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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 정치 망치는 ‘티파티’가 뭐기에

공화당 내 강경 보수세력 정계 골칫거리…셧 다운서 존재감 과시 강경 지속 선언

  • 정미경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 mickey@donga.com

미국 정치 망치는 ‘티파티’가 뭐기에

“분명히 말하겠다. 이번 ‘전쟁’에서 승자는 없다.”

미국 연방정부 잠정 폐쇄(셧 다운)와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 해결 합의안이 극적으로 의회를 통과한 다음 날인 10월 17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연방정부 잠정 폐쇄와 디폴트 사태에는 패자만 있을 뿐이며 경제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사실 오바마 대통령은 표정관리를 하느라 바빴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자신의 최대 업적인 건강보험개혁안(오바마케어)을 폐기해야 한다는 공화당의 맹공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승자와 패자의 이분법적 시각으로 보지 말자던 ‘뉴욕타임스’도 “오바마 대통령을 승자로 보는 데는 무리가 없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패자는 누구인가. 오바마 대통령과의 막후 협상에 실패한 존 베이너 공화당 하원의장 등 여러 후보가 있지만 최대 패자로는 공화당 내 강경 보수세력인 티파티(Tea Party)를 꼽는다. 오바마 행정부 1기에서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빌 데일리는 “티파티가 대통령을 살렸다. 티파티에 고맙다고 해야 할 판”이라고 털어놨다.

“티파티가 오바마를 살렸다”



연방정부 잠정 폐쇄와 디폴트를 볼모로 잡고 오바마케어를 없애야 한다며 비타협적인 태도로 일관한 티파티 덕에 시리아 정책 혼선으로 지지율이 떨어졌던 오바마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점수를 땄다. 티파티에 우호적인 폭스 뉴스는 “오바마 대통령은 ‘나는 티파티의 피해자’라는 딱한 이미지를 부각해 국민의 동정심을 사는 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티파티는 지금 미국 국민의 비난의 화살을 한 몸에 받는다. 미국 정치가 경제를 망치고, 그 정치를 망치는 주범이 티파티라는 불만이 쏟아지는 것이다.

국제 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17년 만에 벌어진 16일간의 연방정부 잠정 폐쇄로 미국은 240억 달러의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고 추산했다. 2011년 여름에도 미국은 이번처럼 디폴트 위기의 벼랑 끝에서 살아난 적이 있는데, 당시 미국인의 소비심리가 22%나 급락했다. S·P는 당시 미국 신용등급을 전격적으로 내렸고, 그 파장은 전 세계로 퍼졌다. 당시나 지금이나 백악관과 민주당, 그리고 공화당 간 정면 대치는 예산 및 재정 협상을 파국으로 치닫게 한다.

증세와 규제 반대, 작은 정부 지향

최근 ‘워싱턴포스트’와 ABC 조사에서 티파티에 대한 호감도는 29%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티파티에 반대한다는 응답은 59%에 달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티파티가 워싱턴 정가에서는 영향력이 있을지 몰라도 일반 국민으로부터는 점점 멀어진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티파티는 골칫거리가 돼버렸다.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 지도부가 셧 다운 협상을 거의 타결 짓고도 막판에 번복해 정면충돌로 치달은 것은 티파티 의원들이 협상안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 조사에 따르면 공화당원 3명 중 1명은 티파티를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은 “셧 다운 주도세력(티파티)은 제정신이 아닌 자들”이라고 비난했다. 협상 타결을 이끈 온건파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도 “오바마케어를 예산안과 연계하려는 티파티의 전략이 먹혀들지 않으리라는 점을 이미 경고했다”고 말했다.

티파티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티파티가 정치권 내 주요 세력으로 떠오른 것은 2009년이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보수혁명 때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티파티는 오바마 대통령 당선 후 조직화했다.

티파티는 1773년 영국 통치를 받던 시절 식민지에 대한 살인적 세율에 저항한 미국인들이 보스턴 항구에서 영국산 차(茶)를 던졌던 ‘보스턴 티파티’ 사건에서 이름을 따왔다. 티(TEA)가 ‘이미 세금을 충분히 냈다(Taxed Enough Already)’라는 문장의 약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티파티는 증세와 정부 규제에 반대하면서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 2010년 티파티 조직 647개를 심층 조사한 ‘워싱턴포스트’는 티파티가 중점을 두는 이슈로 재정적자 해결(24%), 작은 정부(20%), 헌법 수호(11%), 경제 및 실업(5%), 세금(4%), 자유로운 시장 접근(2%)을 꼽았다.

미국 정치 망치는 ‘티파티’가 뭐기에

2012년 2월 12일 열린 미국보수연합(ACU) 연례총회인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의 티파티 부스.

오바마 대통령과 티파티는 악연(惡緣)을 이어왔다. 티파티는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을 사사건건 물고 늘어졌다. 전임 조지 W 부시 행정부로부터 금융위기를 물려받은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후 월가와 제너럴모터스 등 자동차업계에 대한 대규모 구제금융을 단행했다. 저소득층 의료혜택을 정부가 지원하고 의료체계를 개선하는 오바마케어도 추진했다. 오바마케어는 1965년 공공의료보험인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도입 후 미국 의료 시스템에 가장 큰 변화를 몰고 올 개혁안으로 평가받는다. 오바마 행정부 정책은 대부분 세금 인상과 정부 기능 확대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티파티와의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티파티는 조직을 이끌어나가는 중앙조직이나 지도부가 없다. 지역별로 작은 조직 형태로 움직인다. 자체 정당을 조직하려는 움직임도 없다. 초기에는 주로 시위를 통해 세력을 과시했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에서 대규모 구제금융 반대 시위를 벌여 주목을 받았다. 그러다가 차츰 선거에서 특정 후보 당선을 지원하고 의원을 설득해 정책 입안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운동 방향을 전환했다. 2010년 중간선거에서 티파티가 지원한 공화당 후보가 3명 중 1명꼴로 당선하면서 티파티의 영향력은 절정에 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셧 다운 사태 당시 티파티를 가리켜 “공화당 내 아주 작은 극단주의 세력”이라고 폄하했다. 사실 티파티 성향의 의원은 의회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지 못한다. 티파티 의원은 연방하원 435명 중 최대 80명 정도로 추산된다. 공화당 하원의원(231명) 중에서도 30%에 불과한 비주류다.

