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1

2014.03.31

‘자기결박’이 풍요로운 노후 만든다

투자와 저축 단단히 묶어두는 장치 있어야 돈 모으기 가능

  • 이상건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상무 sg.lee@miraeasset.com

    입력2014-03-31 1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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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결박’이 풍요로운 노후 만든다

    3월 17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한국투자증권 종각지점에서 직장인 이유경 씨(왼쪽)가 소득공제 장기펀드 가입 신청서를 쓰고 있다.

    누군가의 성공담에는 불굴의 의지력이 빠지지 않는다. 온갖 역경과 난관을 딛고, 강철 같은 의지력으로 돌파했다는 식의 얘기다. 그래서인지 의지력이라는 단어를 남용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연초에 금연 결심을 했지만 3개월도 못 가 담배를 빼어 물면, 의지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다이어트도 마찬가지다.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하면 살을 뺄 수 있는데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너무 가혹한 평가다. 통계를 보자. 다이어트를 시도한 사람의 95%는 실패한다. 금연도 비슷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의하면, 40대 남성 기준으로 1년 금연 지속률은 14.3%, 2년 금연 지속률은 9.4%다. 80%에서 90%가 넘는 사람이 의지 박약아인 셈이다.

    세이렌과 오디세우스 그리고 의지력

    이 정도로 처절한 실패에 대한 통계라면, 의지력을 칭송하기 전 한 번쯤은 회의적인 시선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다음 실험을 보자.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학생들을 작은 방으로 불렀다. 방 안 탁자 위에는 갓 구운 맛있는 초코칩 쿠키가 먹음직스럽게 놓여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는 무가 담긴 그릇을 주면서 실컷 먹어도 되지만 쿠키는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고 얘기했다. 그다음 그들을 30분 동안 내버려뒀다. 학생들은 용케도 유혹을 이겨냈다. 두 번째 실험 대상인 학생들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만큼 쿠키를 먹게 했다. 실험이 끝난 뒤 두 그룹 학생들에게 모두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게 했다. 결과는 어떠했을까.



    쿠키 먹는 것을 금지당한 학생들은 마음껏 먹었던 학생들에 비해 문제 풀기를 2배나 빨리 포기했다. 먹고 싶은 것을 참느라 정신적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비한 탓이다. 의지력은 이처럼 배터리처럼 작용한다고 한다. 만약 어떤 문제에 직면해 에너지를 쓰면, 반드시 충전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의지력만으로 어떤 일을 오랫동안 지속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먼저 의지력 부족이 당연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보완하는 장치를 개발해야 한다. 마치 그리스 신화의 오디세우스처럼 말이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세이렌의 매혹적인 노랫소리가 듣고 싶었다. 아름다운 여자 얼굴에 독수리 몸을 가진 세이렌의 노랫소리를 들으면 세이렌에게 가고 싶어 바다에 뛰어들게 된다. 이를 막으려고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고, 자신을 돛대에 단단히 묶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을 절대 풀어주지 말라고 명령했다. 돛대에 묶여 세이렌의 노랫소리를 들은 오디세우스는 황홀경에 빠져 바다에 뛰어들려 발버둥을 쳤지만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는 선원들은 절대 그를 풀어주지 않았다.

    만일 오디세우스가 교만한(?) 마음에 자신의 의지력만을 믿고 아무런 장치도 만들지 않았다면, 그도 다른 사람처럼 유명을 달리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위험에 빠지지 않는 방안을 강구했던 것이다.

