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8

2014.10.13

“인간이 반려동물 버리면 동물과 다른 점 없잖아요”

‘임보엄마’ 김혜란 씨 “유기동물에 새 삶 찾아주며 진정한 행복 느껴”

  • 조영실 객원기자 esperanza0738@gmail.com

    입력2014-10-13 1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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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반려동물 버리면 동물과 다른 점 없잖아요”
    “엄마, 입양 보내려고 임보하는 거잖아. 왜 또 안 보내려고 해.”

    ‘임보’란 유기동물 임시보호의 준말이다. 열아홉 살 아들이 안쓰럽게 바라보는 대상은 김혜란(사진) 씨와 유기견 ‘짱이’다. 김씨는 갈 곳 없는 유기견이 새로운 입양처를 찾을 때까지 가정에서 돌봐주는 일을 하고 있다. 일명 ‘임보엄마’라 불린다. 3년 동안 유기견 수십 마리를 돌보며 가족을 찾아주는 일을 하고 있지만 정든 동물을 떠나보내는 일은 언제나 힘겹다. 하지만 이번에도 짱이를 보내기로 했다. 짱이가 떠나야 그 자리에 또 다른 집 잃은 동물이 들어와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유기동물 임시보호는 두 생명을 구하는 일이다. 입양 대신 ‘임보’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짱이의 빈자리가 채워지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추석, 경기 남양주시 고즈넉한 산자락에 자리한 김씨의 국숫집 앞에 푸들 한 마리가 버려졌다. 김씨는 이 푸들을 ‘추석선물’이라 부른다. 추석선물처럼 온 푸들을 보니 뒷다리가 불편한 듯했다. 다리를 치료할 병원비가 부담돼 키우던 개를 주인이 버린 것 같았다.

    매일 반려동물 300마리 버려지는 사회

    짱이는 애견 번식장에서 새끼를 빼내는 모견(母犬)으로 살다 임신한 채 버려졌다. 김씨가 임시보호하는 또 다른 개 ‘슈가’는 입양을 갔다 적응하지 못해 파양돼 돌아왔고 ‘가을이’의 경우 사람으로 치면 할머니인 열세 살 때 동물병원에 버려진 것을 데려와 지금은 열여섯 살이 됐다.



    2010년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조사에 따르면 유기동물은 하루 평균 274마리에 이른다. 특히 여름휴가철이 지나면 전국 각 시보호소로 들어오는 유기견의 수가 급증한다. 올해 부산지역 유기동물 수는 1월 329마리였던 것이 7월에는 3배 가까운 879마리까지 늘었다. 후각이 발달한 개가 집을 찾아오지 못하도록 휴가지에 반려견을 유기하는 사례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 많은 동물은 어디에서, 왜 버려진 걸까.

    “인간이 반려동물 버리면 동물과 다른 점 없잖아요”

    동물 번식장 모습과 동물들의 출산 기록지(오른쪽). 사진제공: 동물자유연대

    반려동물을 길러본 경험이 있는 가구 중 반려동물이 죽을 때까지 함께 했다는 비율은 10%에 그친다(2010년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조사). 나머지는 배변을 가리지 못해서, 너무 짖어서, 털이 빠져서, 생각보다 너무 커져서 등의 이유로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아 길 위를 떠돈다.

    애초 가족이 없는 유기동물도 있다. 짱이처럼 공장 부품처럼 번식장에 살면서 애견숍에 전시될 새끼들을 ‘생산’하다 생산성이 떨어지면 방치돼 죽거나 무더기로 박스에 담겨 아무 데나 버려지기도 한다. 김씨가 활동하는 인천의 사설 유기동물보호소 ‘유사랑’(인터넷 다음 카페 ‘유기동물 사랑나누기’)에 있는 암컷 중에는 이런 모견이 많다.

    김씨가 처음 유기견과 인연을 맺은 것은 부산에서 살던 7년 전 유기동물보호소에서 치와와 한 마리를 입양하면서부터다. 그 후 동물사랑실천협회에서 ‘하비’라는 개를 입양해 KBS 1TV ‘아침마당’에 출연하기도 했다. 긴 시간이라 할 수 있는 세월이 흘렀고, 연예인을 내세워 ‘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유기동물 입양 캠페인도 있었다. 그러나 김씨가 여전히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인간이 반려동물 버리면 동물과 다른 점 없잖아요”
    “사람도 살기 어려운 세상에서 왜 동물을 돕느냐.”

    하지만 유기동물의 60% 이상이 인간과 가장 친한 반려동물인 개라는 점을 고려하면 유기동물 발생 원인이 인간에게 있고 그들을 돌볼 책임도, 돌볼 수 있는 능력도 인간에게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씨는 동물보호라는 책임을 넘어 동물의 새 삶을 찾아주는 일을 하면서 변한 건 정작 자신의 삶이라고 말한다.

