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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미드로 본 정치 본색

음모와 협잡 판치는 백악관은 벌써 죽었다?

워싱턴 달구는 ‘하우스 오브 카드’는 암울한 정치 현실에 대한 역설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음모와 협잡 판치는 백악관은 벌써 죽었다?

음모와 협잡 판치는 백악관은 벌써 죽었다?
이것은 권력의 정점을 향해 기어오르는 부부 이야기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편법과 상상할 수 없는 모든 범죄를 죄책감 없이 저지르는 두 사람. 신념을 이유로 진로를 방해하는 이는 그저 제거 대상일 뿐이다. 다른 이의 정서를 공감할 줄 모르는, 단지 공감하는 것처럼 보이는 능력만 탁월한 이 부부는 이제 권좌를 코앞에 두고 있다. 그렇다. 이것은 ‘넥타이를 맨 사이코패스’가 세상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이것은 미국 정치에 대한 이야기다. 연금개혁과 교육문제, 티파티(Tea Party·공화당 성향의 보수 강경 유권자 조직)와 슈퍼팩(Super PAC·액수 제한 없이 기부 가능한 민간 정치자금 단체), 다국적기업의 로비활동 같은 워싱턴의 주요 쟁점이 곳곳에 박혀 있다. 에드워드 스노든과 불법 도·감청, 중국과 일본 영토분쟁과 미국의 개입, 미·중 무역협상 등 국제문제도 빠지지 않는다. 서로 엉겨 붙은 이 쟁점들이 이해관계자들의 협잡과 권모술수에 의해 결정되는 과정 자체가 곧 드라마의 줄거리다. 그렇다. 이것은 워싱턴 정계의 구조적 모순이 어떻게 나라를 망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 인터넷 콘텐츠 서비스업체 넷플릭스(Netflix)가 지난해 시작한 이 드라마 시리즈는 거대 방송사가 아닌 인터넷을 통해 제공되는 콘텐츠로는 사상 최초로 에미상과 골든글로브 주요 부문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관록의 배우 케빈 스페이시와 제작총괄을 맡은 영화감독 데이비드 핀처의 이름을 빌려 ‘판을 갈아엎고’ 있는 기린아다.

2월 14일(현지시간) 공개된 시즌2 역시 단박에 화제 중심으로 떠올랐다. 매주 한 편씩 방영하는 고전적인 방식 대신 넷플릭스는 한 시즌 13개 에피소드 전체를 이날 한꺼번에 올리는 방식을 택했다. 업로드 예정 시간을 앞두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트위터에 ‘내일 하우스 오브 카드. 스포일러는 안 돼요’라는 메시지를 남겨 애청자임을 고백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장문의 분석 기사를 게재하고 주연배우가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만찬의 첫 연사로 초청받는 등 이어지는 파격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봐, 나는 선거 한 번 없이 최고권력의 한 뼘 옆까지 왔어. 민주주의는 과대평가돼 있다니까.”



워싱턴의 고질병 정면 조준

4선 하원의원으로 잔뼈가 굵은 프랭크 언더우드 민주당 원내총무와 환경단체 대표로 일하는 아내 클래어는 온 세상이 부러워하는 잉꼬부부다.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국무부 장관 임명을 약속받았던 언더우드는 취임 직후 대통령이 약속을 어기자 스스로 권력을 쟁취하기로 마음먹는다. 시즌1에서 야심만만한 신참 여기자를 이용해 국무부 장관 지명자를 낙마시킨 그는 이내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끌어들여 부통령 자리를 손에 넣는다. 백악관으로 무대를 옮긴 시즌2에서 그의 타깃은 이제 대통령. 중국 거대기업의 검은 돈이 정치자금으로 유입되는 과정을 막후에서 조정해온 언더우드는 이를 거꾸로 이용해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는다.

