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스무 번 제사상 일상으로 외출

안동 제사 음식

  • 박정배 푸드 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입력2014-01-06 09: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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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스무 번 제사상 일상으로 외출

    선미식당에서 칼국수를 주문하면 백반에 가까운 상차림을 받을 수 있다.

    신정이 지나고 설이 다가온다. 사람은 저마다 고향을 찾아 부모에게 안부를 전하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다. 그러나 안동에서 제사는 조금 색다른 일상일 뿐이다. 제사를 지내려고 만든 음식이 세상 밖으로 나와 외지인도 먹을 수 있는 곳이 안동이다.

    조선시대 음식사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조리서 ‘수운잡방’(1540년경)과 ‘음식디미방’(1670년경)은 안동지역 요리법을 기록한 책이다. 제사가 많은 안동지역 사람에게 조리법 기록은 필수였다. 안동 제사 음식 가운데 가장 유명해진 것이 칼국수다. 오랫동안 안동에서 칼국수는 외식이 아닌 가정식이었다. 제사 때면 미리 면을 만들어 놓았다가 손님이 오면 국물에 말아 내는 건진국수는 필요가 낳은 산물이다. 밀에 콩가루를 섞은 부드러운 면발은 안동 국수가 가진 공통된 특징이다.

    각 집마다 비율이 다르지만 대개 밀가루와 콩가루를 7대 3 정도로 섞는다. 1974년 창업한 ‘선미식당’은 안동에서 가장 오래된 칼국수 식당이다. 주문하면 커다란 양은쟁반에 칼국수와 조밥, 김치, 된장, 젓갈, 마늘종 튀김 같은 반찬이 나온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면 음식이 아닌 가정식 백반에 가까운 상차림이다.

    안동 신시가지 옥동에 자리한 ‘옥동손국수’는 선미식당보다 좀 더 세련된 맛과 분위기를 연출한다. 옥동손국수보다 더 세련된 사골국물에 칼국수를 말아 먹는 문화는 서울에 안동칼국수란 이름으로 진출해 큰 성공을 거뒀다.

    안동 칼국수는 계절에 따라 먹는 방식이 조금 달랐다. 여름에는 주로 건진국수를 먹었고, 겨울에는 국물에 애호박과 배추 같은 채소를 넣어 끓여 먹는 누름국수 또는 제물국수를 많이 먹었다.



    칼국수와 더불어 안동을 대표하는 음식은 문어(文魚)다. 문어 이름을 ‘글’과 관련해 해석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문어의 ‘문’은 민머리, 대머리를 뜻하는 ‘·#48096;’에서 나왔다. 한자 표기를 문어로 쓰면서 생긴 오해다.

    제사에 빠지지 않는 삶은 문어를 이제는 거의 시장에서 사다 먹는다. 안동 중앙시장에는 문어를 삶아 파는 전문점이 14개에 이른다. 전국 생문어의 30%인 400t 정도가 안동에서 소비된다.

    중앙시장에서 문어를 삶아 파는 가장 오래된 집 가운데 하나인 ‘중앙문어’는 안동은 물론 전국에서 주문이 들어오는 곳이다. 강력한 화력과 커다란 솥이 있어야 대문어를 제대로 삶아낼 수 있다. 중앙문어의 문어를 안동에서 직접 먹을 수 있는 곳은 중앙시장 주변에 있는 ‘동털실내포장’이다.

    안동에서 문어는 제사를 지낸 후 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많이 숙성된 상태다. 바로 삶은 문어는 물기가 너무 많지만 하루 정도 숙성한 문어는 겉은 부드럽고 속은 졸깃하다.

    1년에 스무 번이 넘는 제사 때문에 생긴 또 다른 음식 문화가 헛제삿밥이다. 비빔밥의 가장 강력한 기원설은 제사상에 올렸던 음식을 한데 모아 비벼먹은 것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헛제삿밥의 먹는 방법과 유래도 같다. 제사상에 올렸던 나물과 탕채를 간장에 비벼먹는 문화가 선비들의 야참이 됐다가 외식으로 발전했다.

    최영년의 ‘해동죽지’(1925)에는 “평상시에는 제삿밥을 먹을 수 없으므로 제사 음식과 같은 재료를 마련해 비빔밥을 해먹은 데서 헛제삿밥이 생겨났다”는 구절이 나온다. ‘까치구멍집’은 세련된 헛제삿밥으로 유명하다. 헛제삿밥 후식으로 먹는 안동식혜도 빼놓을 수 없다. 찹쌀 고두밥에 엿기름, 무, 생강, 고춧가루를 넣어 삭히는 달고 매운 식혜는 겨울이 제철이다. 겨울에도 안동에는 먹을거리가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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