    “예전에 나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도움도 주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온몸이 옴으로 뒤덮인 믹스견에게도 가족이 돼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나고, 또 파양돼 돌아온 동물을 보고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 유사랑 회원들이 옆에서 도와주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언제나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동물들, 지칠 때 힘이 돼주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하며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됐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삶에 애착도 생겼다. 동물만 돕는 것 같은 죄책감이 들어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됐다.”

    안락사 막을 유일한 방법은 입양

    마하트마 간디는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동물이 받는 대우로 가늠할 수 있다”며 동물을 돌봐야 할 사회의 책임을 강조했다. 가수 이효리는 “동물이 행복하지 않은 세상에서 인간도 행복할 수 없다”고 했다. 김씨 역시 유기동물을 구조하고 보살피면서 느낀 것이 “사회 최약자인 동물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사회는 결국 인간에게 그 대가를 돌려줄 사회”라고 말한다.

    김씨는 아직 입양가족을 만나지 못해 임시보호 중인 개 네 마리, 사료회사에서 맡기고 찾아가지 않은 개 두 마리, 길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직접 입양한 동물은 ‘똘이’라는 개 한 마리뿐이다.

    현행법은 유기동물 발견 시 지방자치단체(지자체) 동물보호센터로의 인계를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주인을 찾는 열흘 동안의 공고 기한이 지나면 유기동물은 시 소유가 돼 안락사가 가능하다. 하지만 정부의 361개 유기동물보호소(2013년 기준)의 일시 수용 가능 동물 수는 5만 마리밖에 되지 않는다. 농림축산검역본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버려진 동물은 9만7000여 마리에 이른다. 이를 모두 수용하려면 먼저 들어온 동물이 자리를, 아니 목숨을 내줘야 하는 것이다.

    ‘서울시 동물복지계획 2020’

    “인간이 반려동물 버리면 동물과 다른 점 없잖아요”

    패션문화 잡지‘오보이(OhBoy!)’의 스타 유기견 돕기 캠페인.

    정부가 운영하는 동물보호센터의 유기동물 처리 방법은 폐사 등 자연사(22%)를 제외하면 분양이 약 28%, 안락사가 24%를 차지한다. 단 25곳뿐인 지자체 직영 동물보호소 외 나머지 336개 시 위탁 동물보호소의 인력 및 지원금 부족, 부지 소유자 신원 불분명 등 열악한 환경과 정부의 부실한 감독은 폐사와 안락사를 가속화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입양은 유기동물 안락사를 막는 유일한 방안이다. 김씨는 이렇게 말한다.

    “정부가 직영 동물보호소를 세우고 관리, 감독할 능력이 안 된다면 의지를 가진 사설 유기동물보호소를 경제적으로 지원해 폐사를 막고 입양을 활성화하는 게 현실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 될 수 있다.”

    6월 서울시는 2020년까지 유기동물을 절반으로 줄이고 입양 및 반환율을 95%로까지 끌어 올리는 ‘서울시 동물복지계획 2020’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피치 못할 사정으로 반려동물을 더는 기를 수 없는 경우 25개 구마다 지정한 동물보호센터에서 인수해 새로운 주인을 찾을 수 있게 해주는 ‘사육포기 동물 인수·보호제도’ 도입을 추진한다.

    이와 함께 동물보호 민간단체 회원을 대상으로 ‘유기동물 가정 임시보호제도’를 시범 도입해 구조부터 입양 전까지 가정에서 임시보호가 가능하도록 할 예정이다. 또한 서울시내 약 25만여 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길고양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중성화 표준지침을 정비하고 동물명예감시원 등 시민이 직접 참여해 길고양이에 따른 갈등을 해소해나간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제도가 실효성을 거두는 데 한계도 있다. 동물보호법 등 실질적인 제도 개선은 대부분 농림축산식품부 등 중앙정부 소관인 데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서울시내 가구 수가 16.7%에 불과해 관련 예산 확보가 어렵다. 따라서 많은 과제가 중앙정부에 건의하는 형식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한편 이미 유기된 동물을 사후 처리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도 문제다. 김씨는 “유기동물과 길고양이 문제는 근본 원인을 해소해야 한다. 반려동물 입양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 미비와 동물 불법판매업자가 저지르는 무분별한 번식이 문제의 근원임을 인식하고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기동물 문제는 문제의식을 가진 몇몇 시민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김씨가 할 수 있는 일 역시 유기동물을 구조해 입양 보내고 인터넷 카페를 통해 홍보하는 게 전부다. 하지만 그는 그런 모습을 본 사람들이 유기동물 현상을 인식하는 그 자체가 사회 변화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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