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8

2014.10.13

‘깜짝쇼’ 몸부림으로 고립 탈출?

9월 이후 이어진 ‘매력 외교’의 마지막 한 수…남북 양측에 찾아온 좋은 기회

  •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donykim@kyungnam.ac.kr

    입력2014-10-13 11: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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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깜짝쇼’ 몸부림으로 고립 탈출?

    인천아시아경기대회 폐회식이 열리는 10월 4일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한 북한 대표단 특별기. 고려항공이 아닌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전용기로, 꼬리 부분에 왕별과 조선민주주의인민 공화국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북한 ‘실세 3인방’의 돌발 방문이 인천아시아경기대회 폐회식 참석만을 위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양측이 2차 남북 고위급 접촉에 합의했다는 설명에도 그 정도 성과를 보고자 최고위급 인사 3인이 나섰겠느냐는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더욱이 이들이 청와대 예방을 거절한 것은 판단을 더 어렵게 만든다. 이번 방문을 통해 평양이 의도한 정치적 효과가 무엇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시각은 다양하게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이번 방문이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신상문제와 관련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목표가 깔렸다고 평가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를 이번 방문의 본질적 의도이자 목적이라고 보기에는 여전히 뭔가 부족하다. 김정은의 건강문제나 남북관계 개선은 방문 목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이번 방문의 결과이자 부산물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각은 북한의 선택을 남북문제라는 편협한 시각으로 보려는 고정된 틀에서 나온다. 따라서 더 국제적인 시각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좀 더 거시적 관점에서 상황을 정리하지 않으면 분석이든, 정책이든 방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먼저 김정은의 건강에 문제가 있거나 평양에 권력 불안정 사태가 발생해 이를 은폐하고자 대표단을 파견한 것 아니냐는 추측은 북한 내부 문제에 과도하게 함몰됐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김정은이 건강상 이유로 북한을 지도할 수 없는 유고(有故) 상태라면, 북한 같은 체제에서 이를 은폐하고자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처럼 권력 핵심에 있는 인물을 나라 밖으로 내보낸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평양 의도 가늠하기 쉽지 않아



    김정은 신변에 이상이 없음에도 지속되는 외부의 의심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그 정도 의혹은 김정은이 등장하는 동영상 공개만으로도 말끔하게 일소할 수 있다. 물론 북한에서 이 정도 최고위급 인사를 남으로 내려보내는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김정은뿐이고, 결과적으로 한국 언론이 그의 건강을 화제로 삼아준 덕에, 이번 대표단 방문을 계기로 그의 건재를 과시하는 뜻하지 않은 부산물을 얻었음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북한 대표단이 폐회식에 참가한 날은 공교롭게도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를 맺었던 10월 4일이었고, 이 때문에 이번 대표단 파견을 2009년 김대중 대통령 서거 특사조문단과 비교하는 분석도 적잖게 나왔다.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대외적 고립 상황을 타개하려는 목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에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북한이 희망하는 만큼 충분한 수준으로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타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일정 부분 인식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이지만, 우리 사고방식과 달리 지금 평양의 정책결정자들에게 남북관계는 해결해야 할 다양한 대외문제 가운데 비교적 우선순위가 높은 하나의 조건일 뿐이라는 뜻이다.

    북한이 이번 방문으로 남측과의 해빙을 도모하려고 마음먹었다면, 충분한 시간 여유를 둔 사전 통보와 면밀한 사전협상을 통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준비했어야 옳다. 그러나 대표단은 김정은의 친서도 가져오지 않았고 우리 측이 제안한 청와대 예방도 에둘러 거절했다. 대표단 방문을 결정하면서 이러한 효과 극대화 장치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뜻이다. 2차 고위급 접촉 역시 꼭 성사시키겠다고 마음먹고 온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결국 남은 것은 한국 사회 내부에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요구를 키우는 정도의 효과다.

    이 대목에서 잠시 시선을 외부로 돌려보자. 9월 이후 강석주 조선노동당 국제담당 비서, 이수용 외무상 등 북한 최고위급 인사들은 쉴 새 없이 세계 각국을 방문해왔다. 여기에는 대외 환경을 유리하게 바꾸라는 김정은의 지시가 있었다는 게 정설이다. 9월 27일 이 외무상은 유엔에서 “우리의 최대 목표는 경제 개발과 인민 생활 향상이며, (이를 위해) 평화로운 주변 환경을 원한다”고 언급했다. 최근 북한의 정책 화두는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을 위한 경제문제 해결과 문명강국이고, 이는 경제적 실리 추구에만 국한돼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스포츠행사는 이런 의도로 접근하기에 매우 매력적인 이벤트다. 이렇게 보면 핵심 실세 3인이 포함된 대표단의 인천아시아경기대회 폐회식 참석 역시 이른바 ‘외교 총공세’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종합 7위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받아든 스포츠행사 참가를 명분으로 선보인 적극적인 미소 공세다. 그간 유럽과 유엔을 돌며 선보인 이미지 개선 노력을 다시 한 번 펼쳐 보인 셈이다. 그것도 대통령이 직접 유엔 총회에서 인권과 북핵 문제를 언급하며 자신들을 외교적으로 압박한 남한을 그 무대로 삼았다.

    북한군 서열 1위인 총정치국장은 군복까지 입은 채 인천국제공항에 내려 아무 일 없다는 듯 시간을 보낸 뒤 여유 있는 표정으로 웃으며 귀국길에 올랐다. 정치적 언행을 자제하면서 의연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자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구체적인 목표를 가진 특사라기보다 명분에 충실한 고위급 매력 외교를 선보인 것이다. 대외적 자신감의 과시다.

    북한의 이러한 외교 이벤트가 어떤 성과를 만들어낼지 섣불리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듯하다. 평양 당국자들 역시 국제 환경이 생각만큼 녹록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을 것이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남한을 무대로 한 외교 이벤트가 대외적 고립 타개를 위해 ‘결정적 한 수’가 돼주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긍정적 결과물은 우리 몫

    주목할 부분은 북한 대표단 방문 이후 한국 사회 내부에서 커지는 기대다. 우리도 그만큼 간절했기 때문일까.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요구는 저만큼 앞서간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렵고, 북한 대표단 방문 이후 우리는 깨지기 쉬운 달걀 한 판을 들고 서 있는 모양새다. 김정은 신변에 대해 쏟아진 관심이나 박근혜 정부의 대북 압박이 먹힌 것이라는 식의 가벼움 때문에 달걀 중 몇 개는 이미 깨져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소중히 다루되 소심하지 않게 능동적으로 다가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자칫 허무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렇게 놓고 보면 평양이 어떤 목적을 갖고 고위급 대표단을 보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양측 모두에게 기회라는 점이고, 북한의 애초 의도를 넘어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긍정적 결과를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 몫이라는 사실이다. 그 관건은 다름 아닌 신뢰다. 신뢰를 쌓을 기회마저도 그리 자주 오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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