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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석의 비경 트레킹| 민족의 시원 태백산 밤풍경

천년 주목 밤마다 별꽃 피운다

민족의 시원 태백산 밤풍경 일품…문수봉 산줄기 걷다 보면 벅차오르는 감동

  • 진우석 여행작가 mtswamp@naver.com

천년 주목 밤마다 별꽃 피운다

천년 주목  밤마다 별꽃 피운다

깊은 밤 천제단에는 신의 시간이 흐른다. 천제단에서 별이 쏟아져 나오는 듯하다.

신년에는 민족 시원이 흐르는 태백산이 좋다. 예부터 태백산은 하늘과 소통하는 신성한 공간이었다. 구한말 민족 수난기에 접어들자 하늘과 산신에게 지내던 태백산 제사의 대상이 단군으로 바뀐다. 어둑새벽 길을 나서 천제단 일출에 도전해보자. 찬란하고 따뜻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무당할미처럼 간절하게 소원을 빌어보자.

겨울 태백산을 찾는 시나리오가 있었다. 펄펄 눈 내리는 밤, 태백행 막차에 몸을 싣는다. 펑펑 내리는 눈 맞으며 천제단에 오르면 시나브로 하늘이 열린다. 그리고 해가 뜬다. 따스운 햇살 받으며 간절하게 소원을 빈다. 눈부신 무주공산 설원에 눕는다. 깔깔 웃는다….

밤기차에 몸을 싣고 떠나는 맛

12월 중순, 시나리오와 비슷한 일기예보가 나왔다. 설레는 마음에 동행을 구했지만 실패. 여러 가지 걸리는 일이 많아 패스. 그리고 다시 때를 기다렸다. 1월 초순, 지른 동계침낭이 도착하는 날 강원도에 대설주의보가 내렸다. 떠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배낭에 침낭을 쑤셔 넣고 밤 11시 25분 태백행 막차에 몸을 싣는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막차 타는 심정은 자못 비장하다. 강원도에 내린 눈은 밤에 그쳤다. 비록 눈은 없지만, 기차는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졸다 깨다를 반복하면 어느새 태백역이다. 역을 빠져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매서운 추위가 덮친다. 서둘러 택시를 타고 유일사 입구에 내린다.



딸각! 헤드랜턴을 켜자 눈길이 빛난다. 뽀득, 아이젠이 눈을 밟는 소리가 경쾌하다. 이미 한 무리 사람이 지나가 신설을 밟는 행운은 놓쳤다. 갈림길을 지나면 낙엽송 지대를 통과하고 널찍한 임도가 이어진다. 산길에는 뽀득빠득, 눈 밟는 소리와 허연 입김 내뿜는 자기 숨소리로 가득하다. 잠시 발길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저마다 랜턴을 켠 별들이 운행하면서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유일사를 지나면 산등성이에 올라붙는다. 한동안 산등성이를 따라 오르면 주목이 하나 둘 나타나고, 장군봉 아래 주목 군락지에 들어선다. 좋은 자리를 잡고 헤드랜턴을 끈다. 어둠과 별빛이 동시에 밀려온다. 주목과 눈, 어둠과 별이 어우러진 분위기가 신성하면서도 환상적이다. 배낭에서 침낭을 꺼내 주목 아래 아예 드러눕는다.

주목들이 하늘을 향해 스멀스멀 기지개를 켠다. 온몸을 벌린다. 몸을 부르르 떨면 가지마다 별꽃이 핀다. 별꽃은 주목이 하늘과 내통하는 신호다. 태백산을 떠도는 무당할미와 순례자의 간절한 염원, 천제단에 올랐던 수많은 ‘산꾼’의 소원이 주목을 타고 하늘로 전해진다. 한 가지 소원을 접수할 때마다 반짝, 별은 빛난다.

천년 주목  밤마다 별꽃 피운다

강원 태백 젊은이들이 천제단에서 일출을 배경으로 뛰어오르고 있다.

팔 벌려 하늘과 내통하는 주목

천년 주목  밤마다 별꽃 피운다

부쇠봉에서 본 천제단과 장군봉. 우리 민족 어머니의 젖가슴 처럼 보인다(위). 장군봉 아래 주목 군락지에는 오래되고 기품 있는 주목이 모여 있다. 왼쪽으로 함백산이 보인다.

주목 군락지가 끝나는 지점이 장군봉이다. 태백산은 1566.7m 장군봉이 최고봉이지만, 그 옆 1560.6m 천제단이 주봉 구실을 한다. 조망이 좋고 태백산 성역인 천제단이 있기 때문이다. 한밤 천제단 일대는 신의 시간이 흐르듯 고요하다. UFO(미확인비행물체)처럼 생긴 제단 위로 유독 별이 총총하다. 마치 제단에서 수많은 별을 쏘아올린 듯하다.

시나브로 동쪽 하늘 어둠이 허물어진다. 천제단은 이미 무당할미와 순례자가 진을 쳤고 산꾼도 제법 자리 잡았다. 태백산 일출은 유명하지만, 유명한 만큼 드라마틱한 장면이 펼쳐지는 건 아니다. 해는 문수봉 뒤 살짝 낀 구름 위로 다소 밋밋하게 떠올랐다. 일출을 기다리던 사람 모두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린다. 해가 두둥실 떠오르자 복장이 부실한 한 무리 선남선녀가 천제단 앞에서 노래와 율동을 한다. 투명한 해를 받으며 노래하고 춤추는 태백 청년들. 그들 덕분에 태백산 일출이 맑게 느껴진다.

