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5

2014.07.07

어둠 물리치고 밤 밝히는 마법의 빛이여!

조명 램프

  •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trendhitchhiking@gmail.com

    입력2014-07-07 13: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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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헬름 바겐펠트(Wilhelm Wagenfeld)의 WG24,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의 아카리(Akari), 아르테미데(Artemide)의 톨로메오(Tolomeo)의 공통점이 뭘까. 이름만 들어선 도무지 감이 안 잡히는 이도 있겠지만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이름이라 느껴지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모두 백열전구가 들어간 조명램프다. 세계 조명의 역사를 쓰면 빠지지 않고 들어갈 정도로 특별한 램프들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내 책상과 그 옆 테이블에 놓인 것들이기도 하다. WG24는 독일에서, 톨로메오는 이탈리아에서, 아카리는 일본에서 각각 사왔다. 톨로메오는 무게가 좀 있어서, WG24는 유리가 깨질까 봐 신경을 많이 쓴 물건이고, 아카리는 그녀와 함께 간 첫 여행지에서 산 것이라 더욱 기억에 남는다.

    현대 산업디자인의 역사로 꼽히는 독일 바우하우스의 대표 디자이너 중 한 명인 바겐펠트의 WG24는 1924년 디자인됐으니 90년이나 됐다. 반구형 유리 갓을 씌우고 유리로 받침대와 기둥을 만든, 아주 심플하면서도 매력적인 램프다.

    노구치의 아카리는 1951년 디자인한 조명인데, 일본 어부들이 사용하던 종이 초롱을 변형한, 종이가 주름처럼 접힌 램프다. 이 또한 역사가 60년이 넘은 셈이다. 놀라운 건 이들 모두 지금 봐도 매우 세련된 디자인이라는 점이다. 배경을 모르면 그렇게 오래전 디자인된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다. 톨로메오는 그나마 역사가 짧다. 1989년 처음 만들어졌으니 앞서 소개한 것들에 비하면 신참이다. 우리 일상 공간에 이런 조명이 하나씩 들어와 있다면 어떨까. 오늘 일상의 작은 사치는 바로 조명이다.

    ‘조명빨’ 그리고 공간 연출



    어둠 물리치고 밤 밝히는 마법의 빛이여!

    이사무 노구치의 아카리, 빌헬름 바겐펠트의 WG24, 잉고 마우러의 날개 달린 전구로 된 루첼리노(왼쪽부터).

    조명이 아주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안다. 사진을 찍을 때도 이른바 ‘조명빨’을 챙기지 않나. 남녀가 요즘 말로 ‘썸’(서로에게 관심 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신조어)을 탈 때 분위기 좋은 카페나 레스토랑을 찾는 것도 자신을 좀 더 멋지게 보이게 하는 ‘조명빨’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멋진 카페나 비싼 레스토랑에는 대부분 간접 조명이 있다. 형광등에 익숙한 눈으로 보면 다소 어둡게 느껴질 수 있다. 이건 호텔도 마찬가지다. 직접 조명인 형광등을 달아 밝은 공간을 연출하지 않는다. 솔직히 형광등은 참 멋없는 녀석이다. 실용성과 효율성 면에선 탁월할지 몰라도 너무 밝다. 형광등을 우리나라처럼 집집마다 달아놓고 이렇게 전 방위적으로 쓰는 나라도 참 드물 거다.

    유럽 사람의 집에 가보면 간접 조명이 대세다. 전체적으로 우리보다 어둡다. 전기료를 아끼려고 그러는 걸까.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간접 조명과 다양한 램프를 이용하면 오히려 돈이 더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좋은 조명은 집 안을 시각적으로 변하게 한다. 온기를 주고, 때로는 집중도 시킨다. 집 안 곳곳을 다 환하게 밝히는 게 아니라 필요한 곳에 스탠드를 두면 어떤 걸 켜고 끄느냐에 따라 그날그날 집 안 분위기가 달라진다.

    요즘엔 스마트전구라는 것도 있다. 자연이 구현하는 모든 색을 다 낼 수 있는 LED(발광다이오드) 전구로, 스마트폰으로 켜고 끄는 것은 물론 색감도 수시로 바꿀 수 있다. 필립스에서 나온 휴(Hue)라는 전구가 대표적인데, 한 번 경험하면 다들 탐을 낸다. 물론 아직은 좀 비싸서 선뜻 탐하긴 어렵지만. 머지않아 가격이 낮아지면 전구 하나로 매일매일, 시간마다 분위기를 바꿀 수 있게 될 거다. 알람처럼 특정 시간이 되면 알아서 켜지도록 해 아침햇살의 느낌을 구현할 수도 있다. 참 신기한 세상이고, 우리 일상을 풍요롭게 할 도구가 점점 많아지는 세상이다.

