어의 경우 현재는 이른바 휴면 상태가 확실하지만, 고교 3년과 의예과 2년 과정 등 총 5년 동안의 공식적인 수학 경력과 석·박사 대학원 시험을 모두 독일어로 통과하고 독일어권 국가에서 단기체류를 한 경험까지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다중언어 구사자에 충분히 포함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즉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당장 구사 가능한 6개 언어에 휴면 상태인 독일어까지 포함하면 모두 7개 국어 구사자가 되는 셈이다.

    이는 마이클 에라드가 초다언어 구사자로 수정해서 정의한 11개 이상 언어 구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현재 상당수 학자와 일반인이 인정하는 6개 이상 언어 구사자에는 해당하는 것이다. 게다가 언어 구사 능력이 개인적인 주장이 아니라 대부분 시험으로 공인됐다는 점에 가산점까지 주면 초다언어 구사자로 불리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여기서 나 자신이 초다언어 구사자의 범주에 해당한다는 것을 애써 설명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전까지는 있는지도 모르고 관심조차 없었지만, 뒤늦게 알게 된 초다언어 구사자의 학술적 기준에 대해 호사가적 관심이 물론 없을 리 없다. 그러나 그보다는 외국어 공부의 방법론을 좀 더 설득력 있게 소개하고, 독자가 체험적으로 느끼게 하고픈 욕심이 더 커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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