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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北 3인 인천 방문 진짜 이유

눈으로 본 살벌한 ‘권력게임’

상호견제 ‘유일한 2인자’ 없는 김정은식 통치 인천서 만천하에 공개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눈으로 본 살벌한 ‘권력게임’

짧은 놀라움, 그리고 긴 고민. 10월 4일 전격적으로 인천아시아경기대회 폐회식에 참석한 북한 고위급 3인 대표단의 행보가 남긴 여운이다. ‘권력 서열 2, 3위의 동시 방문’이란 충격과 혼란에 가려져 있던 이 돌발 상황은 시간이 지날수록 뚜렷하게 그 실체를 드러낸다. 과연 평양은 무엇을 노렸고,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가. 각각 북한 내부 정치와 대외관계라는 잣대로 가늠한 두 개의 글로 사건의 실체를 냉정하게 되짚어본다.

황병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국가체육지도위원장, 김양건 대남담당 비서. 10월 4일 오전 9시 52분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전용기에서 내린 인물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분단 이후 최초로 남한 땅을 밟은 전·현직 북한군 최고수뇌부. 대남관계 베테랑인 김양건이 대표단에 포함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권력 서열 2위를 두고 치열한 다툼을 벌인 것으로 알려진 황병서와 최룡해의 동시 방문은 궁금증을 증폭하기에 충분했다.

“인천아시아경기대회 폐회식 참석이라는 공식 목적에 따라 체육 분야 전체를 관할하는 최룡해의 방문은 필수적이었고, 이번 방문의 무게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2인자인 황병서가 대표단 수장을 맡은 것이다.”

방문 직후 나온 정부 당국자들의 분석은 대략 이랬다. 그러나 사건의 충격이 상당 부분 가라앉은 현재 시점에서 이를 반 발짝 떨어져 살펴보면 한층 흥미로운 그림이 그려진다. 북한의 권력정치, 특히 ‘김정은의 눈’으로 이를 해석해보면 더욱 그렇다.

‘여러 권력집단이 특정인 제거를 위해 연합했다가 ‘거사’가 끝나면 다시 이들 사이에 권력투쟁이 벌어져 새로운 2인자를 제거하는 패턴의 반복.’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평양에서 진행돼온 권력게임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2012년 7월 장성택 세력과 당 조직지도부, 국가안전보위부 등 세력연합은 당시 군부 핵심이던 이영호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을 숙청했고, 2013년 연말에는 장성택이 ‘어제의 동맹군’에 의해 제거됐으며, 올해 4월 말 황병서의 총정치국장 임명과 함께 조직지도부가 인민군마저 접수했다는 게 그 골자다.



눈으로 본 살벌한 ‘권력게임’

10월 4일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폐회식에 참석한 남북한 관계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 황병서 북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북한 국가체육지도위원장 겸 당비서,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 류길재 통일부 장관. 대화 상대가 없는 최룡해 당비서는 문서를 읽고 있다. 이 문서는 김양건 부장이 현장에서 수행원으로부터 받아 황병서 국장에게 보고한 뒤 넘겨준 것이다.

새로운 2인자 제거 패턴의 반복

이렇게 놓고 보면 그간 벌어진 권력게임의 큰 줄기는 ‘모든 권력을 당 조직지도부로’였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조직지도부 전성시대’의 한 축이던 황병서가 권력 2인자 자리를 접수한 것이야말로 그 대미(大尾)라는 시각이다. 최룡해가 맡고 있던 총정치국장과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접수한 황병서야말로 김정은 시대의 키플레이어라는 게 그간의 대체적인 분석이었다.

이번 방문을 계기로 대대적으로 보도된 바와 같이, 최룡해는 빨치산 영웅 최현의 아들로 ‘백두산 혈통’의 상징성을 지닌 인물이다. 경력 대부분을 당료로 보냈던 그가 2012년 4월 총정치국장에 임명된 것은 이러한 정통성 덕분이었다. 김정일 시대 선군정치(先軍政治)로 비대해진 인민군 세력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군부도 쉽게 반발할 수 없는 인물을 앞세운 셈.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조직지도부의 인민군 접수’라는 거사를 부드럽게 진행하기 위한 일종의 중간다리 구실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최룡해가 총정치국장직에서 물러난 4월과 국방위 부위원장직을 내려놓은 9월 말, 남측 안보당국자들은 거듭 ‘효용가치를 다했기 때문에 실각된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당장 처형되거나 쫓겨나는 등의 극적인 사건은 없지만, 황병서를 필두로 한 조직지도부 세력에 의해 서서히 권력 핵심에서 배제되는 과정에 있다는 설명이었다.