드라마는 의회 입법과정과 선거자금 동원이라는 워싱턴의 고질적 병폐를 정면에서 조준한다. 기업 로비스트를 이용해 의원들에게 정치자금을 쥐어주는 조건으로 법안 지지표를 모으고, 상대편 의원은 지역구 민원사업과 의회 직위를 보장하는 거래로 무마한다. ‘소시지와 법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려지면 안 된다’는 오랜 격언이 화면 위에서 고스란히 재현된다.

드라마가 건드리는 가장 민감한 성감대는 중국이다. 미국은 더는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 아님을, 중국이야말로 워싱턴 의회를 막후에서 주무를 수 있을 만큼 거대한 힘임을 노골적으로 암시한다. 대통령의 오랜 멘토인 기업가가 미·중 무역협상에 개입하고, 이를 꿰뚫어본 중국 권력층은 그와의 합작사업을 미끼로 이익을 관철한다. 유권자의 판단이나 미국 국익은 눈곱만큼도 고려 대상이 아니다. 미국인이 신앙처럼 믿어온 민주주의 정치제도가 실제로는 얼마나 취약한 상태인지에 대한 직설적인 폭로다.

드라마가 중국에서도 초유의 인기를 끄는 역설은 바로 이 때문에 생겨났다. 2월 19일 ‘워싱턴포스트’는 중국판 넷플릭스로 부르는 ‘소후망(搜狐網)’에서 ‘하우스 오브 카드’가 미국 드라마 부문 조회수 1위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공산당 1당 독재국가인 중국의 최대 콤플렉스를 이 드라마가 달래주고 있다는 것. 음모의 근원으로 중국 권력층을 지목하는 내용에도 베이징 당국 역시 전례와 달리 별다른 검열을 하지 않았다.

2월 21일 오바마 대통령이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회동하자, 이튿날 중국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 해외판은 두 사람의 만남을 이 드라마에 비유하며 ‘카드로 만든 집은 금세 무너지게 돼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아나? 다른 이들의 아픔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가차 없는 실용주의(ruthless pragmatism) 때문이야. 당신을 선택한 것도 당신에게서 같은 걸 봤기 때문이라고.”

反사회적 인격장애 부부

백악관은 할리우드가 가장 사랑하는 작품배경이지만, 장르로서의 정치 드라마나 영화는 그다지 인기 있는 품목이 아니다. 그러나 ‘하우스 오브 카드’는 주인공 부부를 감정회로가 고장난 반(反)사회적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를 가진 인물들로 설정함으로써 공감대를 넓혔다. 연쇄살인범 심리 연구에서 주요 개념이 만들어진 반사회적 인격장애는 최근 미국 대중문화의 인기 아이템 중 하나다. 미국정신의학회 정의에 따르면 이들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관심이나 걱정이 전혀 없으며, 따라서 피해를 입히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일부는 달변의 매력도 갖춰 다른 사람을 매혹해 착취하기도 한다.

주인공 부부에 대한 묘사는 이러한 정의를 고스란히 재현한다. 내뱉는 약속의 말과 충성의 다짐은 위기 순간을 벗어나려는 임시방편일 뿐 상대의 효용가치가 바닥나면 그대로 버린다. 더러운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충성스러운 초선의원 때문에 궁지에 몰리자 언더우드는 자기 손으로 그를 살해하고, 진실의 코앞에 다가선 기자를 정보기관과 사법당국을 동원해 파멸시킨다. 늦은 밤 거실에 앉은 부부는 “타인의 아픔을 염려하는 건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낭비”라고 속삭인다. 성적(性的) 문란과 반가족적 성향은 이들의 악마성(惡魔性)을 극대화하는 팁이다.

