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0

2013.10.28

전력 공급에 묻힌 에너지 백년대계

원전 수명 연장, 노후 원전 폐기 등 현안 산적…국가 미래정책 차원서 다뤄야

  • 권원순 한국외대 경제학부 교수 kwon@hufs.ac.kr

    입력2013-10-28 09: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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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력 공급에 묻힌 에너지 백년대계

    신고리 1, 2호기 원자력발전소의 모습.

    최근 발표된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2013∼2035) 권고안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20년 기준으로 5년마다 수립 및 시행하는 국가에너지계획의 최상위 계획이다. 이 계획을 위해 에너지 관련 민간 전문가와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경제연구원 관계자 등 60여 명이 민관합동 워킹그룹을 만들었다. 이 워킹그룹은 권고안을 마련해 수요 관리 중심의 정책 전환, 분산형 발전 시스템 구축, 환경·안전 등 지속가능성 제고, 에너지 안보 강화, 국민과 함께하는 정책 추진 등 5개 중점 과제를 담은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에 대한 정책제안’을 확정, 발표했다.

    권고안이라 부르는 이 정책제안은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의 밑그림으로, 정부는 워킹그룹 제안을 바탕으로 공청회와 경제단체, 시민단체의 의견 수렴 등의 절차를 거쳐 초안을 마련한 뒤 올 연말까지 에너지위원회와 녹색성장위원회, 국무회의를 거쳐 기본계획을 최종 확정하게 된다.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올해부터 2035년까지의 에너지 수급과 정책의 기본 방향을 정하는 것으로, TOE(석유환산톤) 단위로 원자력발전소(원전)를 비롯해 석탄화력, LNG(액화천연가스) 발전, 신재생에너지 등 에너지원별 비중을 중·장기적으로 어떻게 가져가고, 에너지 수요 전망에 따른 향후 에너지정책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를 정하는 중요한 에너지기본계획이다.

    이번 정책제안은 원전 비중이 2008년 발표한 제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비해 크게 줄어든 점이 핵심으로 지적된다. 워킹그룹은 2035년까지 원전 비중을 설비용량 기준으로 현재의 26%와 비슷한 수준인 22~29%로 결정할 것을 제안했다. 이는 제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서의 비중인 41%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어든 수치다. 원전 비중 축소에 따라 LNG 발전, 석탄화력 비중은 늘어나게 됐다.

    “전기요금 인상 불가피” 지적



    원전 비중 축소를 두고 논란이 뜨겁지만, 주목해야 할 점은 다른 데 있다. 민관 워킹그룹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잠정안인 에너지 수요 전망치를 보면, 전력수요가 현재(2011년 기준) 3910만TOE에서 2035년 7020만TOE로 80% 증가할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전체 에너지원 가운데 전력 비중이 19%에서 28.1%로 증가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특히 국내총생산(GDP) 성장 둔화로 전체 에너지 소비 연평균 증가율이 제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 때 전망한 1.4% 대비 0.8%로 낮아졌음에도 전력소비는 연평균 2.2%에서 2.5%로 증가하는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 권고안을 두고 원전 비중 축소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이 지적된다. 하지만 권고안에 따른 수요 전망을 바탕으로 원전 설비 비중을 따져보면, 최대 29%라 가정할 때 전력 수요 감축목표치인 15%를 모두 줄이더라도 원전 41기를 가동해야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원전 23기에서 18기를 추가로 건설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원전 비중 최저인 22%를 가정한다면 지금보다 12기 정도가 더 있어야 한다.

    즉, 원전 비중을 제1차 계획인 41%에서 22~29%로 낮춘다고 해도 원전 12~18기를 추가로 건설해야 한다는 의미다. 현재 상황은 2030년까지 설계수명이 다하는 원전이 12기이고, 건설 중인 원전이 5기이며, 설계 등의 단계로 향후 건설이 계획된 원전이 6기이다. 원전의 수명 연장 등을 고려할 경우 건설해야 할 원전 수는 조정될 여지가 있다.

