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1

2014.11.03

‘아이돌’만으로 만리장성 못 넘는다

대형 엔터 회사 ‘멀티비즈니스’로 거대 중국 시장에 도전

  • 박설이 TV리포트 기자 manse@tvreport.co.kr

    입력2014-11-03 09: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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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돌’만으로 만리장성 못 넘는다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회장과 중국 바이두그룹 리옌훙 회장이 10월 8일 베이징 바이두 본사에서 업무제휴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왼쪽). 중국에서 가장 핫한 한류 그룹 EXO.

    중국 음악시장에서 한국 아이돌이 주축이 된 케이팝(K-pop) 열풍이 뜨겁다. 중국 시장은 한국 엔터테인먼트(엔터) 종사자라면 누구나 진출을 원하는 기회의 땅이다. 데뷔를 준비하는 연습생들에게 중국어 습득은 필수 과정이 됐다. 중국 청소년의 마음과 지갑을 열려면 그들의 기호와 취향을 고려한 멤버 발탁도 필요하다. 글로벌 음악시장이 주목하는 한국 아이돌은 아시아의 아이돌이 된 지 오래다.

    국내 최대 엔터 회사인 SM엔터테인먼트(SM)는 일찌감치 중국인 멤버를 포함한 슈퍼주니어로 중국 시장 진출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냈다. 이후 중국어권 유닛 그룹 슈퍼주니어M으로 중국인을 위한 또 다른 슈퍼주니어를 만들었다. 다른 엔터 회사들도 앞다퉈 외국인을 그룹 멤버에 포함하는 전략을 택해 현지화 공략을 펼쳤다. JYP, YG, FNC, 에이큐브 등 한국의 유수 엔터 회사들은 해외 인재를 발굴하고자 글로벌 오디션을 진행 중이다.

    중국 기업들과 합작 및 협업

    중국에서 케이팝만으로 뮤직 비즈니스에 성공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검열이 철저하고 시장이 보수적인 데다, 케이팝 자체가 대중에게 보편적으로 어필하는 스타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해적판과 불법다운로드를 통제할 수 없는 시장이라 음반 판매 수익을 내기도 어렵다. 결국 온라인에서 노래나 퍼포먼스로 화제를 모아 중국인 사이에서 인지도를 쌓고, 현지에서 공연과 방송 무대에 섭외될 정도가 돼야 돈을 만질 수 있다.

    결론적으로, 광대한 중국 시장이라고 해도 아이돌만 가지고는 오래 ‘장사’하기 힘들다. 대형 엔터 회사들은 아이돌의 인기로 끌어 올린 회사 인지도를 이용해 중국 현지 기업들과 새로운 아이템으로 다양한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며 또 다른 형태로 진화 중이다.



    중국에 있는 한류 스타 팬의 스케일은 대단하다. 고가 선물은 기본이고, 스타 이름으로 산간 지역에 학교를 짓거나 사회단체에 거액을 기부한다. 스타 얼굴이 새겨진 플래카드로 거리를 화려하게 수놓기도 한다. 인구가 많은 만큼 움직이는 액수도 남다르다. 백만장자가 1억 명이라는 엄청난 자본력의 중국이 새로운 수익 구조 창출의 주 무대가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대형 엔터 회사들은 중국 현지 기업과의 합작을 통해 창출한 수익으로 또 다른 아이돌을 육성해내는 선순환 구조를 실현하고자 세계 시장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보수적인 중국 시장에 직접 진입하기 힘든 점도 대부분 엔터 회사가 중국 기업과 합작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에프엑스(f(x)), EXO 등 한류 아이돌 그룹을 대거 보유한 SM은 중국에서 엔터 회사로서 인지도를 충분히 쌓았다. 이를 바탕으로 현지 정보기술(IT) 기업 및 대형 엔터 회사와 손잡았고, 중국에서 예능프로그램을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중국 방송계는 특히 검열을 비롯한 중국 당국 방침상 진출에 한계가 있다. 엔터 회사들이 온라인 유통에 특히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중국 최대 인터넷 검색 포털사이트 바이두는 SM과 파트너십을 유지 중이다. SM은 5월 바이두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소속 아티스트의 음원, 뮤직비디오 등 온라인 콘텐츠를 ‘바이두 뮤직’과 바이두 산하 동영상 공유 사이트 ‘아이치이’ 등을 통해 유통하고 있다.

    중국 시청자만을 위한 콘텐츠 제작도 시도했다. SM 자회사 SM C·C는 예능프로그램 ‘최강천단’ ‘슈퍼주니어M의 게스트하우스’를 만들었다. 지난달엔 홍콩 최대 엔터 기업인 미디어아시아(환야그룹)와 합작 전략 제휴를 체결하고 대규모 펀드인 ‘드래건 타이거 캐피털 파트너스(DTCP)’를 설립했다. 200억 원의 출자금으로 시작해 연내 1000억 원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으로 중국에서 드라마, 영화 등 문화 콘텐츠에 투자할 예정이다.

