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8

2014.10.13

재화와 서비스 공짜, ‘유토피아’가 달려온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 ‘한계비용…’ 신간서 멋진 신세계 예언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4-10-1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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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화와 서비스 공짜, ‘유토피아’가 달려온다

    시민들이 인터넷 네트워크로 긴밀히 연결된 공유경제 사회. 제러미 리프킨은 저서 ‘한계비용 제로 사회’에서 자본주의의 고도화로 한계비용이 ‘제로’에 수렴하면 공유경제가 자본주의를 대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화와 서비스가 거의 공짜가 되고, 이윤이 없어지며, 소유가 무의미해지고, 시장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세상.

    제러미 리프킨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최고경영자과정 교수가 최근 펴낸 책 ‘한계비용 제로 사회’(민음사)에서 그리는 미래 사회 모습이다. 이 새로운 세상에서 자본주의는 폐기되고, 인류는 ‘협력적 공유사회(Collaborative Commons)’라는 새로운 경제 시스템에 따라 살아간다. “공동의 이익에서 동기를 부여받고, 서로 연결해 공유하고자 하는 깊은 열망에 의해” 움직이는, 말 그대로 ‘멋진 신세계’다.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리는가. 그런데 리프킨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런 시대가 목전에 닥쳤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우리는 자본주의 시장과 협력적 공유사회가 뒤섞인 하이브리드 경제의 출현을 목도하고 있다”며 “협력적 공유사회의 부상 추세가 점차 뚜렷해지는 만큼, 2050년 무렵이면 세계 대부분의 경제생활에서 (이 경제 체제가) 주된 결정권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자본주의는 성공에 의해 실패”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 등 여러 권의 저서를 통해 현대 사회에 대한 통찰과 설득력 있는 미래 전망을 제시해온 학자다. 그의 신간 ‘한계비용 제로 사회’는 9월 말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리며 많은 이의 눈길을 끌고 있다. 국내에도 많은 고정팬을 갖고 있는 리프킨은 10월 11일 내한해 독자와의 만남 등을 갖는다.



    물론 리프킨의 주장에 동의하지 못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25년 전을 돌아보라”는 것이다. 그는 “내가 만약 그때 사반세기 후 인류의 3분의 1이 거대한 글로벌 네트워크 속에서 오디오와 비디오, 텍스트를 교환하며 서로 소통하고 휴대전화로 세상의 모든 통합된 지식을 이용하며, 누구든 수억 명에게 동시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알리거나 제품을 소개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하는 데 비용이 거의 들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면, 당신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꿈꾸는 ‘새로운 세상’이 지금 불가능해 보인다고 해서, 2050년에도 그러하리라고 예상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반박이다.

    리프킨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머지않아 몰락할 수박에 없다. “자본주의는 성공에 의해 실패하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그의 설명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추진력은 생산성을 높이는 데 있다. 생산비용을 줄이고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을 낮춰 소비자를 유혹하려면 더욱 생산성 높은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 이 경쟁은 가속도를 붙여가며 생산성이 최고조에 달할 때까지 계속된다.”

    자, 이제 생산성 향상이 지속돼 궁극에 이르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재화나 서비스를 한 단위 더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추가비용(한계비용·marginal cost)이 ‘제로’에 가까워지는 시점이다. 이때가 되면 재화와 서비스 가격은 무료에 가까워지고, 이윤은 고갈되며, 소유물을 교환하는 시장은 문을 닫는다. 이것이 바로 리프킨이 말하는 ‘한계비용 제로 사회’다. 이때 “자본주의 시스템은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리프킨은 전자책을 예로 든다. 최근에는 자신이 쓴 원고를 직접 파일로 만들어 인터넷을 통해 판매하거나, 심지어 무료로 제공하는 작가가 늘고 있다. 이러한 전자책은 과거 저자와 독자 사이에 놓여 있던 출판사, 편집자, 인쇄업자, 도매업자, 유통업자, 소매업자 등의 단계를 모두 제거함으로써 출판 비용을 사실상 ‘제로’ 수준에 이르게 했다.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듯 한계비용 제로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 기반은 인터넷이다. 리프킨은 특히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모든 사물과 사람을 연결하는 이른바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IoT)’이 세상을 바꾸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2025년쯤이면 사물인터넷이 거의 모든 영역에서 효율성 향상 및 생산성 증진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얘기다.