    따라서 원전 비중 축소와 관련한 의미 없는 논쟁보다 현실적 대안에 대해 차분히 고민해야 할 때이다. 그러나 현실은 원전을 둘러싸고 ‘원전르네상스 포기’ ‘원전 축소에 따른 에너지 안보 문제’ ‘산업경쟁력 약화’ 등 소모적 논쟁을 거듭하는 실정이다.

    현재 월성 1호기, 고리 1호기 등 설계수명이 다한 원전이 하나 둘씩 나오는 현실에서 수명 연장과 노후 원전 폐기 등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 또한 이에 대한 정부의 로드맵과 재원 마련 방안도 없는 상황이다. 원전 호기당 해체 추산 비용은 6033억 원(2012년 말 기준)으로, 올해 6월 말 기준 해체충당금 적립누계액은 9조6759억 원에 달한다. 하지만 이 금액은 부채충당적립으로, 장부상 금액일 뿐 사용 가능한 금액은 0원이라는 주장도 있다.

    전력 공급에 묻힌 에너지 백년대계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따르면 LNG 발전이 대폭 늘어나게 된다. 10월 2일 GS EPS의 ‘LNG 복합화력발전소 3호기’ 준공식.

    10월 16일 현재 국내 원전 23기 가운데 6기가 멈춰 있다. 정지한 원전의 설비용량은 557만9000㎾로 국내 원전 총설비용량의 27%이며, 석탄화력과 LNG 발전 등을 합친 우리나라 전체 발전 설비용량(8633만3000㎾)의 6.5%를 차지한다. 정기 정비를 위한 정지는 2기이고 나머지 3기는 고장에 의한 정지이다. 설계 수명 30년을 채운 1기는 지난해 11월 20일 운영 허가가 만료돼 현재 수명 연장 가동 여부를 심사 중이다.

    이처럼 산적한 문제를 미뤄놓고 원전 비중을 늘려야 하는지, 줄여야 하는지에 대한 찬반 논란만 계속되는 것은 몇 가지 원인에서 기인한다. 먼저 원전이 산업으로 자리 잡은 나라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즉, 원전산업계가 산업의 이해관계를 적극 표출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산업계 이해관계까지 반영

    또 다른 이유는 원전 비중 축소에 따른 반사 이익을 얻는 5개 발전사를 비롯한 민간발전사의 이해관계가 첨예하다는 점이다. LNG 발전을 주도하는 SK E·S, 포스코에너지, GS EPS, GS 파워(Power) 등 민간사업자와 이에 대한 투자 기대감으로 금융권이 벌써부터 들썩인다.

    여기에 전기요금을 둘러싼 산업계의 이해관계까지 반영돼 더 복잡해졌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전기를 많이 쓰는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제지 업종 등에서 전기요금을 둘러싼 이해관계는 생존 문제와 직결된다. 2012년 8월 한국기간산업협의회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주요 기초소재의 제조원가(원재료가 제외) 대비 생산 업종별 전기요금 비율은 철강 25%, 시멘트 22%, 제지 16.2%, 섬유 15.5%, 석유화학 11%인 것으로 나타났다.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둘러싼 이러한 문제뿐 아니라, 근간을 이루는 전력 수급계획 및 천연가스 수급계획 같은 하위 계획과의 부조화도 문제다. 기본계획은 권고안이라곤 하지만, 에너지 다소비 업종의 증가로 전력 소비 증가도 가속화하리라는 전망 하에서 작성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같은 전망 자체는 공급 위주의 전력정책을 전제로 해 우려된다.

    한편 산업구조가 급변하면서 전력 수요 예측을 잘못해 전력 공급 초과에 의한 수급 불균형 문제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석탄 및 LNG 비중을 높이면 온실가스 감축목표 등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전력 과소비를 막기 위한 에너지 세제개편으로 에너지원별 수요 변화도 예상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 단지 전력 문제에만 국한돼 평가받는 실정이 안타깝다. 이 기본계획에 기본적으로 반영해야 할 에너지 수급과 환경·안전 등 지속가능성, 에너지 안보 등 좀 더 기본적이고 국가 백년대계와 직결된 이슈들이 원전 비중 문제에 가려 있지는 않은지 차분히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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