지역별로 작은 조직 형태로 움직여

그럼에도 티파티 의원들의 목소리가 큰 이유는 이들 대부분이 공화당 텃밭 선거구 출신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비록 여론이 비우호적이라 해도 자기 지역구에서만큼은 재선 걱정을 안 해도 되기 때문에 자기주장을 강하게 밀고 나갈 수 있다.

또 현재 의회 구조에서 티파티 입김이 상대적으로 작은 상원에서는 민주당이 다수이긴 하지만, 안정적 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이 주도적 구실을 하는 것도 티파티가 위세를 떨치는 이유다.

셧 다운 사태 후 따가운 눈총을 받는 티파티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속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겉으로는 당당하다. 오히려 공세를 늦추지 않는다. 티파티 웹사이트인 티파티닷넷(TeaParty.net)은 합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공화당 상원의원 27명, 하원의원 87명의 명단을 올리고 ‘이름뿐인 공화당원(RINO)’이라고 낙인찍으며 다음 선거에서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공언했다.

티파티는 이번 셧 다운이 오바마케어에 대한 반대 불씨를 되살리고 공화당의 가치와 존재감을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알린 기회였다고 자평한다. 어찌 보면 티파티는 비록 과격한 방식이긴 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자신들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고 볼 수 있다. 티파티를 무시하고는 미국 정치 어젠다를 설정할 수 없다는 점을 입증한 셈이다.

티파티는 벌써부터 “이번 싸움은 1차전에 불과했다”며 “임시 예산안과 부채한도 증액 상한이 만료되는 내년 1~2월경 다시 전투를 개시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티파티의 전투와 이로 인한 정치권 혼란은 오바마 행정부가 끝나는 날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티파티의 스타들

테드 크루즈·마르코 루비오 등 단번에 부상


연방정부 잠정 폐쇄(셧 다운) 사태에서 최고 화제 인물은 단연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이다. 그는 9월 26일 상원 본회의장에서 건강보험개혁안(오바마케어) 저지를 위해 21시간 동안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연설을 했을 때부터 비상한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 연설로 단번에 티파티 ‘영웅’으로 떠올랐다.

크루즈 의원은 보수 성향이 강한 텍사스에서 티파티의 지지를 받아 지난해 말 상원의원 선거에서 당선됐다. 10개월 경력의 초선의원임에도 하원 공화당을 막후 조종해가며 오바마케어 폐지를 예산안 통과 조건으로 내거는 노련한 정치 기술을 발휘했다. 합의안에서 오바마케어가 폐기되지 않아 결과적으로 얻은 것은 없지만, 그동안 쌓아올린 여론 독점 효과를 통해 공화당 차기 대통령선거(대선) 주자 자리를 확실히 예약했다.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티파티 당원 사이에서 크루즈 의원 지지율은 7월 47%에서 10월 74%로 치솟았다. 그는 합의안 통과 후에도 “오바마케어 폐지 운동을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중도파 사이에서도 그에 대한 비난이 끊이지 않는다. 상원의원 출마 당시 그를 지지했던 지역신문 ‘휴스턴 크로니클’은 “크루즈 의원 같은 사람 때문에 정치권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며 강력하게 비난했다.

마르코 루비오, 랜드 폴 상원의원도 티파티로부터 강력한 후원을 받는다. 크루즈 의원과 마찬가지로 쿠바 난민 가족 출신인 루비오 의원은 셧 다운 협상 기간에는 상대적으로 앞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협상 타결 후에는 오바마케어 가입 웹사이트(heathcare.gov)의 부실을 문제 삼으며 오바마케어 연기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폴 의원은 필리버스터 연설에서 크루즈 의원의 선배 격이라 할 수 있다. 그는 3월 미국의 드론(무인비행기) 정책에 반대하는 연설을 13시간 동안 진행했다. 루비오 의원과 마찬가지로 오바마케어에 강하게 반대하지만 셧 다운 협상 과정에서는 뒤로 물러나 공화당 온건파와 티파티 사이에서 균형적 태도를 유지했다.

타피티의 지원을 받는 여성 정치인으로는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와 미셸 바크먼 하원의원이 대표적이다. 페일린 전 주지사는 크루즈 의원과 함께 워싱턴에서 열린 셧 다운 반대 집회에 등장해 오바마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2008년 공화당 대선 부통령 후보로 나섰다가 낙선한 후 TV 해설가로 활동하는 그는 티파티 지지자 사이에서 대중적 인기는 가장 높지만 ‘알맹이가 부족하다’는 평을 듣는다.

바크먼 의원은 2012년 공화당 대선 경선 출마 때부터 오바마케어 폐지를 최대 공약으로 내걸었다. 2010년 하원 공화당 티파티 의원들의 모임인 티파티 코커스를 결성해 회장으로 활동했다. “오바마 행정부에 무슬림형제단 세력이 침투해 있다”는 등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던 그는 셧 다운 협상 당시 하원 공화당 내에서 티파티의 주장을 가장 잘 대변했다는 평을 들었다.




주간동아 2013.10.28 910호 (p50~52)

정미경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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