    한계비용 제로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로 리프킨이 제시하는 것은 ‘공유’다. 리프킨은 2000년 펴낸 저서 ‘소유의 종말’(원제 The Age of Access)에서 “앞으로 경제생활에 대한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물건에 대한 소유가 아니라 서비스와 경험에 대한 접속이 될 것이다. 소유권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접속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의 이러한 통찰은 오늘날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다.

    ‘위 제너레이션’(원제 What’s mine is yours)의 저자 레이철 보츠먼과 루 로저스도 “20세기 과잉소비 시대에 신용과 광고, 소유물이 우리를 규정했다면, 21세기 협동소비 시대에는 평판과 커뮤니티, 그리고 어디에 접속할 수 있고 어떻게 공유하고 무엇을 기부하느냐가 우리를 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P2P(peer to peer· 인터넷에서 개인과 개인이 직접 연결돼 파일을 공유하는 것) 사이트가 일상화됐고, 주택을 공유하는 에어비앤비(Airbnb)와 자동차를 공유하는 릴레이라이즈(RelayRides)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급성장하고 있다.

    사물인터넷으로 경계 없는 상상

    재화와 서비스 공짜, ‘유토피아’가 달려온다

    제러미 리프킨이 ‘협력적 공유사회’의 기술적 기반으로 제시한 사물인터넷(IoT) 시장 성장률 전망.

    인상적인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유는 혼란과 파국을 의미했다는 점이다. 생태학자 개릿 하딘은 1968년 발표한 논문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에서 “모두에게 개방된 목초지가 있다면 목동들이 자신의 사유지는 보전하고 이 목초지에만 소를 방목해 곧 황폐해지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견은 오랫동안 정설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리프킨은 “공유사회는 자본주의 시장이나 대의정치보다 더 오래된 제도”라고 반박한다.

    그는 2010년 펴낸 책 ‘공감의 시대’에서도 “적자생존의 시대는 끝나고 협력의 시대가 온다”며 인간의 본성에 대한 신뢰를 밝힌 바 있다. 그는 이 책에서 현대 신경과학자들이 뇌에서 발견한 ‘거울 신경세포(mirror neuron)’를 소개했다. 이 부위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거나 듣기만 해도 직접 행동할 때와 같이 반응한다. 이러한 공감능력이야말로 인류를 발전시킨 원동력이라는 게 리프킨의 생각이다.

    이 때문에 그의 미래 전망은 꽤 낙관적이다. 사물인터넷과 공유경제의 확산이 동반할 수 있는 사생활 침해 문제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리프킨은 “오늘날 진화하는 사물인터넷은 사생활의 울타리를 허물고 있다. 삶의 매순간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많은 소셜미디어 사이트에 게시하고 공유하길 갈망하며 세계와 연결된 환경에서 성장하는 젊은 세대에게 사생활은 이미 상당 부분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 젊은 세대의 다른 이름은 투명성이고, 작업 방식은 협력이며, 자기표현 방식은 확대된 수평적 네트워크에서 행하는 P2P 생산”이라고 했다. 이들이 투명성과 개인의 사생활 권리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낼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그는 이런 기반 위에서 모두가 경제적으로 걱정 없이 더불어 사는 미래 사회의 모습을 그려보였다. 1970년대 방글라데시에서 가난한 사람에게 담보 없이 사업자금을 대출해주는 ‘마이크로크레딧’을 만들어 노벨평화상을 받은 사회운동가 무함마드 유누스는 ‘제약 없는 상상을 마음껏 하는 것’이야말로 사회문제 해결의 시작이라고 했다. 극도로 고도화한 자본주의 체제와 만성적인 경제 위기 속에서 리프킨이 내놓은 ‘대담한 상상’이 과연 인류에게 새로운 미래를 가져다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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