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5

2014.02.17

질 좋은 자산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

양극화 시대엔 새 경제 잣대 필요…비싼 것이 더 많이 오르는 현상

  • 이상건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상무 sg.lee@miraeasset.com

    입력2014-02-17 10: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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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 좋은 자산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

    서울 강남구 언주로30길 고급아파트 타워팰리스.

    한국 사회의 화두 중 하나는 양극화다. 외환위기 이후 소득 간, 지역 간, 기업 간 격차가 벌어졌다는 사실은 굳이 수치를 동원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그래도 몇몇 수치를 살펴보자.

    사회적 불평등을 나타내는 척도인 지니계수는 2010년 0.315(한국 도시 가구 기준, 1인 가구 및 농가 제외)였다. 지니계수는 0과 1 사이 값을 갖는데, 0에 가까울수록 소득 분배가 평등한 것이다. 통상 0.4가 넘으면 불평등 정도가 심한 것으로 본다. 아직 0.4까지는 아니지만 2000년대 들어 계속 악화하는 추세다. 상대적 빈곤율은 더 좋지 않다. 상대적 빈곤율은 중위 소득(인구를 소득순으로 나열했을 때 한가운데 있는 사람의 소득)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구 비중을 뜻한다. 상대적 빈곤율은 1990년 7.8%에서 2011년 14.9%로 가파르게 올랐다. 저소득층이 그만큼 늘었다는 의미다.

    양극화와 자산시장의 변화

    양극화(혹은 불평등)에 대한 해석은 처지마다 상당히 다르다. 먼저 불평등은 경제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라는 시각이다. 산업사회에서 지식사회로 넘어오면서 생산성 혁신과 세계화로 부 쏠림이 나타났는데, 이는 자연스러운 자본주의 발전 과정이라는 것이다. 반대편 시각에선 부 쏠림은 사회적 불안, 중산층 붕괴 등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켜 경제발전에 장기적으로 어두운 그늘을 드리운다고 본다. 두 시각 모두 그 나름의 근거와 논리를 지니고, 때로는 정치적 이념에 의해 뒷받침되곤 한다.

    그런데 여기서 흔히 간과하는 점은 양극화가 자산시장과 가계 살림살이에 미치는 영향이다. 양극화는 일차적으로 소득 문제다. 누가 돈을 갖고 있느냐, 누가 돈을 많이 버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돈의 소유와 액수 증가는 투자에서 중요한 변수다. 양극화는 사람의 가치평가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주택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 주택시장에서 대세 상승기(폭등기)는 1970년대 중·후반, 80년대 말, 2000년대 초반 등 모두 세 차례 있었다. 앞의 두 차례는 세 번째 시기만큼 양극화가 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부터 양극화가 심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주택 같은 자산은 소득의 영향을 크게 받는 편이다. 왜냐하면 대부분 돈을 벌면 더 좋은 집에서 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좋은 집에 대한 간단한 기준 가운데 하나는 주거 넓이다. 국민 소득 증가와 함께 우리나라 사람의 1인당 주거 넓이는 꾸준히 증가해왔다. 1990년 13.8㎡에서 97년 17.2㎡, 그리고 2005년에는 24.8㎡로 15년 사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래도 아직 우리나라 1인당 주거 넓이는 미국이나 유럽, 그리고 작은 집에 산다는 일본보다 적은 편이다. 주택 질(質)도 중요하다. 학군, 안전, 교통, 이웃의 사회적 지위 등이 주택 질을 결정하는 요소다. 소득이 증가하고, 그 소득 증가 방향이 균질적이지 않은 데다 쏠림 현상까지 나타난다면 차별화는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질 좋은 자산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

    서울 강남의 대규모 무허가 판자촌인 구룡마을.

    최근 국내 주택시장을 두고 무조건적인 비관론을 펼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들의 논거 가운데 하나가 인구 고령화다. 고령화와 주택가격 하락의 예로 일본을 즐겨 들곤 한다. 하지만 일본은 1980년대 말부터 20여 년간 거의 ‘제로(0)’ 성장을 했고, 그 결과 소득이 늘지 않았다. 만일 현재 2만 달러가 넘는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된다면 어떨까. 아마도 모든 주택이 아닌, 고소득자가 선호하는 주택은 더 오를 것이다. 이때는 지역 간 양극화뿐 아니라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다른 신호, 예를 들어 조망권 같은 공급하기 어려운 희소자원 가치가 더 높아질 개연성이 크다.

    남 따라 하는 소비 절대 금물

    양극화는 가계 살림살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고령화가 진전되면서 노후 준비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걸림돌로 지적되는 것이 바로 교육비다. 교육비는 주택과 같이 지위재적 성격을 지닌다. 좋은 교육을 통해 수입이 많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교육을 지위재적 성격으로 만든다.

    양극화와 지위재의 상관관계에 대해 분석한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는 “또래집단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자녀를 키우는 것은 성공을 측정하는 가장 뚜렷한 잣대 중 하나다. 자녀 양육은 경쟁으로 간주된다”고 지적한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좋은 학군(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기 위한 경쟁이 주택에 대한 입찰경쟁으로 이어진 것은 양극화가 심해진 2000년대 이후 나타난 현상이다. 가계부채 문제도 주택가격 상승, 학군 입찰경쟁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고소득층의 소득 증가와 이로 인한 일부 지역 주택에 대한 수요 증가가 소득이 낮은 계층까지 대출로 주택 구매 대열에 뛰어들게 만들었던 것이다.

    반면 저축은 주택이나 교육과 달리 지위재적 성격이 약하다. 만일 저축을 많이 한 것이 사회적으로 존중받고 그것을 주택처럼 하나의 사회적 신호로 드러낼 수 있다면, 저축률은 비약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에게 동일한 금액으로 학군이 좋은 곳에 집을 살지, 아니면 안락한 노후를 위해 저축할지를 묻는다면 대부분 전자를 선택할 것이다.

    인간은 시기하고 질투하는 동물이다. 나보다 잘사는 사람을 보면 자기도 그렇게 되려고 많은 노력을 경주한다. 소위 ‘폴로 업(Follow Up)’ 전략이다. 하지만 투자에 적용될 때는 무리한 대출, 과도한 소비로 이어질 수도 있다. 거품이 꺼지고 나면, 부자보다 중산층과 빈곤층이 더 고통스러운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것이다. 양극화 시대에 가장 무서운 적은 남, 특히 부자의 소비 행태를 따라하다 짊어지게 되는 부채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자산 평가 방식에서도 다른 잣대가 필요하다. 일정 기간 더 비싼 것이 더 많이 오르는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비싼 것이 더 비싸질 수도 있고, 싼 것이 진짜 비지떡인 것으로 판명날 수도 있는 것이다. 양극화 시대에는 가격과 함께 질을 따져야 한다. 좀 비싸더라도 질이 좋은 자산에 투자해야 한다. 질이 좋은 자산이란 주식으로 얘기하면 빚이 없고 이익을 꾸준히 내며 배당금을 잘 주는 주식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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