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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철없던 흔적을 싸~악 지워주오

디지털 장의사 찾는 사람들 급증…절차 까다롭고 복잡 100% 삭제는 난망

  • 맹서현 인턴기자·이화여대 국어국문과 졸업

철없던 흔적을 싸~악 지워주오

철없던 흔적을 싸~악 지워주오

7월 16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산타크루즈캐스팅컴퍼니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고객의 디지털 흔적 삭제 작업을 하고 있다.

연예인 A씨에게는 아픈 과거가 있다. 한때 뇌졸중을 앓았던 병력이다. 6년 전 결혼식을 올렸지만 개인 사정으로 결별하는 시련도 겪었다. 이후 꾸준한 치료로 뇌졸중을 극복한 그는 현재 생활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결혼과 이혼 같은 과거의 일 역시 그의 오늘과 관련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여전히 연관검색어는 뇌졸중, 결혼 등이다. 고민 끝에 A씨는 3개월 전 인터넷 기록 삭제 서비스업체를 방문했고, 이후 현재까지 자신과 관련된 인터넷 기록에 대해 꾸준히 삭제 관리를 받고 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정보 보관 기술을 발달시켜왔지만 이제는 기억의 보존이 아닌, 망각을 위한 서비스를 찾기 시작했다. 바로 디지털 흔적 삭제 서비스다. 과거 흔적을 지운다는 의미에서 ‘디지털 세탁소’, 망자(亡者)의 인터넷 기록을 정리해준다는 뜻에서 ‘디지털 장의사’라고도 부르는 이 서비스가 한국에 등장한 지는 1년 남짓에 불과하다. 외국에서는 세상을 떠난 사람의 인터넷 기록을 정리해주는 서비스가 주를 이루지만, 국내 정서상 이런 종류의 의뢰는 많지 않다고. 굳이 따지자면 디지털 흔적 삭제 서비스의 한국식 명칭은 ‘디지털 장의사’보다 ‘디지털 세탁소’에 더 가깝다.

디지털 흔적을 삭제하는 작업은 과연 어떻게 이뤄질까.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7월 중순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요 업체들을 방문, 취재했다. 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자신과 관련된 인터넷 기록이나 자신의 인터넷 활동 흔적을 조회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자주 사용한 아이디(ID), 전화번호, e메일 주소, 페이스북 계정 같은 정보를 업체 측에 제공하면 일차적으로 업체 측은 그동안 내가 활동한 데이터를 수집해 보내준다. 업체를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클릭 한 번이면 내 인터넷 흔적의 분석 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인터넷 흔적 찾기 서비스 30만 원

1차 분석은 흔히 ‘구글링’이라 부르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상대적으로 강력한 포털사이트에서 앞서 열거한 정보들을 검색하는 것이다. 구글, 네이버, 다음, 페이스북, 트위터 등 사이트별로 어떤 내용을 몇 날 몇 시에 올렸는지 순식간에 알 수 있다. 이렇게 확인된 결과를 받아 개인이 직접 삭제하는 경우도 많다. 업체별로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1차 서비스에 드는 비용은 대략 30만 원이다.



더 정밀한 분석을 요구하면 업체는 검색 범위를 개인 홈페이지나 쇼핑몰 등으로 확장한다. 고객은 최종 분석보고서를 받아본 뒤 그중 지우고 싶은 정보를 택한다. 정보가 확산된 범위와 데이터 양, 삭제의 어려움 정도에 따라 견적이 나온다. 초교 시절 즐겼던 게임 기록부터 경품 응모 흔적까지, 각 사이트에 일일이 삭제를 요청해야 하는 전형적인 수작업이다. 각 사이트에 삭제 요청을 한다고 해서 한순간에 다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당일 삭제되는 경우도 있지만 한 달 넘게 걸리는 경우도 있다. 비용 역시 10만 원부터 억 원 단위까지 천차만별이다. 개인은 10만 원부터 동영상 삭제가 어려운 경우 1500만 원까지 들고, 기업은 1년 단위로 계약하기 때문에 1억~2억 원에 이르기도 한다.

철없던 흔적을 싸~악 지워주오

디지털 흔적 삭제를 의뢰하기 위해 제공해야 하는 개인정보 입력 양식.

