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8

2014.10.13

“딱딱한 법정 말랑하게, 법도 행복의 수단이죠”

화제의 만화 ‘동네변호사 조들호’ 작가 해츨링

  • 박훈상 동아일보 기자 tigermask@donga.com

    입력2014-10-13 10: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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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딱한 법정 말랑하게, 법도 행복의 수단이죠”
    9월 법무부는 웹툰 단행본 한 권을 자신들의 추천도서로 지정했다. 법무부가 만화를, 그것도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연재된 웹툰을 추천도서로 지정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 책 제목은 ‘동네변호사 조들호’로 지난해 3월부터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 웹툰에 연재 중인 최초 법정만화다. 지난달 단행본으로 출간되자마자 법무부 추천도서로 선정됐다.

    만화 속 주인공 조들호 변호사는 검사 시절 거대 로펌 대표의 사위가 돼 출세가도를 달리다 조직의 비리를 고발하고 동네 변호사로 변신한다. “변호사는 모든 사람이 등을 돌릴 때 얼굴을 바라봐주는 사람”이라며 약자 편에 선다. 주인공 이름 들호는 ‘들판의 호랑이’란 뜻.

    이야기는 험상궂은 조들호가 조직폭력배에게 주택임대차보호법 조항을 일일이 열거하며 할머니의 전세 보증금을 받아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만화는 재미와 함께 청소년 보호법, 모자보건법, 공익신고자 보호법, 부정경쟁방지법, 초·중등교육법, 주택법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웹툰뿐 아니라 우리 만화계에서 법정만화는 참 보기 드물다. 흥행하기도 힘들다.

    실제 이 만화의 저자 해츨링(본명 김양수·32·사진)은 법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는 왜 이 어렵고 힘든 법정만화를 선택했을까. 그를 만나 ‘문제적 변호사’ 조들호의 탄생 과정에 대해 들어봤다.

    새로운 만화 그리고 싶어 도전



    ▼ 법전도 한 번 펴보지 않은 사람이 왜 법정만화를 택했나.

    “2012년 봄 정식 만화가 데뷔를 꿈꾸며 어떤 만화를 그릴지 오래 고민했다. 그러던 중 실제 동네 변호사인 이미연 변호사에 대한 기사를 읽게 됐다. 그때 ‘이거다’ 싶었다. 남이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가고 싶었다. 새로운 만화를 그리고 싶은 욕망이 제일 컸다. 그래서 한국 첫 법정만화에 도전하게 됐다.”

    ▼ 처음에는 막막했겠다.

    “당시 경북 경주에 살았다. 2012년 10월부터 대구지방법원(대구지법) 경주지원으로 매일 아침 출근했다. 처음 며칠은 낯설어서 가만히 앉아 듣기만 했다. 조금 익숙해지고 나서 재판 과정을 듣고 관찰한 내용을 기록했다. 수첩에 판사 손가락에 낀 골무와 팔에 찬 토시, 법조인 특유의 말투와 몸짓, 재판정 내부에 있는 사람과 물건 위치 등을 상세히 기록했다. 매일같이 얼굴을 비추니까 한 판사가 궁금했는지 나를 불러 세우더니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법정만화를 준비하고 있다니까 콧방귀를 뀌었는데, 포기하지 않았다.”

    ▼ 보통 사람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본 법정 풍경에 익숙하다. 뭔가 다른 모습이 보였나.

    “실제 법정 풍경은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극적 장면과 달랐다. 판사는 민원을 처리하는 공무원 같고, 변호사는 민원 처리를 기다리는 민원인처럼 보였다. 형사재판을 참관하려고 대구지법에 가고, 국민참여재판을 보려고 서울까지 가기도 했다. 민사재판과 형사재판 분위기도 너무 달랐다. 민사재판은 원고와 피고가 합의할 지점까지 오면 서로 웃으면서 원만하게 진행되지만 형사재판은 처음부터 끝까지 분위기가 무거웠다. 그런 리얼리티를 만화 속에서 잘 살리면 경쟁력이 있겠다 싶었다.”

