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7

2014.05.12

반다이크가 그린 찰스 1세

만천하에 위엄 과시? 군주로서는 모자란 모습

  • 전원경 문화정책학 박사·‘런던 미술관 산책’ 저자 winniejeon@hotmail.com

    입력2014-05-12 10: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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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다이크가 그린 찰스 1세

    ‘말 탄 찰스 1세’, 안토니 반다이크, 캔버스에 유채, 367x229cm, 런던 내셔널갤러리 소장

    사진이나 TV 방송이 없던 시절, 유럽 군주들은 자기 모습을 담은 초상에 유난히 공을 들였다. 국왕의 초상은 국민 대부분에게 왕을 간접적으로나마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주는 당대 최고 화가에게 초상 제작을 의뢰하는 건 물론이고, 초상 속에서 군왕의 위엄을 최대한 과시함으로써 자신이 ‘하늘이 내려준 국왕’임을 만천하에 과시하려 애썼다.

    1638년 완성한 ‘말 탄 찰스 1세’도 마찬가지다. 이 초상은 루벤스의 제자로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활동하던 안토니 반다이크가 그린 것이다. 찰스 1세는 1632년 빼어난 초상화가로 명성을 떨치던 반다이크를 영국 런던으로 초빙해 궁정화가 직위 및 기사 작위를 줬다. 이때부터 반다이크는 런던에 머물며 찰스 1세를 비롯한 스튜어트 왕실 가족의 초상화를 다수 그리게 된다.

    현재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있는 이 초상 역시 마찬가지다. 거의 실물 크기인 이 그림 속에서 찰스 1세는 번쩍이는 갑옷을 입은 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말을 타고 있다. 금색 체인 목걸이를 걸고 모든 기사의 수장임을 뜻하는 가터 훈장을 달았으며 오른손에는 군 총사령관의 지휘봉을 들었다. 그런 왕의 모습 너머로 평화로운 영국의 전원 풍경이 펼쳐져 있다. 왕을 태운 말이 어두운 숲을 벗어나 햇빛이 환한 평원으로 나가는 모양새는 ‘찰스 1세의 등장과 함께 혼돈의 시대가 가고 평화의 새 시대가 오노라’고 선언하는 듯하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이 초상을 가리켜 ‘으스대는 초상화’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당대 최고 화가의 솜씨에도 그림 속 찰스 1세 얼굴에서는 군왕의 참된 위엄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군주라기보다 군주 역을 어설프게 연기하는 배우처럼 보인다. 말을 탄 모양새 역시 어딘지 어색하다. 역사는 우리에게 이 초상의 주인공 찰스 1세가 의회와 반목을 거듭하다 마침내 왕당파와 의회파 사이에 내전을 일으킨 주인공이 됐음을 알려준다. 이 내전에서 올리버 크롬웰이 이끄는 의회파에 패한 찰스 1세는 폐위됐고 1649년 1월 30일 처형되기에 이른다. 한마디로 찰스 1세는 뛰어난 군주로 불리기는커녕, 군주 자리에 오르기엔 여러모로 현저히 모자라는 인물이었다.

    뛰어난 초상화가였던 반다이크의 그림에서는 이처럼 숨기고 싶은 진실, 즉 ‘왕답지 못한 왕’의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반다이크의 그림 속 말은 실물보다 좀 더 크다. 이 크고 온순한 말은 찰스 1세가 원하던 온순하고 고분고분한 국민 이미지였다. 그러나 당시 영국 국민은 왕과 신을 동일시하며 무조건 왕 앞에 머리를 조아리던 무지몽매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의회를 통한 합리적인 정치를 원했으나 찰스 1세는 끝까지 그런 국민의 바람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림 속 찰스 1세의 우울한 표정은 이 근본적 차이, 즉 왕권은 신으로부터 받은 것이라 믿었던 찰스 1세와 더는 절대왕권을 인정하지 않았던 국민 사이 괴리감을 말하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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