해가 뜨면 깨어나는 산하를 감상할 차례. 찬란한 빛을 받으며 첩첩 산줄기가 꿈틀거린다. 가만히 그 모습을 보노라면 사방에서 산맥이 나를 향해 말 달려오는 듯하다. 우리 땅에 대한 벅차오르는 감동, 선인은 이것을 호연지기라 불렀다.

대부분 사람은 천제단에서 망경사를 거쳐 당골로 하산한다. 하지만 문수봉까지 자박자박 설원 산등성이를 밟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앞쪽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문수봉으로, 자세히 보면 정상 돌탑이 보인다. 문수봉 이정표를 따라 산등성이를 따르면 천제단 하단(下壇)으로 내려선다. 태백산 제단은 상단 격인 장군봉 제단과 천제단, 하단으로 이뤄졌다. 하단 주변은 주목이 무성하고 지형적으로 바람이 없는 평온한 공간이다.

하단을 지나면 갈림길. 문수봉과 백두대간이 갈린다. 문수봉 방향이 지름길이고, 백두대간 방향은 부쇠봉을 거쳐 문수봉으로 이어진다. 조금 돌더라도 백두대간 방향으로 나아가면 앞쪽으로 첩첩 산줄기가 펼쳐진다. 자세히 보면 유독 부드러운 산등성이가 하늘에 마루금을 그리는 것이 보인다. 그곳이 소백산이다. 예부터 소백산에서 태백산까지 구간을 양백지간이라 불렀다. 역동적이면서도 부드러운 산세가 일품이다.

부쇠봉은 문수봉과 백두대간이 갈라지는 지점이다. 부쇠봉 아래 널찍한 헬기장은 백패커에게는 야영장소로 널리 이용된다. 부쇠봉을 내려오면 문수봉까지는 걷기 좋은 산등성이가 이어진다. 여기에 자작나뭇과의 사스래나무가 군락으로 자란다. 강원도 추운 땅에만 자생하는 귀한 나무다. 햇빛에 반짝 빛나는 허연 나뭇가지들이 싱그럽다. 길섶 나무들은 두툼한 솜이불을 덮고 잠들었다.

문수봉으로 이어진 조붓한 눈길

천년 주목  밤마다 별꽃 피운다

천제단을 비추는 찬란한 아침 빛. 뒤로 백두대간 산하가 깨어난다.

문수봉 정상에 오르기 직전 잠시 배낭을 내려놓는다. 앉을 것도 없이 그대로 눈이불에 눕는다. 시퍼런 하늘이 끝없이 펼쳐지고 속이 후련해 깔깔 웃음이 터진다. 엉덩이 털고 일어나 끙끙거리며 비탈을 오르면 대망의 문수봉이다. 문수봉은 정상 일대가 검은 바위로 가득 차 신비롭다. 앞쪽으로 그동안 걸어온 장군봉~천제단~부쇠봉이 한눈에 잡힌다. 천제단과 장군봉은 어머니 젖가슴처럼 보이고, 두 봉우리에 쌓은 제단은 영락없이 젖꼭지다. 태백산은 두 가슴으로 배달민족을 길러냈다.

하염없이 겨울 태백산을 바라보다 하산 길에 든다. 문수봉을 내려오면 갈림길. 곧장 당골로 내려가는 길과 소문수봉을 거쳐 가는 길로 갈린다. 소문수봉을 거치는 길이 편하고 걷기도 수월하다. 소문수봉은 아담해 마음이 편하다. 마지막으로 함백산과 태백 시내 조망을 즐기다 하산한다. 산등성이를 계속 따르던 산길이 슬그머니 고도를 내린다. 구불구불 울창한 숲길을 걷는 맛이 괜찮다. 울창한 낙엽송 지대를 통과하면 눈꽃축제로 시끌벅적한 당골이다. 버스를 타고 태백역으로 돌아가는 길, 내 안에 가득한 알 수 없는 신비로운 힘에 몸이 훈훈하다.

여행정보

천년 주목  밤마다 별꽃 피운다

강원 태백 별미인 연탄불 한우.

● 태백산 산길 가이드

태백산은 유일사~주목 군락지~장군봉~천제단~문수봉~소문수봉~당골 코스가 좋다. 10.8km로 5시간쯤 걸린다. 아침 일찍 서둘러 천제단에서 일출을 맞는다.

● 교통

서울 청량리역→강원 태백역은 07:07~23:25, 1일 8회 운행. 서울 동서울종합터미널→태백시버스터미널은 06:00~23:00, 수시로 다닌다. 태백역→유일사는 07:00~22:15, 1일 10회 다닌다. 당골행은 07:38~22:15, 수시로 다닌다.

● 맛집

태백은 연탄불에 구워 먹는 한우가 별미다. 질 좋은 갈빗살과 주물럭을 연탄불에 구워 더 맛있다. 태성실비식당(033-552-5287)과 태백한우골(033-554-4599)이 유명하다.

● 숙소

태백시청에서 운영하는 당골 태백산민박촌(033-553-7440~1)이 저렴하고 시설도 좋다. 숲으로 둘러싸인 태백고원자연휴양림(033-582-7440)은 겨울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주간동아 2014.02.10 924호 (p62~64)

진우석 여행작가 mtswam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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