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1

2014.11.03

또 한 해 추억을 새긴 단풍 소리 없이 옷을 벗는다

옥정호·우포늪·축령산

  • 양영훈 여행작가 travelmaker@naver.com

    입력2014-11-03 10:5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깊어가는 가을, 일하기 좋은 만큼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도 좋은 계절이다. 많은 사람이 단풍을 보려고 ‘전투처럼’ 휴가에 나서지만 자칫 잘못하면 몸과 마음에 상처를 내는 여행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올가을 그곳에 가 있는 것만으로도, 슬슬 게으르게 걷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에 위안을 주고 치유 효과를 볼 수 있는 국내외 여행지 10곳을 추천한다.

    ■ 섬진강 옥정호

    전북 진안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 물길은 212km를 흘러 남해에 합류된다. 그 강의 유일한 댐인 섬진강댐은 1926년 완공됐다. 섬진강댐 건설로 생겨난 옥정호(玉井湖)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물빛 깨끗한 인공호수로 꼽힌다. 그 이름에서 짐작되듯 옥정호의 물빛은 맑은 옥빛을 띠고, 잔잔한 수면은 우물처럼 고요하다.

    아름다운 옥정호가 한눈에 들어오는 천연전망대가 있다. 전북 임실군 운암면 입석리에 위치한 국사봉(475m)이 그곳이다. 굳이 정상까지 올라갈 필요는 없다. 749번 지방도 변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가파른 계단을 조금만 오르면 데크전망대 3개가 잇달아 나타난다. 이 전망대에서도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시원스러운 조망을 누릴 수 있다.

    노령산맥의 첩첩한 산줄기에 둘러싸인 옥정호는 마치 우람한 봉우리들에 에워싸인 백두산 천지를 떠올리게 한다. 쾌청한 날에는 지척의 순창 회문산뿐 아니라 멀리 진안 마이산까지도 아스라이 보인다. 호수 속 작은 섬 ‘외안날’(붕어섬)도 발아래 빤히 내려다보인다. 하지만 보기 드문 장관은 일교차가 큰 가을철 동틀 무렵에 펼쳐진다. 옥정호에서 몽실몽실 피어오른 물안개가 장엄한 구름바다를 만드는데, 그야말로 선경(仙境)이 따로 없다. 더욱이 산봉우리만 뾰족하게 솟은 구름바다 위로 붉은 해가 떠오르는 광경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단, 주말이나 휴일 새벽에는 사진 찍는 사람들이 몰려 번잡스럽다는 점을 유념해야 된다.



    또 한 해 추억을 새긴 단풍 소리 없이 옷을 벗는다

    국사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옥정호 운해.

    또 한 해 추억을 새긴 단풍 소리 없이 옷을 벗는다

    옥정호숫가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749번 지방도.

    또 한 해 추억을 새긴 단풍 소리 없이 옷을 벗는다

    구절초테마공원의 안개 자욱한 아침 풍경.

    산자수명한 옥정호숫가에는 27, 30번 국도와 749번 지방도가 종횡으로 가로지른다. 자동차에 몸을 싣고 그 길을 달리는 것만으로도 머릿속까지 상쾌해지는 듯하다. 특히 749번 지방도가 지나는 임실군 운암면 입석, 용운, 마암리 일대의 가을 풍광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옥정호에는 섬진강의 본류뿐 아니라 크고 작은 여러 지류가 모여든다. 순창군 쌍치면에서 흘러온 추령천도 그중 하나다. 추령천 물길이 옥정호 너른 품에 안길 즈음 산비탈 솔숲에는 구절초테마공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구절초 군락이다. 들국화인 구절초는 꽃향기가 진하고 꽃빛깔이 아름답다.

    정읍 산내면 매죽리 한 야산에 조성한 구절초테마공원은 10월 초순에서 중순 사이가 가장 아름답다. 하루 중에는 안개 자욱하게 깔린 새벽과 아침 풍경이 인상적이다. 짙은 안개 속에서 구절초 꽃의 하얀색과 소나무의 초록빛이 묘한 대비를 이루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수만 송이 구절초가 흐드러지게 핀 솔숲길을 자분자분 걷노라면 세상의 어떤 근심과 우환마저 까마득히 잊히게 마련이다.