    2PM과 원더걸스, 미쓰에이로 회사 인지도를 높인 JYP는 또 다른 기회를 잡았다. 2PM과 원더걸스를 중국 최고 인기 리듬액션게임인 ‘QQ현무2’ 모델로 내세워 그룹과 회사를 중국 시장에 알리는 데 성공한 것. 이후 바이두와 음원 계약을 맺었고, 중국 최대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쿠’와 함께 소속 그룹 GOT7을 내세워 ‘아이 갓 세븐’을 제작했다. 중국 배우 웨이다쉰과 전속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해 현지에서 에이전시 사업도 펼치고 있다.

    ‘아이돌’만으로 만리장성 못 넘는다

    제일모직과 YG엔터테인먼트가 손잡고 만든 패션 브랜드 ‘노나곤’이 10월 국내외 매장에 첫선을 보였다. YG엔터테인먼트 양현석 사장과 JYP엔테인먼트 박진영 사장(왼쪽부터).

    빅뱅과 싸이로 대표되는 YG는 중국 유쿠에 소속 아티스트 영상을 독점 제공하는 형태로 현지 IT 기업과 손을 잡은 것 외에 패션, 코즈메틱 사업에까지 뛰어들며 엔터 회사 가운데 가장 다양한 수익 구조를 실험하고 있다. 9월에는 글로벌 기업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투자 자회사 엘캐피털아시아로부터 610억 원을 유치했다. 이 소식은 미국 ‘빌보드’지가 주목할 정도로 이례적인 사례로 기록됐다. 앞서 YG는 제일모직과 제휴해 9월 캐주얼 패션 브랜드 ‘노나곤’을 성공적으로 론칭했다. 지난해 9월 광둥 환야그룹과 화장품 기획, 생산, 유통에 대한 합작 법인을 설립, 10월 색조 화장품 브랜드 ‘문샷’을 출시해 화제를 모았다.

    ‘도미노 타격’ 실패 사례 곱씹어야

    현재 중국에서 가장 핫한 한류 그룹은 EXO다. 하지만 중국인 멤버 크리스와 루한이 데뷔 3년도 채우지 않고 소속사 품을 떠나려고 소송을 제기하며 파장을 일으켰다. 연이은 멤버 이탈에 따른 SM의 이미지 실추는 중국인을 이용한 현지화가 큰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케 했다. 이는 SM의 여러 사업에 도미노 타격을 입힐 개연성도 있다. SM은 이런 일련의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기타 수익사업을 수성하려면 매니지먼트 회사로서의 본업을 바르고 성실하게, 또한 탄탄하게 해나가야 한다는 교훈을 잘 새기고 대비해야 한다.

    그렇다면 위험 요소 극복을 위해 국내 엔터 회사는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 가장 정직한 방법은 한국 고유의 스타일을 살린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양산하는 것이다. 내실이 튼튼해야 위험에도 흔들리지 않듯이, 아이돌을 육성하려면 더욱 견고한 기획력이 필요하다. 물론 일차적으로 고민할 시장은 한국이 돼야 한다.

    애초 중국인이 관심을 보인 건 한국 스타일이지 중국식 한국 스타일이 아니다. 문화를 선도하는 한국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새로운 콘텐츠 및 인재 발굴을 위한 연구를 지속해야 한다. 빠르게 수익을 낼 수 있는 복사, 붙여 넣기식 벤치마킹보다 실패를 극복하고 한국과 아시아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선진적 전략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책임감도 요구된다. 중국에 많은 한국 기업이 나가 있지만, 대중에 가장 깊이 각인되는 존재는 아이돌, 한류 스타이기 때문이다. 아이돌을 이용한 사업을 기획하고 있다면 기업을 넘어 한류 전반에 미칠 영향까지 고려해야 한다. 제품에 대한 불만은 곧 스타 이미지와 인기, 한류의 위기로 직결된다.

    중국 현지에선 어떤 물건이든 ‘한국’이란 수식어만 붙으면 판매량이 늘어날 정도로 한류가 절정에 올랐다는 전언이다. 재미있는 드라마, 멋진 아이돌, 입고 싶은 옷, 써보고 싶은 화장품이 많은 한국이란 이미지 덕에 엔터 회사의 ‘해외 부업’도 가능하다. 엔터 회사의 글로벌 사업 다각화는 이제 걸음마 단계다. 일을 벌인다고 곧바로 돈이 벌리는 게 아닌 데다, 실패 사례도 아직 알려진 바 없어 누구를 보고 배워야 할지도 애매하다. 선구자로서 새로운 사업모델을 창조해나가는 이들의 도전에 시선이 고정되는 이유도 바로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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