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7

2013.12.16

놀라고…졸고…그래도 최고의 연주

전문가가 본 올해의 공연

  • 조이영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lycho@donga.com

    입력2013-12-16 11: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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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라고…졸고…그래도 최고의 연주

    올해 내한공연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왼쪽)와 지휘자 마크 민코프스키.

    2013년 객석에서 보낸 시간을 돌이켜보면 음악에 황홀해하고, 놀라고(좋은 의미에서), 실망하고, 때론 꾸벅꾸벅 졸던 순간이 떠오른다. 휴식시간에는 서울 예술의전당 음악당 로비에 삼삼오오 모여 “어땠어?” “어떻게 들었어요?” 하며 서로 눈을 반짝였다.

    올해도 자주 연주회장을 찾았던 전문가 12명에게 당신의 가슴을 뜨겁게 한 최고 공연은 무엇이었느냐고 물었다. ‘톱 5’는 이렇다. 1위 베르나르트 하이팅크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8표), 공동 2위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말러 교향곡 9번, 베를린 필하모닉(이상 6표), 공동 4위 율리야 피셔와 드레스덴 필하모닉, 다닐 트리포노프 피아노 리사이틀(이상 5표).

    이번 호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진 못했지만, 전문가들에게 역시 찬사를 받은 올해의 공연을 살펴보려 한다. 기회가 생기면 이 공연들에 관심을 가져보라는 뜻에서다.

    4표를 얻어 아쉽게 6위를 차지한 공연은 마크 민코프스키와 루브르의 음악가들. 루브르의 음악가들은 시대악기 연주단체로, 바로크 레퍼토리를 원형에 가깝게 연주하려고 1982년 창단됐다. 고풍스러운 선율과 담백한 해석, 옛 악기를 쓰는 원전 연주에 풍성한 소리로 호평 받는 단체지만, 첫 내한공연에서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음악칼럼니스트 유혁준 씨는 “그동안 시대악기 연주단체의 내한에서 느낀 답답함을 일거에 무너뜨린 악흥의 순간”이라 했고, 송현민 씨는 “음표와 악기는 17세기 바로크의 것이었지만 지휘자와 단원, 악기들이 펼치는 사운드는 분명 21세기 음향과 감각에 속한 무대”라고 평했다.



    다음으로 3표를 받은 공연은 앤드루 데이비스가 지휘한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BBC 심포니), 샤를 뒤투아가 지휘한 로열 필하모닉(로열필), 루돌프 부흐빈더 피아노 리사이틀이다.

    BBC 심포니는 영국을 대표하는 작곡가들의 곡으로만 프로그램을 꾸몄다.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과 월턴의 비올라 협주곡(협연 리처드 용재 오닐), 브리튼의 ‘네 개의 바다 간주곡’,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을 연주했다. 음악칼럼니스트 노태헌 씨의 평은 이렇다.

    “최상의 조합으로 듣는 영국 음악. BBC의 두툼하고 어두운 사운드는 부드럽고 진한 음영을 지닌 엘가 음악과 환상의 마리아주를 보여줬다.”

    한때 KBS교향악단 상임지휘자 후보로도 꼽혔던 샤를 뒤투아의 로열필은 드뷔시의 ‘바다’와 라벨의 ‘다프니스와 클로에’, 멘델스존의 ‘핑갈의 동굴’,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을 들려줬다. 음악칼럼니스트 최은규 씨는 “프랑스 관현악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던 음악회”라고 했다.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중국 피아니스트 유자 왕이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스테판 피 재키브가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했다. 당초 유자 왕이 악단보다 더 큰 관심을 끌었으나 정작 실연은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오스트리아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의 리사이틀은 연주자 명성에 턱없이 못 미치는 텅텅 빈 객석이 아쉬웠던 연주회다. 그럼에도 음악칼럼니스트 류태형 씨는 “물과 같았던 연주. 슈베르트와 베토벤과 쇼팽이 그를 통해 흘렀다. 잔잔한 호수도, 가랑비와 뇌우도, 거센 파도도 거기 있었다. 움켜쥐면 투명하고 맑아 마실 수 있는 샘물이었다”고 했다. 음악칼럼니스트 박제성 씨는 “세계적인 베토벤 해석가 부흐빈더가 펼쳐낸 베토벤의 그 엄청난 비르투오시티(virtuosity·고도의 연주 기교)와 악보에 대한 철저한 고증, 날카로우면서도 풍윤한 스타일은 베토벤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새롭게 교정해준 충격적인 무대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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