    ▼ 책에 법무법인 동서양재 박진희 변호사가 도왔다고 썼던데.

    “두 달 가까이 법원으로 매일 출근했지만 법의 세세한 내용까지는 자신 없었다. 주변에 아는 변호사도 없어서 무작정 법률가들이 모일 만한 인터넷 카페에 ‘법률 자문, 살려주세요’라고 글을 올렸다. 그랬더니 박 변호사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박 변호사에게 틀린 게 없는지 끊임없이 질문하는데도 무료로 법률 검토를 해주고 있다.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딱딱한 법정 말랑하게, 법도 행복의 수단이죠”

    단행본으로도 발간된 ‘동네변호사 조들호’.

    ▼ 만화의 영감을 준 이미연 변호사는 만난 적 있나. 실제 법조인의 반응이 궁금하다.

    “이 변호사와는 아직 기회가 닿지 않아 인사하지 못했다. 그분이 운영하는 ‘동네변호사카페’에 책만 전달했다. 법조계에 직접 몸담지 않아 자세한 반응은 모른다. 그래도 네이버 웹툰에 변호사라고 밝히는 분들이 ‘속 시원하다’ ‘재밌게 보고 있다’고 댓글을 달아준다.”

    ▼ 검찰 조직의 비리를 폭로하고, 대형 로펌과의 대결에도 주눅 들지 않는 조들호의 캐릭터가 매력적이다. 이런 변호사가 정말 있으면 좋겠다는 댓글도 많다.

    “30대 중후반 아저씨를 표현하고 싶었다. 자신이 속한 바닥의 생리도 잘 알고, 유명하지 않지만 그래도 초짜라는 말을 듣지 않는, 그런 캐릭터를 그리고 싶었다.”

    네이버 웹툰 측에 따르면 실제 ‘동네변호사 조들호’의 주된 독자층은 조들호와 비슷한 동년배인 30대 남성이 대다수다.

    ▼ 법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내가 생각하는 법이란 사람을 행복하게 해줘야 하는 수단이다. 사람의 가치가 먼저고 법은 그 수단 같은 것이다. 가끔 법이라는 수단에 매여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법은 사람이라는 숭고한 가치가 빛나게 도와줄 때 가치가 있다.”

    해츨링은 조 변호사가 사회적 약자나 서민을 돕는 과정에서 청소년 보호법, 모자보건법, 공익신고자 보호법 등 딱딱한 법을 알기 쉽게 만화에 녹였다. 그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이 처한 상황은 우리가 살면서 한 번쯤 겪을 법한 일이다. 만화책을 읽으면 법을 몰라서 억울하게 당하는 피해를 줄일 수도 있다. 정보와 재미,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정보와 재미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작가는 늘 힘이 들 수밖에 없다.

    정보도 좋지만 만화는 재미

    ▼ 취재를 바탕으로 만화를 그리는 기획만화 작가는 늘 정보와 재미 사이에서 고민한다. 둘 중 하나만 택하라면 무엇을 택하겠는가.

    “당연히 재미가 먼저다. 작가주의 색채가 강한 분은 통속적인 표현을 쓰는 것을 불편해한다. 그래서 정작 자기 생각을 들려주고 싶었던 대중에게 외면받는다. 재미를 주는 통속적 표현을 불편하게 생각해선 안 된다. 재미있는 작품을 그려야 작가도 즐겁다. 모든 매체는 대중이 봐주고 즐길 때 빛을 발한다.”

    ▼ 그런데 왜 본명 김양수를 포기하고 해츨링을 택했나.

    “네이버 웹툰 작가 가운데 ‘생활의 참견’을 연재하는 김양수 작가와 이름이 같아 고민을 많이 했다. 고민 끝에 아마추어 때부터 인터넷 닉네임으로 쓰던 해츨링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해츨링은 판타지 세계에서 새끼 드래건, 아직 다 성장하지 못한 용이다. 독자가 한 번도 보지 못한 만화를 그리는 것이 작가로서 목표다. 앞으로 그런 만화를 계속 그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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