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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검열과 망명, 카톡의 위기 01

“발가벗겨진 기분” 충격의 망명길

카톡 탈퇴, ‘텔레그램’ 열풍, 권력이 문제냐 카톡이 문제냐

  • 정호재 채널A 기자 demian@donga.com

“발가벗겨진 기분” 충격의 망명길

“발가벗겨진 기분” 충격의 망명길
낯선 이름의 모바일 메신저 하나가 한국 시장을 뛰어넘어 세계적 열풍으로 확산되고 있다. 주인공은 ‘텔레그램(Telegram)’이라는 독일산 메신저 서비스다. 카카오톡(카톡)과 기능은 거의 흡사하지만 이미 차고 넘치는 글로벌 메신저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보안성’을 무기로 급속히 세를 불리고 있다. 텔레그램을 많이 쓰는 국가가 한국, 홍콩, 말레이시아, 우즈베키스탄 등 대부분 언론 자유 후진국이라는 해석까지 더해지면서 ‘인터넷 검열’ ‘사이버 망명’ 논란으로까지 확산되는 모양새다.

다음카카오 출범일 벌어진 ‘설화(舌禍)’

텔레그램이 한국에서 날개를 달기 시작한 날은 아이러니하게도 국내 모바일 메신저 시장을 장악한 다음카카오 통합법인이 출범하는 날이었다. 10월 1일 기념식 및 기자간담회에서 검열 논란과 관련해 이석우 다음카카오 공동대표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예상을 뛰어넘는 나비효과를 불러오기 시작했다. 9월 18일 검찰의 ‘사이버 명예훼손 처벌 강화’ 회의에 ㈜카카오 관계자가 참석한 것을 묻는 기자 질문에 이 대표가 “우리가 무슨 힘이 있나. (정부가) 부르면 가야지”라고 답한 것이 발단이 됐다. 국내 정보기술(IT) 전문가들은 이 발언에 대해 “한국 IT 산업 역사에 남을 중대한 발언”이라고 평가할 정도다(이 밖에도 이 대표는 논란이 될 만한 여러 말을 쏟아냈지만 이 발언의 후폭풍이 가장 셌다).

자사의 가장 큰 잔칫날 다음카카오 최고경영자(CEO)가 이렇게 내뱉은 진의는 ‘실정법에 맞춰 경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모바일 메신저 이용자들은 ‘(카톡이) 검열에 적극 협조’라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 발언이 알려진 직후 찻잔 속에 머물던 텔레그램은 그야말로 폭풍이 됐다. 10월 7일 텔레그램 측은 “지난주에만 한국에서 150만 명이 새로 가입했다”고 밝혔고, 다음카카오 측은 “이용자 40만 명이 줄었다”는 통계치를 내놓았다. 3000만 명 이상인 국내 메신저 유저를 감안할 때 대세에 지장을 줄 만한 수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기존 경쟁자였던 네이버 ‘라인’이나 중국 텐센트 ‘위챗’이 감히 넘보지 못한 깜짝 충격을 카톡에 안긴 셈이 됐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모바일융합학과 교수는 “전 국민의 90% 이상이 사용하던 카톡 독점에서 분산화가 이뤄지는 분명한 신호”라며 “텔레그램에 대한 언론과 대중의 관심, 한국어 버전 출시로 텔레그램 이용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발가벗겨진 기분” 충격의 망명길

다음카카오가 출범한 10월 1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길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카카오톡 압수수색 규탄’ 기자회견에서 노동당 정진우 부대표가 검찰이 본인의 카카오톡 대화와 정보를 압수수색한 경과를 재구성해 발표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다음카카오는 10월 8일 공지를 통해 더 강화된 정보보안 대책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서버에 저장되는 데이터를 기존 7일에서 2~3일로 줄이고 암호화를 확대 적용하는 등 이용자의 불안을 최소화하겠다는 것. 이 같은 새로운 대응을 ‘외양간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였다. 이미 ‘소(신뢰)’를 한 번 잃었지만 두 번 다시 잃지 않겠다는 의지다.