    어둠 물리치고 밤 밝히는 마법의 빛이여!

    노만 코펜하겐의 NORM 69.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몬스터 주식회사’ 등을 제작한 픽사(Pixar)는 모든 작품의 오프닝 영상에 ‘룩소 주니어(Luxo Jr.)’라는 스탠드 조명을 넣는다. 이 조명이 마치 사람처럼 뛰어다닌다. 픽사 스튜디오에서 만든 최초 애니메이션이 바로 ‘룩소 주니어’인데, 실제로 이 이름을 단 조명기기도 있다. 룩소는 앵글포이즈(Anglepoise) 램프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다. 룩소의 오리지널은 1933년 처음 나온 앵글포이즈 램프이기 때문이다. 테이블 램프로 각도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고, 금속과 용수철이 견고함을 더해주는 램프다. ‘짝퉁’이 가장 많은 테이블 램프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이가 학창 시절 이 제품의 모사품을 사용해봤을 것이다.

    서울 을지로 조명상가를 지나다 보면 외국 유명 전시회에서 본 비싼 조명과 꼭 닮은 ‘짝퉁’ 조명이 당당하게 서 있어 놀랄 때가 있다. 물론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그냥 예쁘고 멋지게 생긴 조명이라고만 여기는 경우가 많고, 오리지널 디자인이 어떤 것이었는지, 누가 진짜 디자이너인지 모를 것이다.

    인류에게 주어진 두 번째 불

    세계에서 가장 비싼 조명은 태양이다. 요즘엔 낮에 태양광을 모아 밤 몇 시간 동안 조명을 쓸 수 있게 하거나, 낮 동안 축구공처럼 신나게 차고 놀면 거기서 생긴 진동으로 에너지를 만들어 밤 시간에 램프로 쓸 수 있는 상품이 팔리고 있다. 아프리카 등 여전히 전기 혜택을 보지 못하는 곳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제품들이다.

    사실 조명은 인류에게 주어진 두 번째 불이다. 프로메테우스의 불이 첫 번째라면, 에디슨의 전구가 두 번째다. 올해로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한 지 135년 됐다. 백열전구는 1879년 에디슨이 발명한 이래 당시 모습 그대로 이어지는 유일한 공산품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엔 1887년 처음 들어왔다. 그동안 백열전구는 우리의 밤을 밝혔고 한때 산업화의 아이콘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비효율적인 제품의 상징이 돼 퇴출을 맞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더는 백열전구를 살 수 없다. 2014년 1월부터 생산과 수입이 전면 중단됐기 때문이다. 유럽이나 호주, 일본 등에서도 2012년부터 백열전구 생산과 판매를 규제하고 있다. 미국은 올해부터 40W 이상 백열전구 생산과 판매를 금지했고, 중국은 2016년부터 15W 이상 백열전구 판매를 금지한다. 높은 에너지 효율을 자랑하는 LED 전구가 백열전구의 빈자리를 속속 채워간다.

    하지만 백열전구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쉽다. 백열전구만 줄 수 있는 낭만과 감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조명이란 어둠만 밝히는 도구가 아니다. 포장마차에서 얼큰하게 취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백열전구, 새벽 수산물시장의 시끌벅적한 삶의 열정을 비춰주는 백열전구에 대한 기억을 가진 이가 많다.

    나는 여전히 백열전구를 좋아한다. 그래서 백열전구 생산과 판매가 중단되기 전 좀 사뒀다. 가끔씩 쓰면 꽤나 오래 쓸 듯하다. 나에겐 톨로메오나 아카리, WG24와 함께, 네덜란드의 드록디자인(Droog design)에서 우유병으로 만든 조명, 사진작가 김용호가 디자인한 모던보이라는 전구를 머리에 이고 있는 로봇 모양 조명도 있다. 언젠가 사겠다는 마음으로 ‘위시 리스트(wish list)’에 넣어둔 조명은 훨씬 더 많다. 잉고 마우러(Ingo Maurer)의 날개 달린 전구로 된 루첼리노(Luchellino), 노만 코펜하겐(Normann Copenhagen)이 69개 조각으로 1969년 만든 NORM 69라는 펜던트 램프 등을 비롯해 오랫동안 탐해온 것이 꽤나 많다.

    조명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집 안 인테리어를 바꾼 듯한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리고 밤을 더욱 밤답게 만드는 것도 조명이다. 사람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도 조명이고, 생각을 샘솟게 하거나 마음을 평온히 만드는 데도 조명이 일조한다. 빛은 우리에게 가장 매력적인 일상 도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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