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6

2013.12.09

지역색 양념 넣으니 프로그램 더 맛있다

‘한식대첩’

  • 윤희성 대중문화평론가 hisoong@naver.com

    입력2013-12-09 10: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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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색 양념 넣으니 프로그램 더 맛있다
    서울 이야기를 서울말로, 서울 사람 처지에서 전달하는 것을 대부분 방송은 표준으로 삼는다. 평균 근사치, 기준이 되는 지표를 일컫는 표준에 대한 강박이 서울이란 지역을 오히려 편애하게 만든 것이다. 지역색이 곧 반목과 대립의 동의어처럼 사용되는 사회 분위기 역시 표준 만능주의를 부추긴다.

    그러나 케이블채널 올리브TV의 요리 서바이벌 ‘한식대첩’은 지역색을 가능한 한 마음껏 드러내는 프로그램이다. 최근 영호남 대표선수의 결승을 통해 우승자를 배출한 이 프로그램에서 출연진들은 각자 자기 지역 이름을 걸고 전국 팔도를 대표해 요리 대결을 벌였다. 대외적 의의는 한식의 다양성을 발견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지만, 사실 방송이 주목한 것은 각 지역 대표가 보여준 지역색이다. 출연자들에게 요리 재료로 지역 특산물을 공수해오게 한 방식은 ‘한식대첩’의 이러한 지향을 여실히 드러냈다.

    흥미로운 점은 경쟁할수록 방송이 포착하는 지역색이 요리에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출연자끼리 서로를 평가한 내용을 섬세하게 반영한 이 프로그램의 태도는 출연자들의 지역색이 서로 충돌하고 대립하는 과정 자체를 주목하게 했다. 이들은 지역 말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면서 그동안 전형적인 것으로 여겨지던 지역색을 배반하거나 구체화해 각 지역 이미지를 새롭게 만들어 나갔다. 개인의 특성은 지역 특성 안에서 희석되고, 만드는 이의 성격과 만든 요리의 개성이 겹쳤다. 딱히 특색이 없다는 핸디캡을 극복하려고 다양한 정보와 세련된 요리 기술을 사용한 서울 대표가 얄미운 이미지를 얻게 된 것은 이 프로그램의 특징을 이해하게 하는 대목이다. ‘한식대첩’ 안에서 표준과 다른 것은 참신하고 도전적인 것을 의미했고, 이는 표준이 절대적이라고 여기는 시각의 한계를 선언하는 것이기도 했다.

    지역색 양념 넣으니 프로그램 더 맛있다
    결국 전국 팔도 맛을 일별하겠다는 제작진 의도는 전국의 온도와 색깔을 소개하는 결과로 이어졌으며, 경연이라는 평등한 세계 안에서 드물게 지역색을 차별이 아닌 차이로 이해하는 장면을 연출해냈다.

    최근 인기를 끄는 케이블채널 tvN의 드라마 ‘응답하라 1994’도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는 사투리의 매력은 물론 효용을 전면에 부각하며 말투와 지역색이 개인의 긍정적 개성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노점 장사꾼, 촌부, 조직폭력배 등을 묘사하는 데 동원되던 사투리를 신분이 아닌 출신 지역 특성을 반영하는 조건으로 새롭게 조명했다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소통을 위해 필요한 것은 표준의 방식이 아닌 표준의 상식이라는 진실을 드디어 방송이 마주하기 시작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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