2007년 미국에서 출간한 베스트셀러 ‘직장으로 간 사이코패스’는 성공하는 최고경영자와 화이트컬러 상당수가 반사회적 인격장애 성향을 보인다는 도발적 주장을 펼친 바 있다. 남다른 지능과 포장술로 주위를 조종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양복을 입은 뱀(Snakes in Suits)’이라는 것이다. 경쟁과 승부로 점철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주변 사람의 감정에 신경 쓰지 않고 범법조차 개의치 않는 인격장애야말로 가장 큰 경쟁력이라는 아이러니다. 불의가 승리하고 정의는 패배하는 세상, 그렇게 ‘하우스 오브 카드’는 ‘당신이 좌절한 것은 그들이 악하기 때문’이라는 역설적인 메시지로 갑남을녀를 위로하며 보편성을 획득한다.

“나는 원하는 걸 얻기 위해 거짓말도 하고, 속임수도 쓰고, 위협도 가하지. 하지만 최소한 일이 되게는 만들잖아.”

“어쨌든 많은 일을 하지 않나”

음모와 협잡 판치는 백악관은 벌써 죽었다?

2006년 종영한 미국 NBC 정치 드라마 ‘웨스트 윙’ 출연진.

‘웨스트 윙(The West Wing).’ 1999년부터 2006년까지 7개 시즌에 걸쳐 방영한 미국 NBC의 대표 정치 드라마다. 바틀릿 대통령과 참모들이 8년간 백악관을 운영하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 역시 에미상과 골든글로브를 휩쓸며 큰 인기를 누렸다. 눈여겨볼 대목은 같은 배경과 소재를 다루는 두 작품의 접근방식이 정반대라는 사실. ‘웨스트 윙’은 대통령과 직원들이 선한 의지와 치열한 토론을 통해 당면한 난제를 풀어내려 사력을 다하는 이상적인 정부를 그린 판타지다. 반면 ‘하우스 오브 카드’는 오로지 음모와 협잡만이 정치의 본질이라고 말하는 리얼리티 정치극이다.

‘웨스트 윙’이 인기를 끌던 시기, 현실 세계 백악관 주인은 힘의 정치와 미국 일방주의를 소리 높여 외쳤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었다. 부시는 ‘오답’이라 해도 분명 어딘가에는 ‘정답’이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이야말로 ‘웨스트 윙’의 인기 배경이었다. 거꾸로 ‘하우스 오브 카드’는 고귀한 이상주의가 넘쳐나지만 실제로는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오바마 행정부의 오늘을 정반대로 투사한다. 건강보험, 재정위기, 중국과의 갈등 같은 첨예한 이슈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는 현실 백악관의 대칭점이다. 이상주의와 현실주의가 시계추처럼 반복돼온 현대 미국 정치사가 허구 세상에서 재현되는 셈이다.

“때로는 실제 정치가 드라마처럼 효율적이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다. 어쨌든 프랭크 언더우드는 많은 일을 해내지 않나.”

오바마 대통령이 남긴 이 씁쓸한 언급은 이 드라마를 둘러싼 미국 내의 기묘한 기류를 명확히 보여준다. 지난해 부채한도 협상 좌초와 연방정부 폐쇄 위기가 보여줬듯, ‘작동하는 정치는 악하고 선한 정치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온 미국을 뒤덮고 있는 것이다.

정계를 악마 소굴로 묘사

“배우는 워싱턴 정가 초청연사 1순위로 떠오르고 의원들은 카메오 출연 기회를 애타게 기다린다. 정계를 악마의 소굴로 묘사하는 드라마에 정치권 모두가 몸 달아 하는 기묘한 현상이다. 흡사 워싱턴이 할리우드가 된 듯하다.”

미국 주요 선거에 참여하며 워싱턴 정치를 현장에서 지켜본 정치컨설턴트 김윤재 변호사의 말이다. 보통선거의 순수했던 이상은 돈이 지배하는 미디어 정치와 이미지 투표라는 현실로 타락했고, 제도정치는 이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능력이 없다는 불편한 진실. 그렇게 ‘하우스 오브 카드’는 우리가 그간 믿어온 신념이 이제 그 효력을 다한 게 아닐까 하는 불안을 간질인다. 그렇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주간동아 2014.03.17 929호 (p28~30)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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