텔레그램은 해외에 서버를 둔 외국 기업이다. 국내 지사나 담당자도 명확지 않다. 애플리케이션(앱) 스토어 다운로드 1위를 기록하고 있다지만 가입자 수나 사용량을 정확히 측정하긴 어렵다. IT를 담당했던 필자의 텔레그램 친구 수를 통해 간접 비교할 수는 있겠다. 현재 필자의 카톡 친구는 1000여 명이다. 세계 정상을 노리는 모바일 메신저 ‘위챗’이나 ‘라인’의 친구는 각각 20명과 85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달 초 가입한 텔레그램 친구 수를 확인해보니 200명을 넘어섰다. 대부분 1~2주 내 가입한 이들임을 감안하면 카톡 위기론이 거론될 만한 폭발적 성장세다.

카톡 위기론이 탄력을 받는 이유는 모바일 메신저 시장이 이른바 프라이버시 자산을 기반으로 급성장한 ‘민감한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국내 1, 2위 인터넷 기업인 네이버와 다음카카오의 시가총액은 각각 20조 원, 10조 원을 오르내린다. 모바일 메신저 열풍이 일기 전에는 이 수준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스마트폰 열풍과 함께 등장한 메신저 시장이 날로 확대하더니 기업 가치도 대폭 증가한 것이다.

“발가벗겨진 기분” 충격의 망명길

현대 사회에서 모바일 메신저는 수사기관에 특히 유용한 정보 수집 수단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공짜 메시지로 시작했던 모바일 메신저는 이제는 스마트 경제의 ‘키워드’로 자리매김했다. 텍스트와 이미지, 영상 파일을 주고받는 커뮤니케이션 툴에 그치지 않고 게임, 금융, 헬스케어, 사물인터넷(IoT) 분야 등 전 방위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는 것이다. 실제 중국에서도 모바일 메신저로 택시를 부르고 요금을 결제하며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가 일상이 됐을 정도다. 게다가 모바일 기기의 확대로 모바일 메신저는 다양한 정보통신기술(ICT) 기기의 이음새 고리를 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개인용 컴퓨터(PC), 태블릿PC에서 하나의 메신저 아이디(ID)로 연결돼 사용하기 시작했다. 서버에 저장되는 개인정보량이 폭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24시간 통신기기와 연결된 모바일 메신저는 수사기관에게는 특히 유용한 정보 수집 수단이다. 유무선 전화는 통신사의 협조를 얻는다 해도 정확한 송수신지나 내용을 알기는 어렵다. 그런데 모바일 메신저는 회사 서버만 들여다보면 친구와의 대화 내용은 물론 송수신 시간, 장소, 인적 네트워크까지 고스란히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사 기법’의 혁명이자 ‘빅브라더 시대’의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프라이버시 자산으로 급성장

“발가벗겨진 기분” 충격의 망명길

‘사이버 망명’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독일산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 ‘텔레그램’ 가입 화면.

이 때문에 이용자들이 카톡의 미온적 대응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해외에 서버를 둔 서비스로 갈아타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텔레그램으로 갈아탄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금융계나 정치권, 검찰과 경찰을 포함한 국가 공무원으로 알려진 점도 이 같은 우려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논란이 확대되자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자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기업이 아닌 국가 권력 남용 탓”이라고 반박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이버 망명’ 사태를 놓고 2009년 광우병 사태 시절 MBC ‘PD수첩’ 작가의 e메일을 압수수색하면서 불거진 G메일로의 망명 사태와 엇비슷한 구도라는 설명을 내놓기도 한다. 당시 상당수 누리꾼이 정부의 강력한 온라인 단속을 피해 구글, 트위터, 페이스북 등으로 갈아타 국내 인터넷 서비스 시장이 위축되는 홍역을 치렀다.

하지만 1차 사이버 망명 사태와 달리 이번에는 오히려 정부에 대한 비난보다 다음카카오 측의 안일한 대응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특기할 만한 일이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페이스북, 구글 등 글로벌 IT 서비스업체는 여러 국가기관의 정보 제공 요청에 대한 정확한 통계를 이용자들에게 밝히고 적어도 이용자의 프라이버시권을 지키기 위한 법적 저항과 기술적 보완 조치를 선제적으로 해왔다”면서 “하지만 카톡은 그런 노력을 해왔다고 볼 수 없기에 실망이 큰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10여 년 이상 사이버수사를 담당해온 현직 경찰관은 “이번 사건은 2004년 불거진 대학수학능력시험 부정행위 수사 때와 닮은 점이 있다”며 “이후 이동통신사들은 사생활 침해 논란을 피하고자 문자메시지를 서버에 보관하지 않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즉 언젠가는 터질 문제였다는 얘기다.