    여행정보

    ● 숙식

    숙소:국사봉모텔(063-643-0440), 옥정호마실길펜션(063-534-5553), 옥정호호숫가펜션(063-538-7116)

    맛집:청운정(민물매운탕/ 063-221-8080), 구암산장(붕어찜/ 063-643-0349), 산내매운탕(063-538-4067), 구절재휴게소가든(다슬기칼국수/ 063-534-3037)

    ●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서전주IC→원당 교차로(27번 국도, 순창 방면)→운암 삼거리(749번 지방도)→국사봉 입구→운암 삼거리→산내면 소재지(55번 국지도)→구절초테마공원

    ■ 창녕 관룡사와 우포늪

    또 한 해 추억을 새긴 단풍 소리 없이 옷을 벗는다

    동틀 무렵의 우포늪 풍경.

    경남 창녕의 진산인 화왕산 옆에는 관룡산(739m)이 우뚝하다. 솔숲 무성하고 기암괴석이 많은 골산(骨山)이다. 이 산 남쪽 기슭에 관룡사가 자리 잡았다. 신라 진평왕 5년(583) 증법국사가 창건했다는 천년고찰이다. 절 초입부터 사람들 마음을 붙잡는 것이 즐비하다. 맨 처음 마주치는 것은 돌짐승 한 쌍. 해학적이고도 친근감 넘치는 얼굴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살포시 미소 짓게 한다.

    관룡사에는 일주문이 따로 없다. 자연석으로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지붕을 올린 석문이 일주문 구실을 한다는 점도 특이하다. 경내에 들어서면 병풍처럼 둘러선 관룡산 암봉들이 먼저 눈길을 잡아끈다. 정면에 우뚝한 대웅전(보물 제212호) 안에서는 피리 부는 선녀와 사슴, 거북, 용 등이 화려하게 조각된 수미단(須彌壇·불상 대좌)을 눈여겨볼 만하다. 대웅전 안에 있는 관음보살 벽화는 올해 3월 보물 제1816호로 지정됐다. 그 밖에도 대웅전 맞은편 원음각에 올라 바깥 풍경을 관조하는 것도 관룡사에서 느끼는 소소한 재미 가운데 하나다.

    관룡사를 찾았다면 ‘용선대 부처님’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 수많은 석불 가운데 가장 장엄하면서도 호방한 곳에 자리 잡았다. 관룡사 경내를 뒤로하고 조붓한 솔숲길을 15분가량 오르면 집채만한 용선대 바위가 눈앞에 우뚝하다. 이 바위에 좌정한 ‘창녕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95호)의 절묘한 배치를 실감하려면 위쪽으로 10m쯤 떨어진 바위에 올라서야 된다. 산 아랫마을과 허공에 떠 있는 듯한 용선대, 부처님이 고스란히 시야에 들어온다. 반야용선, 즉 지혜의 배를 탄 부처님이 번뇌와 고통의 사바세계에서 허우적거리는 중생을 구제해 극락세계로 향하는 듯한 형상이 장엄하기 그지없다. 불자가 아니어도 가슴에 불심이 절로 생기는 듯하다. 망연히 바라보고만 있어도 어느덧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낄 수 있다.

    창녕에는 용선대 부처님 못지않게 마음에 울림을 주는 곳이 또 있다. 우리나라 최대 내륙 습지인 우포늪이다. 사시사철 어느 때라도 아름다운 곳이지만, 특히 안개 자욱한 가을날 새벽 풍경이 압권이다. 이곳의 독특한 풍광과 건강한 생명력을 직접 느끼려면 길이 8.4km 우포늪 생명길을 걸어봐야 한다. 둑길을 지나 물길을 건너고, 갈대숲을 거쳐 솔숲을 가로지르며 우포늪의 4개 습지를 모두 둘러볼 수 있다. 길을 걷는 내내 원시적인 자연미를 간직한 우포늪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늪지 곳곳에서 같은 종끼리 모여 먹이활동을 하는 철새들도 만나게 된다. 대부분 평탄한 흙길이라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완주할 수 있다. 이맘때쯤에는 곳곳에 군락을 이룬 보랏빛 쑥부쟁이꽃과 은빛으로 일렁이는 억새밭이 아름답다.

    또 한 해 추억을 새긴 단풍 소리 없이 옷을 벗는다

    천년의 세월 동안 용선대 바위에 좌정한 채 사바세계를 굽어보는 석조여래좌상.

    여행정보

    ● 숙식

    숙소:참좋은황토펜션(055-521-1155), 동정호모텔(055-521-0226), 엠모텔(055-533-0566), 우포늪단감펜션(010-3029-2070), 우포고요펜션(055-532-1425)

    맛집:고향보리밥(보리밥·송이밥/ 055-521-2516), 전통민속쌈밥(송이돌솥쌈밥/ 055-521-3279), 왕순한우식육식당(수구레국밥/ 055-532-1711), 우포랑따오기랑(우렁이국수/ 055-532-4968)

    ● 가는 길

    중부내륙고속도로 창녕IC→오리정 사거리(우회전)→공설운동장 삼거리(좌회전, 5번 국도)→계성 교차로(좌회전)→관룡사

    ■ 장성 축령산 편백나무숲

    또 한 해 추억을 새긴 단풍 소리 없이 옷을 벗는다

    편백나무와 삼나무 수백만 그루가 울창한 ‘장성 치유의 숲’.