자신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작성된 게시물도 지울 수 있을까. 업체에 신분증을 내주고 모든 권한을 위임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그러나 내가 언제 어디에 글을 썼는지 기억할 수 없는 경우 삭제 가능성은 극히 떨어진다는 게 업체 관계자들의 솔직한 토로다. 다른 사람이 작성한 나에 대한 자료도 경우에 따라 삭제할 수 있다. 해당 게시물이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유포로 분류될 수 있는 내용이라면 게시자 동의 없이도 삭제 혹은 게시 중지 조치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 물론 명예훼손 등의 근거가 불충분하다면 어렵고, 청소년의 기록이나 흔적을 삭제할 때는 보호자 동의가 필요하기도 하다.

이렇듯 디지털 흔적 삭제는 생각보다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하며, 기술적으로 100% 완벽한 삭제를 장담하기도 어렵다. 삭제한 내용을 누군가 개인 컴퓨터에 복사해뒀다가 다시 인터넷상에 올리면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간다. 이 때문에 업체들은 지속적으로 올라오는 악성 댓글이나 동영상의 유포를 막으려고 3개월, 6개월, 1년 단위로 관리하고 있다. 주기적으로 고객의 연관검색어를 분석하고 사이트에 삭제 요청을 보내는 식이다.

현재까지 삭제 서비스 이용 고객은 10대 청소년이 다수를 차지한다. 흔적 삭제 서비스 업체 산타크루즈캐스팅컴퍼니의 2014년 5월 가입 현황을 보면 총 326건 가운데 기업이 23건, 청소년이 192건, 성인이 111건이다. 기업체 고객이 경쟁 회사의 비방 댓글들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삭제 서비스를 찾는다면 청소년 고객은 ‘철없던 과거’를 지우려 주로 의뢰한다는 것. 또 다른 업체 ㈜스키퍼의 이충우 대표는 “주로 고3 학생이나 대학 초년생이 많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기 전 꺼림칙한 기록을 지우려는 이가 많은 것 같다”고 말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 분분

산타크루즈캐스팅컴퍼니 김호진 대표는 “한국의 경우 ‘잊혀질 권리’는 청소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한다. 청소년기에 저지른 실수가 남은 인생 70여 년을 따라다닌다면 너무 가혹한 고통이라는 것. 연예인 역시 공식 활동이 아니라면 사생활의 아픈 부분은 잊힐 권리가 있다는 게 김 대표의 견해다. 반면 디지털 흔적 삭제 서비스에는 이러한 긍정적 측면과 함께 부정적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고 이충우 대표는 말한다. 서비스를 악용하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개인 간 중고물품 거래 사이트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사기범이 흔적 삭제를 의뢰해온 적이 있다. 데이터를 수집해보니 이미 본인이 사기 행적 몇 개를 지운 상태였다. 자신이 못 찾은 부분이 걱정돼 의뢰한 모양이었다. 또 확인해본 결과 이미 경찰에 신고된 경우도 있었다. 결국 해당 의뢰인에게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잊혀질 권리’란 개인이 자신에 관한 온라인상의 각종 정보에 대해 삭제를 요구할 권리를 말한다. 이에 대한 논쟁은 최근 유럽사법재판소 판결(‘주간동아’ 942호 참조)을 계기로 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른 바 있다.

그러나 ‘잊혀질 권리’의 주요 쟁점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이재진 교수는 “개인의 인격권 침해를 예방할 권리가 필요하다는 견해와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관련 규정 같은 기존 법률로 충분히 피해 구제를 받을 수 있으므로 안 된다는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예 정보 게시를 막는다는 건 표현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 자기 생각을 표현할 자유와 본인이 원치 않는 정보가 유통되지 않게 할 권리 사이의 충돌인 셈이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원칙이 공인과 일반인을 구분해 적용돼야 한다는 사실. 이재진 교수는 “공인의 경우 극히 사적인 부분을 제외한다면 일반인보다 삭제 요건을 까다롭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박영우 한국인터넷진흥원 개인정보보호팀장은 “대상자가 누구인지, 정보 내용은 무엇인지, 어느 정도 공개돼 있는지 등의 기준을 정하고 그가 입는 피해와 삭제가 불러올 사회적 이익 가치의 훼손을 비교해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4.07.21 947호 (p24~25)

맹서현 인턴기자·이화여대 국어국문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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