다음카카오의 안일한 대응

압수수색 영장을 남발하는 공권력과 이를 쉽게 허가하는 법원의 비전문성에 대한 질타도 흘러나온다. 거의 모든 개인정보가 모바일 메신저 회사에 기록되는 이상 불필요한 압수수색 영장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외부 통제 기능과 프라이버시권 보호 기능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바로 그것이다.

텔레그램 열풍의 이면에는 창업자의 독특한 창업 스토리가 신규 이용자의 시선을 잡아끈 측면도 있다. ‘러시아의 저커버그’로 불리는 억만장자 파벨 두로프는 푸틴 정부의 탄압을 피해 독일로 사업 둥지를 옮긴다. 그리고 검열 기관의 압제에서 벗어나고자 기술적 보안에 초점을 맞췄고, 그 결과 전 세계 여러 국가에서 텔레그램에 대한 수요가 폭증한 것이다. 10월 1일 이뤄진 다음카카오 통합법인 출범과 함께 시작된 모바일 메신저 ‘검열 논란’이 단순히 카톡 회사만의 이슈가 아니라 이용자 모두에게 중요한 이슈임을 알 수 있다.

검경 내부, 법조계의 반응

“‘실시간 모니터링’ 발표는 자충수이자 코미디”


“발가벗겨진 기분” 충격의 망명길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 전담 수사팀’을 이끄는 유상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3차장 검사.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 사범 엄단을 위해 인터넷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전담 수사팀을 신설하겠습니다.”

대검찰청은 9월 18일 기자 브리핑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그다음 날인 19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는 실제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 전담 수사팀’이 꾸려졌다. 이 팀을 이끄는 리더는 유상범 3차장 검사로, 공안검사 출신도 아니고 사이버 범죄를 수사하거나 지휘해본 경험도 없는 인물이다. ‘인터넷 실시간 모니터링’이 ‘수사기관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검열·감시’ 논란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던 9월 25일, 이번에는 유 차장 검사가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SNS에서 이뤄지는 사적 대화의 경우 검색하거나 수사할 계획이 없습니다. 사적 공간에 대해선 실시간 검색을 할 수도 없습니다.”

유 차장 검사의 ‘간곡한’ 진화에도, 오히려 ‘사이버 망명’만 늘고 논란의 불씨만 커져가자 검찰 내부에서조차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는 비판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과연 사정기관에서 사이버수사를 직접 담당하거나 수사했던 법조인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검경 내부와 법조계에선 SNS와 실시간 검색의 기술적, 실질적 가능 여부를 떠나 검찰의 발표가 자기 눈을 자기가 찌른 완벽한 ‘자충수’라고 입을 모은다.

“뻘짓(허튼짓) 한 거죠. ‘실시간 모니터링’을 할 능력이 있고, 실제 하겠다고 해도 그걸 왜 공개적으로 밝힙니까. 검열 논란이 일고 진보 쪽에서 난리 칠 게 불 보듯 뻔한데 말입니다. 결과론적으로 추적 불가능한 사이버 망명이 늘고 국내 업체도 실시간 추적이 불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바꾸면서, 이제 영장을 받아 쥐고도 수사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거죠. 코미디가 따로 없습니다.”(사이버수사 검사 출신 변호사)

수도권 지역의 한 특수통 검사는 “이제 인터넷 e메일이나 SNS 대화 내용을 증거로 사용하는 수사는 끝났다고 봐야 한다. 해외 서버를 이용하면 추적이 불가능하다. 국내 서버를 이용한다 해도 저장 기간이 짧아지고 암호화돼 사용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대화 내용을 주요 증거로 사용하는 공안검사들의 경우는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개탄했다.

사이버수사에 정통한 경찰 고위 인사는 “검찰의 ‘실시간 모니터링’ 발표가 기술상으로도, 수사 인력 확보 차원에서도 불가능한 일인데도 사전에 확인 없이 발표한 것은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사이버수사는 경찰이 훨씬 앞서가고 있다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현실이죠. 검찰이 성급하게 잘못된 발표를 한 것을 보면 우리(경찰)의 사이버수사력에 대한 조바심과 콤플렉스가 심한 것 같습니다. 사실 모바일 메신저뿐 아니라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블로그와 카페는 실시간 모니터링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전문가적 견해로 보면 (검찰 발표에) 정말 헛웃음이 나올 뿐이죠.”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주간동아 2014.10.13 958호 (p10~13)

정호재 채널A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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