2010년 이전에는 군 경력이 없던 황병서의 총정치국장 취임 이후, 군부는 대대적인 인사숙청을 경험하게 된다. 총정치국의 양대 직위인 조직부국장과 선전부국장을 시작으로 전군 각 부대의 정치위원을 일제히 교체하는 작업이 단행된 것. 이로 인해 마지막 ‘동맹’이던 조직지도부-군부 세력연합이 공식적으로 폐기되고, 조직지도부가 군부마저 차지하게 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름 하여 ‘황병서 천하’다.

그러나 이번 인천 방문에 최룡해가 동행했다는 사실, 특히 여전히 자신만만한 그의 태도와 말투는 이 같은 그간의 독법(讀法)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동행한 북한 경호원들이 황병서만 호위한다거나 김양건 비서가 거듭 깍듯한 존대를 사용한 것만으로도 황병서의 권력 2인자 지위는 의심할 바 없지만, 최룡해 역시 당초 예상처럼 내쳐진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가능하기 때문. 이전의 분석대로 그의 효용가치가 다했다면, 마침내 권력 독차지에 성공한 조직지도부 세력이 최룡해의 존재감이 다시 한 번 부각될 수 있는 이번 행사에 그를 동참하게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절대적 위상 다시 한 번 과시

눈으로 본 살벌한 ‘권력게임’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서부지구 작전비행장에서 열린 전투비행술 경기대회를 관람했다며 북한 ‘노동신문’이 5월 10일 보도한 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직전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에서 해임된 최룡해, 맨 왼쪽이 새로 임명된 황병서다.

한 걸음 더 나아가보자. 4월 이후 국내외 전문가그룹 일각에서는 ‘김정은 꼭두각시설(說)’이 회자된 바 있다. 북한의 실제 권력은 조직지도부고, 김정은은 이들이 앞세운 ‘장식품’에 불과하다는 일종의 가설이다. 이러한 관점은 북한 내부의 권력투쟁을 한층 더 자극해 지배체제를 흔들고자 했던 당시 남측 정보당국의 행보와 맞물려 북한 내부에서조차 빠른 속도로 퍼져나간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최룡해가 이번 방문에 동행함으로써 이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됐다. 김정은이 황병서로서는 반가울 리 없는 ‘최룡해 동행’을 밀어붙일 만한 힘을 유지하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꼭두각시설에 대한 그 나름의 반박인 셈. 한 국책연구기관 전문가의 말이다.

“상황을 복기해보면 이번 대표단 구성은 ‘황병서 1인 천하’ 대신 최룡해의 위상을 일정 부분 지속해 상호견제 구도로 끌고 가려는 김정은 제1비서의 계산에 따른 것이라는 결론이 가능하다. 북한에 ‘유일한 2인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자신 한 사람 외에는 모두가 서로를 견제하는 상황을 이어나가려는 시도다. 건강문제로 한 달 이상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김정은으로서는 어쩌면 꼭두각시설을 잠재우고 본인의 절대적 위상을 다시 한 번 과시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거꾸로 보자면 ‘조직지도부 천하’에 대한 설왕설래에도 황병서가 여전히 2인자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김정은 권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전 패턴으로 보자면 꼭두각시설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숙청 1순위’감이었을 황병서의 위세에 전혀 이상이 없기 때문. 조직지도부 세력 없이는 본인의 권력 역시 위태로워질 수 있는 김정은의 처지를 엿볼 수 있다는 뜻이다.

분명한 것은 이번 대표단 방문이 평양의 철저한 계산에 따라 기획된 작품이라는 점이고, 여기에는 대남·대외관계에 대한 고려뿐 아니라 내부 권력정치의 지형도 역시 면밀히 반영돼 있다. 한 사람의 2인자보다 세력 간 경쟁이 훨씬 유리한 김정은 본인의 이해관계가 앞으로도 평양 내부의 권력정치를 읽는 키워드여야 하는 이유다. 어쩌면 김정은 자신도 이 상호견제 구도의 한 축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이다.



주간동아 2014.10.13 958호 (p50~51)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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