    투자나 저축에서도 이런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의지력만으로 노후에 대비해 저축한다는 것은 금연이나 다이어트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오디세우스처럼 자신을 단단히 묶어둬야 한다. 혜택을 받으려면 어쩔 수 없이 일정 기간 묶어놓아야 하는 상품이 있다면, 장기투자 수단으로 최적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자신을 투자라는 돛대에 단단히 묶어둘 수 있는 상품(자기결박형 상품)이 출시됐다. 바로 ‘소득공제 장기펀드’(일명 소장펀드)다. 기존 연간 400만 원까지 소득공제가 가능했던 연금저축계좌가 올해부터는 세액공제 방식으로 바뀐다. 급여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소득공제가 세액공제보다 절세 효과가 뛰어난 편이다. 소장펀드는 급여 5000만 원 이하 근로자만 가입할 수 있다. 연간 불입한도는 600만 원으로, 10년간 연 납입액의 40%까지 소득공제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소장펀드에 가입해 가입한도 600만 원을 채워 투자한다면, 240만 원의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종합소득세율(지방소득세 포함) 16.5%인 사람이 한도까지 가입할 경우, 매년 39만6000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 절세 효과만으로도 원금 대비 6.6%의 확정 수익을 얻는 셈이다. 최장 10년짜리 상품이지만 5년 이상만 유지해도 그동안 받은 소득공제를 토해내지 않아 실질적으로는 5년 만기 상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최소 5년은 묶어둬야 한다는 얘기다).

    소장펀드와 더불어 기존 연금저축계좌와 비과세 재형저축도 의지력 부족을 보완할 수 있는 상품이다. 비과세 재형저축은 소장펀드와 마찬가지로 가입자의 소득 금액 제한 규정이 있다. 근로자는 연봉 5000만 원, 사업자는 종합소득금액 3500만 원 이하만 가입할 수 있다. 비과세 재형저축은 7년 이상 유지해야 이자나 배당소득세 면세 혜택을 볼 수 있다. 비과세 재형저축의 장점은 해외투자에서 극대화된다. 해외채권형이나 주식형 펀드는 발생한 수익에 대해 15.4%의 세금을 내야 하는데, 재형저축으로 가입하면 세금을 내지 않는다. 최근 인기를 끄는 배당주 펀드도 투자 상품으로 적합하다. 배당소득세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결박’이 풍요로운 노후 만든다
    절세 상품이 대부분 이런 유형

    반면 국내 주식의 경우 매매 차익이 없는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소장펀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연금저축계좌는 가입 자격 제한이 없다. 연간 1800만 원까지 납입 가능하다. 올해부터는 소득공제 방식에서 세액공제 방식으로 바뀐다. 소장펀드와 연금저축계좌를 동시에 가입하면, 절세 효과가 더욱 극대화된다.

    연간 소득이 4500만 원인 투자자가 있다고 치자. 이 투자자는 소장펀드와 연금저축계좌에 각각 600만 원, 400만 원을 불입했다. 주민세를 포함해 16.5%의 종합소득세율을 적용받으므로 연말정산 시 400만 원 세액공제와 240만 원(600만 원의 40%) 소득공제를 받아 모두 92만4000원을 돌려받게 된다. 원금 대비 수익률로 계산하면, 9.2%의 확정 수익을 얻는 셈이다.

    현재의 만족을 지연하는 능력이 삶의 성취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심리학자 월터 미셸이 진행한 ‘마시멜로 선택 실험’이다. 네 살배기 유치원생 수백 명을 대상으로 한 이 실험은 만족지연능력, 즉 자제력을 갖춘 아이(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은 아이)가 학업과 인간관계 등에서 더 높은 성취를 했다는 결론을 보여줬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이 실험에서 부각하지 않은 사실이 두 가지 있다. 15분 동안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은 아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는 점과 단지 마시멜로를 덮어놓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이 기다리는 시간이 2배로 늘어났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있었던 동일한 실험을 찍은 동영상을 본 적 있는데, 마시멜로 실험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엄마들이 자녀가 먹지 않는 것을 성공으로 해석하며 애면글면하는 모습이 보기에 편치 않았다. 오히려 “참기 힘들면 눈에 띄는 아무것으로나 마시멜로를 덮어놓으렴”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의지력은 만능이 아니다. 자기결박이 더 좋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절세 상품은 전형적인 자기결박형 구조를 지닌다. 자기를 돛대에 묶어놓을수록 노후 자금은 많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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