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7

2013.12.16

부실자산 ‘눈덩이’ 소리 없는 비명

올 9월까지 39조 원 금융회사 건전성 약화…은행 7.2조 원 증가로 실적 미끄럼틀

  • 이한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hdlee@lgeri.com

    입력2013-12-16 09: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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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실자산 ‘눈덩이’ 소리 없는 비명

    서울 여의도 금융가.

    우리나라 금융회사의 건전성 약화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최근 금융회사의 부실자산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기가 부진하고 금리가 하락하면서 금융회사의 실적도 줄어들고 있다. 9월 말 기준 금융회사의 부실자산 규모는 2000년 이후 최대인 39조 원에 이른다. 규모도 규모지만 올해 들어 9개월 만에 6.8조 원이나 늘어나 증가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이와 같은 증가폭은 미국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로 경기가 위축되면서 부실자산이 크게 증가했던 2009~2011년 평균 증가액 5.2조 원보다도 많다(그래프1 참조).

    특히 은행 부실자산이 크게 늘었다. 올해 들어 9월까지 은행 부실자산은 7.2조 원 증가했다. 다른 금융회사의 부실자산은 감소한 반면 은행만 증가한 것이다. 은행의 전체 부실자산 26조 원 가운데 기업에서 발생한 것이 22조 원이며, 개인에서 발생한 것은 4조 원에 불과하다. 금융회사 가운데 상대적으로 우량자산에 대한 대출 비중이 높은 은행의 부실자산이 증가한다는 것은 기업 부실의 영향이 전체 금융산업으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업 규모별로 구분해보면, 아직까지는 중소기업에서 발생하는 부실채권이 많지만, 대기업에서 발생한 부실채권이 은행 부실자산의 빠른 증가 원인이 되고 있다. 9월까지 중소기업 부실채권은 지난해와 비슷한 10조 원 내외인 데다 규모가 감소하는 추세다. 반면 대기업에서 발생한 부실채권 규모는 1~3분기 기준으로 지난해 3.4조 원에서 올해 8.5조 원으로 2.5배 증가했다. 중소기업의 부실 정도는 낮아지는 반면, 대기업의 부실 수준은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중소기업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구조조정이 상당히 진행된 데 비해, 대기업은 부실에도 구조조정을 지연하다 최근 그 부실이 현실화되기 시작했음을 방증한다.

    기업과 가계의 부채상환 능력 추락

    은행 부실자산이 증가한 것은 기업이나 가계의 부채상환 능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경기가 호전되긴 하지만 회복세가 약한 수준에 그치면서 기업이나 가계 소득이 증가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기업 실적이 개선되지 못한 반면 차입금 조달은 계속 늘어나면서 기업들의 부채상환 능력도 약해졌다.



    상장기업의 영업활동 현금 유입과 원리금 상환액을 비교해보면 2005~2007년 원리금의 50% 정도였던 현금 유입 규모가 올해에는 20% 정도로 줄었다. 다시 말해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흐름으로 이자를 지급하되 원금은 상환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아직까지 대기업의 전반적인 부채상환 능력은 중소기업에 비해 양호한 수준이나 2010년 이후 중소기업에 비해 대기업의 부채상환 능력이 빠르게 약해졌다.

    상장기업 가운데 2013년 1~3분기 실적 기준 영업활동에서 벌어들인 현금흐름으로 이자와 원금을 지급하지 못한 한계기업의 차입금 비중은 34%였다. 차입금의 3분의 1 정도가 부실화 위험에 노출된 것이다. 2005년만 해도 한계기업의 차입금 비중은 13.3%에 불과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이들 기업의 차입금 규모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2005년 말과 올해 6월 말을 비교해보면 정상 기업의 평균 차입금은 2배 정도 증가한 데 반해, 한계기업은 5.4배나 증가했다(그래프2 참조).

    한계기업 차입금의 대형화는 대기업의 부실이 심해진 데서 기인한다. 한계기업에서 대기업의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상장기업 가운데 2013년 6월 말 한계기업 비중은 기업 수 기준 81.1%, 차입금 기준 99.1%에 달한다. 한계기업의 차입금은 대부분 대기업의 차입금이라는 뜻이다.

    기업뿐 아니라 개인의 부채상환 능력도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대출 증가에도 대출금리가 하락해 이자 부담은 줄었지만, 가계부채 규모가 증가함에 따라 원금상환 부담이 늘어나면서 가계 부문의 전체적인 원리금 상환 부담이 높아졌다.

    금융회사의 부실자산이 늘고 실적이 악화하면서 금융회사의 건전성이 약해졌다. 우리나라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2012년 말 14.3%에서 올해 9월 말 14.25%로 소폭 낮아졌다. 보험사의 지급여력비율도 315.6%에서 285.5%로 하락했다. 증권사의 영업용순자본비율은 498%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2013년 들어 은행과 보험사가 후순위채 발행 등을 통해 자기자본을 확충했음에도 건전성 지표가 하락한 이유는 기업부실 증가로 위험자산이 자기자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많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보통 건전성 지표를 기준으로 은행은 BIS 비율 8%, 보험은 지급여력비율 100%, 증권은 영업용순자본비율 150% 미만이면 건전성이 위험한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의 건전성 지표는 하락했지만 위험수준보다 훨씬 높은 수준을 유지해 기업부실에 따른 손실이 단기간에 위험수준에 이를 정도로 건전성이 약화될 개연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경기회복 속도가 빨라진다면 금융회사의 기초적인 경영 환경이 개선될 여지도 있다.

    부실자산 ‘눈덩이’ 소리 없는 비명
    그러나 기업이나 가계의 채무상환 능력이 개선되지 못하고 있고, 특히 부실위험이 높은 한계기업 가운데 차입금 규모가 큰 대기업의 비중이 높아진다는 점은 우려되는 부분이다. 규모가 큰 한계기업 상당수가 부실이 아직 현실화되지 않고 잠재돼 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부실위험이 높은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특정 기업 부실이 금융회사의 건전성 하락과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과거에 비해 커진다는 점도 염려스럽다.

    금융시장 불안 요인으로 확산 위험

    이러한 부실자산 증가 추세는 건전성 저하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켜 금융회사의 자금 공급을 위축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금융회사가 건전성 지표를 높이려고 대출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금융회사의 대출이 위축될 경우 이들 회사로부터의 단기 차입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이 자금을 조달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워질 테고, 그럼 금융비용 부담이 증가할 공산이 크다. 회사채 발행이 많은 대기업의 부실이 현실화하면 금융회사의 수익성과 건전성 하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금시장 불안으로 확산할 개연성이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현재는 기업의 신용위험에 대한 모니터링을 통해 부실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선별하고 부실 확산을 차단하는 선제적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부실위험이 높은 기업을 선별할 경우 선제적 구조조정이 가능해지고, 신용위험의 불확실성을 줄여 우량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이 원활해지며, 부실기업에 대한 자금공급이 억제되면서 추가 부실도 줄일 수 있다. 먼저 금융회사는 신용위험에 대한 평가 능력을 제고하고 위험관리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금융당국은 신용위험에 대한 정보가 자본시장 참여자에게 좀 더 정확하게, 제때 전달될 수 있도록 시스템과 제도를 갖춰나가는 작업에 나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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