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7

2013.12.16

동물원 있는데 ‘동물원法’은 없다

오락과 구경 위주에서 생물다양성 보전으로 시선 교정 계기 만들어야

  • 이항 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 hanglee@snu.ac.kr

    입력2013-12-16 1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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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원 있는데 ‘동물원法’은 없다

    동물을 위한 행동·카라·동물자유연대·핫핑크돌핀스 등 동물보호 시민단체 회원들이 10월 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동물원법’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손팻말을 들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동물원에 대한 관심이 지금처럼 높았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최근 서울대공원 사육사가 호랑이에게 물려 결국 사망한 불행한 사건이 직접적 계기가 됐지만, 그 훨씬 전부터 동물원에서의 안전사고나 동물원에서 동물이 학대받는 일은 비일비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일련의 사건은 동물원 관계자뿐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 전부가 한 번쯤 다시 생각해봐야 할 화두를 던진다. 즉, 인간을 위한 구경거리 또는 어린이를 위한 교육도구로 동물을 잡아 가둔 채 전시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가 하는 점이다.

    공상적인 가정을 한 번 해보자. 어느 머나먼 별에서 온, 매우 지능이 뛰어나고 진보한 기술을 보유한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했다. 외계인은 사람을 마구 죽이거나 잡아가고, 또 다른 별들에서도 동물들을 잡아 자기 별에 동물원을 차린다. 그리고 팻말을 붙인다. 이 동물들은 지구에 사는 사람이란 동물, 저 동물은 알파성에서 온 동물, 저 동물은 베타성에서 온 동물….

    외계인에게 이런 대접을 받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같은 지구에 사는 다른 동물을 대상으로 이와 같은 일을 하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동물원이다. 우리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다른 생명에게 강요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서구 사회에서는 오래전부터 했고, 이에 따라 서구 동물원은 윤리적 고민에 빠지게 됐다.

    ‘서식지 외 보전’ 시대적 사명

    이러한 윤리의식의 진보와 더불어, 동물원을 둘러싼 세계에는 하나의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그것은 인간 활동이 수많은 종을 멸종시키고, 이로 인해 지구의 생물다양성이 유례없는 속도로 감소한다는 사실이다. 생물다양성의 감소는 지구 생태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동식물 등 자연계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안전과 복지에도 심각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학자들은 종의 멸종을 막고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려고 다양한 수단을 생각하게 됐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서식지 외 보전’이라는 것이다.



    서식지 외 보전은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을 일시적으로 인위적인 보호시설에서 증식, 보전함으로써 언젠가 자연의 서식환경이 회복됐을 때 다시 야생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씨앗을 남겨두자는 개념이다. 식물의 경우 종자은행, 식물원, 수목원이 서식지 외 보전기관 구실을 한다. 동물 분야에서는 야생동물 사육, 증식, 관리 경험과 기법을 가진 동물원이 이러한 일을 하게 됐다. 이 같은 인식 전환에 따라, 20세기 후반 들어 세계의 권위 있는 동물원은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사명을 신속히 받아들이게 된다.

    구경거리로 삼으려고 동물을 잡아 가두는 것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많지만, 멸종위기에 처한 종을 보호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어느 정도 정당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 동물원은 오락과 구경 위주의 전통적인 동물원에서 벗어나,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을 보전하는 서식지 외 보전기관, 그리고 생태와 환경 교육기관으로 거듭나려고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하고 과학적인 동물관리 기법을 개발하게 된다.

    동물원 있는데 ‘동물원法’은 없다

    관람객과 동물이 바로 마주 보게 설계돼 있는 지방의 한 동물원. 이런 환경에서 동물들은 사람이 던져주는 음식물 때문에 질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위). 서울대공원에 있는 홍학들. 이 동물원에서 ‘홍학쇼’를 하는 홍학들은 비상 날개가 잘려 있어 날지 못한다.

    나라의 품격 높이는 길

    여기에는 물론 사육 동물의 육체·심리적 건강과 복지를 증진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포함됐다. 또한 종 보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고 증가시키기 위한 과학적 관리, 그리고 동물과 사람의 복지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 및 기술 개발이 이뤄지게 됐다.

    현대 동물원의 과학적 동물 관리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 ‘종수집계획’이다. 이는 동물원 동물의 관리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서로, 그 동물원이 보유하고 또 앞으로 보유하고자 하는 모든 동물의 상세한 목록을 말한다. 이 목록에 있는 모든 동물종과 개체에 대해 동물원은 이들을 보유하고자 하는 이유와 목적을 명시해야 하며, 그 동물을 제대로 돌보고 관리할 능력이 있다는 증거도 제시해야 한다.

    종수집계획의 목적은 동물원이 동물을 뚜렷한 이유나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모으고 전시하면서 부실하게 관리하는 일을 방지하는 것이다. 부실 관리는 동물뿐 아니라 이번 사고에서 보는 것처럼 사람의 안전도 위협한다.

    종수집계획에 근거해 동물원이 동물을 과학적으로 관리한다면 동물 복지와 안전은 물론, 사육사나 관람객의 안전사고 예방에도 큰 도움이 된다. 구경 위주의 동물원은 될수록 많은 종류의 동물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지만, 종 보전 센터로서의 동물원은 제한된 예산과 인력을 보전이 필요한 동물에 집중한다. 이렇게 종 보전 및 환경교육 센터로 철저히 변신한 동물원일수록 더 많은 관람객이 모인다는 사실을 구미 선진국은 보여준다. 시민의 윤리의식과 환경의식이 높아질수록 감옥 형태의 동물원에 아이를 데려가는 것을 점점 더 불편해하기 때문이다.

    동물원에서의 안전한 동물 관리와 동물 복지에 대한 시민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우리 정치권에서도 ‘동물원법’ 제정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향후 제정될 동물원법에는 대한민국에 동물원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먼저 명확히 규정해야 할 것이다. 동물원법에서 동물원 임무와 목적을 분명히 하고 과학적 관리 방안을 제시한다면, 사람과 동물의 안전을 위협하는 동물원이 아닌, 시민과 동물을 위한 진정한 동물원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는 나라의 품격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인도 마하트마 간디는 이렇게 말했다. “한 나라가 얼마나 위대한지, 도덕적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는 그 나라 동물이 어떻게 대우받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간디는 현재 대한민국의 도덕적 수준을 어느 정도라고 판단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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