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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美 국무부 대표단, 9월 비밀 방북”

복수의 외교 소식통 “6자회담 재개 비공개 협상…대니얼 러셀 차관보 동행 여부 주목”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美 국무부 대표단, 9월 비밀 방북”

“美 국무부 대표단, 9월 비밀 방북”

9월 18일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오른쪽)이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열린 ‘6자회담 1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미 국무부 당국자들이 9월 중순 북한 평양을 비밀리에 방문해 6자회담 재개와 관련한 비공개 협상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복수의 외교 소식통이 전했다. “9월 12일을 전후해 괌 공군기지에서 출발한 미군 특별기가 북한 영공으로 진입했다가 이튿날 빠져 나온 정황이 (우리 측 방공통제소 레이더를 통해) 확인됐다”는 게 그 골자다. 9월 하순부터 전 세계 곳곳에서 진행된 북·미 간 반관반민(半官半民) 형태의 6자회담 재개 논의와 같은 시기에 쏟아진 양측 고위 당국자들의 ‘주목할 만한 발언’이 모두 이 테이블의 논의를 기반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양측 고위 당국자 ‘주목할 만한 발언’

오바마 행정부는 2012년 4월과 8월에도 유사한 형식의 대북 비밀접촉을 진행한 바 있다. 미국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뤄진 두 차례의 방북은 동맹국은 물론 자국 정부 안에서도 철저히 보안으로 유지됐다. 한국에서는 극소수 청와대 관계자만이 사전에 통보받았고, 일본은 아예 특별기의 북한 영공 진입이 임박한 시점에야 통보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북한 영공으로 진입하는 특별기의 정체를 두고 한국과 일본 실무부처가 한 차례 소동을 빚은 바 있다.

2012년 방북 접촉이 백악관과 정보기관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것에 비해, 이번 방북은 국무부가 주축이 된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정부 안팎의 정설. 지난해 특별기에 탑승했던 미 중앙정보국(CIA) 출신의 시드니 사일러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북한 담당관과 조지프 디트라니 전 국가정보국(DNI) 국가비확산센터소장은 이번에는 동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 대신 소식통들은 이번 방북의 기획 주체로 대니얼 러셀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를 지목한다. 8월 임명된 러셀 차관보는 지난해 8월 방북 때도 백악관 NSC 동아시아담당 보좌관 자격으로 동행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미 정부는 사실 확인을 거부했다.



러셀 차관보 본인이 이번에도 평양행 특별기에 몸을 실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지만, 같은 시기 그는 취임 인사 차원에서 한중일 3국을 연쇄 방문한 적이 있다. 미국 대표단의 방북 목적 가운데 하나는 8월 말 공식 평양 방문을 추진하다 마지막 단계에서 무산된 로버트 킹 국무부 북한인권 특사를 대신해 북한에 억류 중인 케네스 배(한국명 배준호) 씨의 석방문제 논의도 포함됐으리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CIA를 중심으로 하는 정보부서와 국무부를 중심으로 하는 정책부서 사이 업무 구분이 명확한 미 행정부 조직특성을 감안하면, 2012년 접촉은 북핵 문제 논의를 위한 협상 테이블이라기보다 상황 판단이나 정보 수집을 위한 활동에 가까웠겠지만, 이번 방북은 말 그대로 6자회담 등의 정책현안이 이슈였을 개연성이 크다.

