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6

2014.07.14

붉은 과일에 나무향…구운 고기와 궁합

스페인 리오하 와인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4-07-14 13: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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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과일에 나무향…구운 고기와 궁합

    현대적 건축미를 뽐내는 마르케스 데 리스칼 와이너리(왼쪽). 마르케스 데 리스칼 와이너리의 와인 숙성실.

    와인 애호가 중에는 레드 와인을 좋아하게 된 계기로 리오하 와인을 말하는 사람이 꽤 있다. 붉은 과일에 그윽한 나무향이 어우러진 리오하 와인에는 와인 초보자도 순식간에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그렇다면 리오하 와인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언제부터 세계인에게 사랑받게 된 것일까.

    리오하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로 가는 순례자들이 중세시대부터 걸어서 지나던 지역이다. 이 길을 지나던 부르고뉴 수도사가 이곳에 프랑스 와인 기술을 도입해 고급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지만, 가난한 순례자들에게 오크통에서 숙성한 와인은 너무 비쌌을 것이므로 그다지 신빙성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리오하 와인이 고급화 길로 들어선 시기는 1800년대 중반으로, 이 변화에는 무리에타 후작과 리스칼 후작의 공로가 컸다. 두 사람 모두 카를로스 전쟁과 연관이 있는데, 이 전쟁은 1834년 페르난도 7세가 세 살 된 딸 이사벨라 2세를 남기고 서거하자 어린 여조카의 왕위 계승을 반대하며 숙부인 카를로스 5세가 일으킨 내전이었다. 두 후작은 모두 이사벨라를 지지하던 자유주의자로 무리에타 후작은 영국에서 자라며 고급 와인을 경험해본 사람이었고, 리스칼 후작은 전쟁 기간 프랑스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1839년 이사벨라 지지자들이 카를로스를 지지하던 보수주의자들에 승리하자 이들은 고향 리오하로 돌아왔고, 낙후한 와인 생산의 실상을 알게 됐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우수한 품질의 포도가 생산됐지만 제조와 보관 기술이 낙후해 와인 품질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은 보르도의 선진 기술을 들여와 리오하의 토착 품종인 템프라니요(Tempranillo)를 주종으로 오크 숙성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마침 병충해로 와인 생산에 큰 타격을 입었던 프랑스로 수출길이 열리면서 리오하 와인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오크 숙성은 리오하 와인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붉은 과일에 나무향…구운 고기와 궁합

    마르케스 데 리스칼의 레제르바 와인.

    리오하 와인은 농익은 딸기향과 자두향에 오크통에서 더해진 바닐라향을 자랑하는 묵직하면서도 우아한 와인이다. 오크통은 완전 밀폐가 아니므로 숙성되는 동안 와인이 소량 증발하면서 향이 농축되고, 투과된 산소가 타닌을 부드럽게 만들어 질감이 좋아진다. 원래 프랑스산 오크를 썼지만 이후 수급이 더 쉽고 비교적 저렴한 미국산 오크를 주로 사용했으며, 미국산 오크의 특징인 달콤한 바닐라향이 리오하 와인의 특징이 됐다. 지금은 고급 와이너리일수록 은은한 스파이스와 아몬드향을 더해주는 프랑스산 오크를 쓰거나 프랑스산과 미국산을 같이 쓰기도 한다.



    리오하 와인의 등급은 숙성 기간에 따른다. 오크통과 병에서 최소 2년 묵은 와인은 크리안자(Crianza), 최소 3년 묵은 와인은 레제르바(Reserva), 최소 5년 묵은 와인은 그란 레제르바(Gran Reserva)로 구분한다. 레이블에 리오하만 써 있으면 오크 숙성 없이 출시된 어린 와인이다. 숙성이 짧을수록 과일향과 타닌이 많이 느껴지므로 스테이크 같은 구운 고기와 즐기기 좋다.

    긴 숙성을 거친 와인은 부드러우면서도 담배, 가죽, 버섯 등 미묘하고 복잡한 향을 보이므로 훈제오리나 버섯요리처럼 질감이 부드럽고 향이 은은한 음식과 잘 어울린다.

    레드 와인이 아직 어렵게 느껴진다면 리오하 레제르바를 추천한다. 레드 와인이 한층 더 가깝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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