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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 김원곤 교수의 외국어 도전기

선생님 눈에 확 들어오는 일본어 수강 최고령자

대지진 여파 속 부랴부랴 시험공부…첫 수업에서 실력 발휘로 의심 풀어

  •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선생님 눈에 확 들어오는 일본어 수강 최고령자

선생님 눈에 확 들어오는 일본어 수강 최고령자

JLPT 홈페이지. 지역별 시험 일정이 자세히 나와 있다.

이미 밝힌 대로 2011년 3월 13일 중국어 능력 평가시험인 한어수평고시(HSK) 6급을 마치자마자 합격 여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다음으로 도전할 외국어 시험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1년에 시험 4개를 치르는 것이 중요하지 그 순서에는 큰 의미가 없었지만, 일단 다음 도전 대상으로 프랑스어 능력 평가시험인 ‘DELF’를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구체적으로 시험 일정을 알아보니, 그해 4월 이후에는 응시 기회가 두 차례 남아 있었는데 각각 6월 11~12일, 10월 22~23일이었다. 6월 중순이면 다소 빠듯하긴 했지만 불가능한 일정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들어 일본어 능력 평가시험인 JLPT의 시험 일정을 알아보니 예상외로 1년에 7월과 12월 두 차례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앞서 치른 HSK가 워낙 자주 있는 데다 프랑스어도 1년에 3차례 시험이 있기 때문에 일본어는 당연히 이보다 더 자주 응시 기회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의외 상황을 만난 것이다.

일본어 시험 준비하자, 중국어 감 떨어져

부랴부랴 두 번째 도전 대상을 일본어로 변경했다. 왜냐하면 프랑스어 능력 평가시험을 6월 중순에 먼저 치르면 다음 일본어 시험 일정인 7월까지 준비 기간이 거의 없고, 그렇다고 12월에 시험을 치르면 간격이 너무 벌어지기 때문이었다. 반면 7월 초 일본어 시험을 먼저 치르면 10월 22~23일(이후 11월 12~13일로 변경 공지됨)에 있는 프랑스어 시험까지 3개월 남짓 준비 기간이 주어져 마지막 스페인어 시험까지 고려하면 미리 계획한 전체 1년의 도전 일정에 알맞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도전 목표가 일본어로 정해지자 바로 학원 선택과 도전 등급 결정에 들어갔다. 학원 선택은 쉬운 편이었다. 마침 중국어 시험공부를 위해 다니던 학원이 일본어 학원도 겸했기 때문에 그 학원에서 공부를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등급 결정이 만만치 않았다.



중국어 능력 평가시험에서 최고등급에 응시한 경험을 살려 일본어에서도 최고 등급인 N1에 응시하고 싶은 욕심이 컸지만, 그간 중국어 시험공부에 집중하느라 일본어 공부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어 3개월여 짧은 준비 기간으로는 합격에 자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N1 등급에 도전하기로 결정한 후 곧바로 일본어 자습을 시작하면서 4월에 시작하는 시험 준비반에 등록했다. 중국어와 마찬가지로 주 3회반(월 10회)으로 저녁 7시 50분 시작해 9시 30분 끝나게 돼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느꼈던 놀라운 점 하나는 중국어 능력 평가시험을 치열하게 치른 지 2주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일본어 공부 모드로 바뀐 3월 말쯤에는 벌써 중국어에 대한 감이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새삼 외국어를 공부하고 이를 제대로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무서운(?) 일인지 절실히 깨달았다. 아무튼 4월 초 있을 JLPT N1에 대비한 강좌를 들으려고 해당 강의실에 들어가니 분위기가 이전의 중국어 교실과는 사뭇 달랐다.

먼저 담당 강사의 연령대가 40대로 20, 30대가 대부분인 중국어 강사보다 높았다. 이는 우리나라에 외국어 공부 대상으로 본격적으로 소개된 역사가 그렇게 길지 않은 중국어에 비해, 일제강점기부터 외국어 공부에서 비중이 컸던 일본어의 현황과 관련있는 것으로 생각됐다. 교육 역사가 오래된 만큼 경험이 풍부하고 나이 든 강사가 많은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남자 강사가 상대적으로 많은 것도 일본어가 다른 외국어에 비해 남자도 여자에 뒤지지 않게 배울 수 있는 언어 구조와 발음 체계를 가졌기 때문이 아닐까 추정해봤다.

그런데 일본어 시험공부를 시작한 당시는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여파가 여전히 강할 때였다. 안 그래도 중국어 열풍으로 상대적으로 위축됐던 일본어 공부 열기가 대지진으로 더 큰 타격을 받은 셈이었다. 이와 연관해 당시 한 신문에서는 일본어학원 수강생이 예전보다 20% 정도 줄어들었다는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학원 담당 강사도 과거 전성기에 비해 학생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쉬움을 토로했다.

선생님 눈에 확 들어오는 일본어 수강 최고령자

2011년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오른쪽) 여파로 일본어학원 수강생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모의시험 성적 무난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적잖은 학생이 일본어를 배우는 듯했다. 이는 일본어에 대한 기본적인 수요는 여전히 변함없다는 뜻도 되고 한편으로 JLPT가 1년에 두 번밖에 치러지지 않기 때문에 그 시점에 맞춰 학생이 집중적으로 몰려 수강한다는 점도 작용한 것이라고 생각됐다.

첫 강의에서 자리를 잡고 주위를 둘러보니 늘 그렇듯 수강생 대부분이 20대이고 간혹 직장인으로 보이는 30대가 눈에 띄는 정도였다. 심지어 고등학생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수강생 중 단연 고령(?)인 내가 강사의 주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오랜 강의 경험으로 노련미가 넘쳐흐르는 담당 강사는 아무래도 내가 이상한 모양이었다. 혹시 등급을 잘못 알고 들어왔거나, 아예 일본어 일반 공부반과 시험 준비반을 착각해 잘못 들어온 사람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렇지만 강사의 의심을 풀 기회는 의외로 일찍 찾아왔다. 첫 수업부터 독해 연습을 위해 많은 양의 단문 독해 문제를 나눠준 뒤 즉석에서 이를 풀게 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 시험에서 나의 예상치 못한 실력(?)을 눈치 챈 강사는 그제야 강의실을 잘못 찾아온 학생은 아니라고 인정하는 눈길을 보냈다.

아무튼 이렇게 시작한 시험 준비반 수업은 6월 말까지 석 달 동안 이어졌다. 시험에 임박해 모의시험 등을 토대로 예상점수에 대한 시나리오를 짜보는데 180점 만점에 최저 115점, 최고 130점이 나왔다. 이대로만 가면 합격 점수인 100점은 무난히 넘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렇지만 예상과 달랐던 중국어 평가시험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면 이번 시험 역시 마냥 자신할 수만은 없었다.



주간동아 2014.06.09 941호 (p68~69)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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