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1

2014.06.09

인간 교육 열망…진보 교육감 압승

시도 17곳 중 13곳서 승리…교육정책과 교실 ‘변화 바람’ 예고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4-06-09 1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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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교육 열망…진보 교육감 압승

    6·4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당선인이 6월 5일 서울 종로구 선거캠프에서 지지자들과 선거방송을 보며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13 대 3 대 1.

    6월 4일 치른 전국 시도교육청 교육감 선거 성적표다. 진보성향 후보가 13곳, 보수 성향 후보가 3곳, 그리고 중도를 표방한 후보가 1곳에서 승리함으로써 이번 교육감 선거는 진보진영의 압승으로 판가름 났다. 함께 치른 시도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9곳, 새누리당이 8곳에서 승리해 팽팽한 힘의 균형을 맞춘 것과 대조적이다.

    이번 선거에서 진보성향 후보들은 교육 중심지로 여겨지는 서울(조희연), 경기(이재정), 인천(이청연) 등 수도권을 석권했고, 보수성향 유권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부산(김석준)과 경남(박종훈)에서도 승리를 거뒀다. 충청권에서는 세종(최교진), 충북(김병우), 충남(김지철)에서 진보 교육감이 탄생했고 광주(장휘국), 전남(장만채), 전북(김승환) 등 호남권과 강원(민병희), 제주(이석문) 또한 진보 교육감 몫이 됐다.

    보수성향 교육감 후보는 진보진영 후보가 아예 출마하지 않은 경북(이영우)과 대구(우동기), 울산(김복만) 등 3곳에서 승리하는 데 그쳤다. 진보진영 후보 단일화가 불발돼 진보를 표방한 후보가 두 명 출마한 대전에서는 “교육에 진보와 보수가 있을 수 없다”고 밝혀 중도로 분류된 설동호 후보가 당선했다.

    자사고 존폐 가장 큰 관심사



    6월 30일 임기를 마치는 현직 교육감 가운데는 진보성향으로 분류되는 인사가 4명에 불과하다. 7월부터 이들의 수가 3배 이상 급증하면서 우리 교육 전반에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전망된다. 초중등 교육 정책의 큰 틀은 중앙정부가 짜지만 이를 실질적으로 집행하는 것은 시도교육청으로, 교육감의 철학에 따라 해당 지역 교육 정책이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교육감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를 통해 교육 현안과 정책에 대한 의견을 중앙정부에 건의한다. 이번 선거를 통해 이 기구 내에서 진보진영이 보수진영을 수적으로 압도하게 됨에 따라 보수적 교육 철학을 근간으로 하는 박근혜 정부의 교육정책 추진이 일정 부분 난항을 겪을 것으로 관측된다. 2010년 교육감 선거에서 당선한 곽노현(서울), 김상곤(경기) 등 진보성향 교육감들은 이후 일제고사, 학생인권조례, 시국선언 교사 징계 등의 사안에서 교육부 지시에 맞서며 법정다툼까지 불사한 바 있다.

    현재 가장 관심이 모이는 것은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존폐다. 자사고는 학생의 학교선택권을 다양화한다는 취지로 이명박 정부가 만든 학교 모델. 일반고에 비해 교육과정, 학생선발, 교원인사 등에서 자율성을 폭넓게 보장받는다. 박근혜 정부는 이 정책을 그대로 계승해 현재 전국적으로 49개 자사고가 운영 중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당선인을 비롯한 진보진영 후보들은 이를 강하게 비판해왔다. ‘특권 교육’을 낳고 학생들의 과당 경쟁을 유발한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조희연 당선인은 이번 선거 핵심 공약을 ‘일반고 전성시대’로 삼았을 만큼 자사고에 대한 문제의식이 강하다. 그는 당선 후 인터뷰에서도 임기 중 꼭 이루고 싶은 정책을 묻는 질문에 “자사고 문제 해결과 혁신학교 확대”를 꼽았다. 자사고는 5년마다 평가를 통한 재지정 절차를 밟는데, 마침 9월 전국 25개교(서울 14개교)가 재지정을 앞두고 있다. 조 당선인이 이 문제를 어떻게 푸는지에 따라 다른 지역의 자사고 정책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성향 후보가 약진한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세월호 참사의 충격으로 학부모 유권자의 관심이 입시보다 인간적인 교육 쪽에 쏠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대입 성공을 지상과제로 삼는 경쟁적인 교육 정책에 대한 견제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 진영이 유권자의 마음을 살 만한 정책을 마련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진보진영 후보들이 5월 19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입시고통 해소와 공교육 정상화 △ 학생 안전 및 건강권 보장 △교육비리 척결 등을 3대 핵심 공약으로 제시하는 등 정책 의제를 선점한 반면, 보수진영은 유권자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보진영이 일찌감치 단일화를 통해 전열을 정비한 데 반해, 보수성향 후보가 난립한 점도 승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진보성향 교육감 당선인 중 득표율 50%를 넘긴 인물은 전남 장만채 당선인(56.2%)과 전북 김승환 당선인(55.0%) 두 명뿐이다. 그 외에는 대부분 득표율이 30%대에 머물렀는데도 당선됐다. 보수성향 교육감 후보가 17곳 모두에서 복수로 출마하면서 표가 분산된 덕을 본 것이다.

    인간 교육 열망…진보 교육감 압승
    조희연 교육감 극적 승리

    조희연 당선인도 이 과정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둔 인물로 꼽힌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 초반 그는 보수진영의 고승덕, 문용린 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인지도로 지지율 3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5월 31일 고승덕 후보의 딸 희경(캔디 고) 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버지는 교육감 자격이 없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며 상황이 급변했다. 그전까지 여론조사에서 대부분 1위를 놓치지 않던 고승덕 후보와 현직 교육감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던 문용린 후보가 이 사안을 놓고 ‘공작정치’ 논란을 벌이며 지지율이 동반 하락한 사이, 부동층 상당수가 조희연 후보 쪽으로 옮겨가면서 득표율 39.1%로 당선한 것. 2위 문용린 후보의 득표율은 30.7%, 고승덕 후보는 24.3%로, 두 후보의 득표율을 합치면 50%가 넘었다.

    김석준 부산교육감 당선인도 보수성향 후보 6명이 난립한 상황에 진보 단일후보로 출마해 34.7%의 득표율로 현직 교육감 임혜경 후보(22.17%)를 이겼다. 2002년과 2006년 두 차례 민주노동당 후보로 부산시장 선거에도 출마했던 그를 두고 보수성향 후보들은 선거 기간 내내 이념공세를 폈지만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인사도 대거 당선했다. 이청연(인천), 장휘국(광주), 최교진(세종), 민병희(강원), 김병우(충북), 김지철(충남), 박종훈(경남), 이석문(제주) 당선인 등 8명이 전교조 시도 지부장 출신이다. 이에 따라 전교조가 그동안 추진해왔던 정책, 즉 학생인권 강화와 교원평가 및 교원성과급제 폐지, 무상급식과 친환경급식 확대 등의 실현이 힘을 받을 전망이다. 또 서울과 경기지역에 집중돼 있는 혁신학교가 전국적으로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광역단체장을 여야가 사실상 반반씩 나눠 가진 상황에서 진보성향 교육감 후보가 대거 당선한 것은 이번 선거 최대 이변으로 꼽힌다. 이들의 정책이 교육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많은 이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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