    경기도 축령산은 잣나무숲이 좋다. 반면 전라도 축령산(620m)은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울창하다. ‘문수산’으로도 부르는 전라도 축령산은 전남 장성군과 전북 고창군의 경계를 이룬다. 이곳의 편백나무와 삼나무 숲은 우리나라 인공림 가운데 가장 건강하고 아름다운 숲으로 손꼽힌다. 산림청이 ‘22세기 후손에게 물려줄 숲’으로 지정했는가 하면, 2000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축령산 편백나무숲은 고(故) 임종국(1915~87) 씨의 남다른 사명감과 뜨거운 열정의 산물이다. 6·25전쟁 직후인 1950년대 중반부터 숲 가꾸기에 큰 관심을 갖기 시작한 임씨는 57년부터 약 20년 동안 축령산에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76년까지 축령산 일대 5.96km2(180만2900평)에 모두 253만 그루의 편백나무와 삼나무를 심었다. 임씨는 고인이 돼서도 축령산을 떠나지 않았다. 축령산 중턱 한 느티나무 아래 묻혔다.

    임씨가 조림한 축령산 편백나무, 삼나무숲은 여러 우여곡절 끝에 국유림이 됐다. 산림청은 ‘장성 치유의 숲’이라 이름 붙이고 무료로 개방했다. 숲에는 8.5km 임도를 중심으로 여러 갈래 길이 사방으로 연결돼 있다. 숲내음숲길(2.2km), 산소숲길(1.9km), 건강숲길(2.9km), 하늘숲길(2.7km) 등으로 명명한 4개 치유숲길도 있다. 숲길 곳곳에 설치된 평상에서 편안히 쉬면서 숲의 기운을 만끽할 수 있다.

    편백나무와 삼나무숲은 피톤치드(phytoncide)의 보고다. 식물이 해충, 병원균, 곰팡이의 공격에 맞서려고 내뿜는 피톤치드는 강한 살균력을 지녔다. 사람의 심폐기능을 강화하고, 아토피 등 피부질환이나 스트레스 해소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 그래서인지 축령산의 편백나무, 삼나무숲길을 찬찬히 걷노라면 진한 피톤치드 향기가 온몸 구석구석 스며들어 심신이 날아갈 듯 가뿐해진다. 괜스레 마음까지 달뜨고 기분도 좋아지는 것을 뚜렷이 느낄 수 있다.

    축령산 서쪽 기슭에는 백제 의자왕 4년(644)에 처음 지었다는 문수사가 자리한다. 고찰이긴 하지만 근래 지은 건물이 많아 고풍스러운 멋을 느끼기는 어렵다. 절보다 오히려 주변 단풍나무숲이 더 인상적이다. 수령 100~400년가량의 단풍나무 500여 그루가 자생하는 이 숲은 우리나라 유일의 천연기념물(제463호) 단풍나무숲이다. 이곳 단풍나무는 잎 모양이 애기 손바닥을 닮았대서 ‘애기단풍’이라 부른다. 매년 11월 초쯤 애기단풍의 붉은 빛깔이 절정에 이르면 문수사가 시뻘건 불길에 휩싸인 듯한 장관이 연출된다.

    또 한 해 추억을 새긴 단풍 소리 없이 옷을 벗는다

    고창 문수사의 단풍나무숲. 국내 유일의 천연기념물 단풍나무숲이다.

    여행정보

    ● 숙식

    숙소:편백수련관(070-8836-4848), 증암산촌휴양관(061-393-1414), 모암편백펜션(010-6369-6940), 축령산편백하우스(010-2555-5588), 아리숲펜션(010-8542-3868)

    맛집:백련동편백농원(061-393-7077), 금고계곡(닭볶음탕/ 061-393-5800), 풍미회관(한정식/ 061-393-7744),

    ●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백양사IC→백양면 소재지(봉암로)→북일면 신흥리 삼거리(우회전, 898번 지방도)→금곡영화마을(축령산 편백나무숲북쪽 마을)

    고창담양고속도로 장성물류IC→모암리(축령산 편백나무숲 동남쪽 입구) 또는 추암리(축령산 편백나무숲 서남쪽 입구)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