9월 비공개 방북 소식이 흥미로운 이유는 방북 직후 평양과 워싱턴이 세계 곳곳에서 열린 반관반민 형태의 테이블을 통해 상당한 수준의 의견교환을 진행했기 때문. 9월 18일 중국 베이징에서 한국, 북한, 중국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6자회담 10주년 기념 세미나, 9월 25일 독일 베를린과 10월 2일 영국 런던에서 잇달아 열린 북·미 양국 전·현직 당국자들의 비공개 세미나 등이 대표적이다. 스티븐 보스워스 전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조엘 위트 전 국무부 북한담당관, 디트라니 전 소장 등 한반도 문제를 담당했던 ‘거물’이 총출동한 자리였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10월 3일 일본 도쿄에서 존 케리 국무부 장관이 미·일 안보협의회 직후 밝힌 이른바 ‘불가침조약’ 발언. 이날 케리 장관은 “북한이 비핵화를 결심하고 이를 위해 올바른 협상에 임한다면 대화에 다시 나설 준비가 돼 있다”며 “불가침조약을 맺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을 무력으로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그간 미국 측 공식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들어 해프닝으로 치부하기도 했지만, 미국과 일본의 국방·외교 수장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나온 발언인 만큼 ‘구체적인 의도’가 담긴 발언이라는 게 정부 주변의 대체적인 시각이었다.

“美 국무부 대표단, 9월 비밀 방북”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왼쪽)와 10월 5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 참석한 존 케리 미국 국무부 장관.

이와 함께 9월 25일 베를린 세미나에서 이용호 북한 외무성 부상이 밝혔다는 내용도 주목을 받았다. “6자회담이 재개되면 신뢰 구축조치 차원에서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실험의 동결(모라토리엄)에 응할 용의가 있다”는 발언이 그것. 그간 미국 측이 제기해온 ‘2·29+알파(α)’ 조건에는 미치지 못해도 최근까지 북측이 취해온 태도보다는 한 걸음 진전된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말이었다. 당초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던 이 발언은 세미나에 참석한 전직 국무부 고위관계자를 통해 백악관과 국무부에 보고된 후 외신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후속 논의 과정서 성과 없이 끝난 듯

외교 소식통들은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진행된 이러한 ‘주고받기’의 기본 틀이 9월 비공개 방북 접촉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한다. 비공개 논의가 일종의 기조발제였던 셈. 이후 진행된 반관반민 테이블과 ‘뉴욕 채널’을 통해 6자회담 재개 조건과 최종 목표에 대한 디테일을 다듬는 작업을 진행했고, 그 골자가 케리 장관과 이용호 부상의 메시지로 공개된 셈이다. 6자회담 재개를 계기로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는 대신 미국 측은 북·미 불가침조약으로 상징되는 문서화된 안전보장을 최종목표로 논의하는 것을 수용하는 그림이다.

그러나 숨가쁘게 진행되던 북·미 간 움직임은 10월 중순 들어 돌연 난기류를 만난다. 10월 12일 북한 국방위원회는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미국이 진정으로 조·미 관계 개선에 관심이 있다면 대조선 적대시정책부터 철회하여야 할 것이다’라는 제목의 대변인 성명을 발표하고 “우리가 핵무기를 내놓으면 대화도 있고 관계 개선도 있으며 불가침도 있다는 감언이설로 감히 그 누구를 흔들어보려고 꾀한 것”이라면서 불가침조약 체결에 대해 공식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억류 중인 배씨가 북한을 방문한 어머니 배명희 씨를 평양에서 만난 시점에 나온 성명이었다.

이렇게 보면 9월 중순 방북으로 막이 오른 워싱턴과 평양의 막후접촉은 후속 논의 과정에서 뒤틀렸고 결국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막을 내린 셈이다. 이 과정에서 북·미 양측은 상대에게 의지가 없다며 비난에 나섰고, 함께 불거진 이란과 시리아 문제 등으로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정책 우선순위에서 북핵 문제가 후순위로 밀려났다는 게 워싱턴 인사들의 대체적인 설명이다. 러셀 차관보 임명과 함께 기획됐던 ‘반짝 행보’가 저변에 깔린 ‘협상무용론’에 밀렸다는 촌평. 평양 역시 이러한 상황에서는 ‘성의 있는 조치’를 요구하는 워싱턴의 태도를 당분간 꺾을 방법이 없다고 잠정 결론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한 가지 남은 문제는 이러한 논의가 물밑에서 진행됐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처지에서 썩 반가운 일일 수 없다는 점이다. 그간 오바마 행정부는 북핵 문제 논의의 주도권은 한국에 있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으나 9월 중순부터 10월 초까지 관련 논의에서 한국 측 목소리가 반영될 여지는 극히 적었기 때문. 워싱턴은 베이징 6자회담 10주년 기념 세미나에 현직 정부당국자는 참석시키지 않았고 한국 또한 이러한 기조에 따라 민간학자만 참석했지만, 실제로는 북·미 당국 간 비공개 논의를 진행했다는 대목이 특히 그렇다. 대외적으로는 원칙론을 내세우지만 물밑에서는 다른 움직임을 이어나가는 미국 측 행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모호한 타협’ 한국에만 불리한 결과

2004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던 케리 장관은 6자회담 재개에 싸늘한 워싱턴 분위기 속에서도 협상파로 잘 알려진 인물. 정치인이라는 출신성분에 걸맞게 ‘역사적 업적’에 대한 갈증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더욱이 그가 말한 ‘불가침조약’ 문제가 북·미 논의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거론됐다면 이야기는 한층 복잡해진다. 비핵화 전제조건으로 평화협정 체결을 줄기차게 요구해온 북한은 2003년 6자회담 1차 회의에서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을 공식 제기했고, 당시 미국은 “전례가 없다”며 논의 자체를 거부한 바 있다. 이번에 나온 언급은 워싱턴이 원래 방침을 뒤집어가며 성의 있게 내놓은 ‘새로운 당근’이라는 뜻이다. 한 학계 전문가는 “명문화된 형태의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려면 먼저 외교관계 정상화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북한 체제 인정과 북·미 수교 등 여러 ‘외교적 보상책’이 패키지로 담겨 있는 표현”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정교하게 기획된 발언’이라는 것이다.

일부 정부 당국자들은 이러한 그림이 자칫 ‘북한의 현존 핵 능력을 암묵적으로 인정해준 상태에서 북·미 관계 정상화가 진행되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불가침조약이 북한의 남침 같은 유사시 상황에서 미국의 개입을 불편하게 만들도록 악용될 소지가 있는 데다 최소한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상충점은 없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시각이다. 이러한 논쟁은 1994년 제네바 합의 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클린턴 행정부와 김영삼 정부 사이 외교 이슈로 불거진 적이 있다.

근본적으로는 이렇듯 ‘모호한 타협’이 한국에만 불리한 결과를 낳는다는 견해도 확인할 수 있다. 우라늄 폭탄 실험 등 북한의 핵 능력 확장과 제3국으로의 기술 확산, 일본과 대만 등의 핵개발 도미노 현상을 우려하는 미국으로서는 이러한 미봉책이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현재 북한이 보유 중인 것으로 알려진 핵무기 5~10기로도 엄청난 위협을 느끼는 한국은 이야기가 다르다는 것. 이러한 분위기가 자칫 평양에게 ‘핵을 쥐고도 북·미 관계 정상화를 얻을 수 있다’는 시그널로 비칠 수 있다는 점도 염려스러운 대목이다.

9월 말부터 2주간 워싱턴에 머물며 미국 측 당국자들을 접촉한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최근 미국의 북한 전문 뉴스사이트 ‘NK뉴스’ 기고를 통해 “(북한의 현존 핵무기를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식의) 불완전한 협상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건 워싱턴도 잘 알고 있으나 지금처럼 무시정책으로 일관할 경우 장기적으로 상황이 훨씬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점점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중간급 당국자들과 전문가 그룹 사이에 이러한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 9월 중순부터 한 달 가까이 평양과 워싱턴의 물밑 행보는 이렇듯 풍향이 서서히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그 한 달 동안 서울은 어떠한 전략적 해법도 제시하지 못했다.



주간동아 2013.10.28 910호 (p42~44)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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