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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형 연재소설 | 마지막 회

아홉 마디 @오메가

17화 재회

아홉 마디 @오메가

하늘을 날던 비행기가 구름 속을 파고들었다. 기체가 흔들리자 좌석 벨트를 매라는 불빛과 함께 기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승무원들도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기내엔 비행기 엔진 소음 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필승은 휴대전화를 열어 그 문자메시지를 꾹 눌렀다. 비닐봉투에 싼 하얀 종이에 쓴 설순의 편지가 눈에 들어왔다.

‘강을 건너기로 했습네다. 발각되면 강물에 몸을 던질 겁네다. 운명이 허락해주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사랑합네다.’

납치부터 한국행 비행기 탑승까지 하루 사이에 일어난 일이 꿈만 같았다. 공항에서 비행기 표를 건네받은 후 보라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순에 관한 내용이었다. 필승은 떨리는 손으로 보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순이 서울에 있다고?”

필승은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여옥에게서도 문자메시지가 왔다. 순과 찍은 사진이 첨부돼 있었다. 필승은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비행기는 구름 사이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멀리 파란 하늘이 보였다. 납치부터 구출되기까지 상황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필승은 두만강 카페에서 끌려나와 자동차에 처박혔다. 두 사내의 완력을 당할 수 없었다. 그들은 필승을 뒷좌석 가운데에 앉힌 후 천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어 자동차 엑셀 밟는 소리가 굉음처럼 들렸다.

“누구시죠?”

두 사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필승은 저항을 멈췄다. 차 안이 조용해지자 운전자는 조수석에 앉은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도백하(二道白河)로 가자우.”

“모시겠습네다.”

이도백하, 천지에 관광객이 몰리면서 번창한 동네다. 백두산 쪽으로 가는 게 분명했다. 북한말을 하는 것으로 봐서 중국 쪽 공안은 아니었다. 필승은 차라리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

하나는 운동 채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듣고 있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내뱉듯 한마디 던졌다.

“네? 납치요? 장백산 방향이라고요?”

하나는 새벽시장의 떡집을 떠올렸다. 떡집 아줌마, 젊은 점원, 반바지의 중년 남자. 운전하면서 이도백하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백산의 요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른 새벽에 어쩐 일이야?”

“이도백하에 있는 저쪽 은신처에 대기 부탁해.”

하나는 상황을 설명하고 전화를 끊었다. 정확한 지점은 모르지만 북한 식당 인근 지점까지만 파악돼 있었다. 하나는 다시 연길과 용정의 요원들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촬영해뒀던 반바지 차림의 중년 남자, 떡집 아줌마, 그리고 젊은 점원의 사진도 전송했다.

경찰관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린 시간은 새벽 다섯 시쯤이었다. 도문의 정보원으로부터 온 필승의 납치 소식이었다. 그는 즉시 번돌이라는 이름의 사이버 경찰관에게 연락을 취했다. 번돌에게서 연락을 받은 철방은 그의 사무실을 센터로 삼기로 했다.

번돌은 경찰관으로부터 받아든 하나의 전화번호를 컴퓨터에 입력했다. 철방은 수일과 함께 친분이 있는 해외 해커들의 지원을 받아 하나의 위치를 지도 위에 올려놓았다. 모니터에 하나의 위치가 떴다.

하나는 도문의 새벽시장을 빠른 걸음걸이로 훑고 있었다. 그 떡집은 원래 자리에 없었다. 하나는 시장을 빠져나가 필승이 머물던 호텔로 향했다. 프런트 데스크에서 열쇠를 받아들고 방에서 짐을 챙겨 트렁크에 실었다. 모니터로 하나의 위치를 주시하던 철방은 경찰관에게 시선을 돌렸다.

“필승과 전화통화를 하는 사람이 있어야 위치 파악이 가능해요. 도문의 하나란 분이 필승에게 전화를 걸어주면 좋겠는데….”

번돌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호텔에 주차해 있던 하나의 자동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하나가 누르는 전화번호가 철방과 번돌의 모니터에 찍혔다. 철방이 원하던 대로 필승의 번호였다.

신호음이 울리자 필승의 오른쪽 사내가 필승의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는 조수석 남자에게 건넸다. 그 남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참을 울리던 신호음이 뚝 하고 끊어져버렸다. 다시 시간이 흘렀다. 모니터를 바라보던 번돌이 조용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쉿!”

모니터에 떠 있는 필승의 휴대전화가 다시 깜박거렸다. 누군가 그에게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필승의 오른쪽 남자가 다시 전화를 받아 앞좌석 남자에게 건넸다. 남자는 전화를 받아들었다. 번돌의 모니터에 필승의 위치정보가 떴다. 통화 음성도 생생하게 들렸다.

“아, 백 선생이오?”

“비싼 물건이오. 쓰임새가 많은 놈이란 말이오.”

“수고했소. 곧 알려주갔소.”

“그 물건 좀 바꿔주시오. 협조를 잘할 수 있도록 안심시켜야 하잖소.”

그는 필승의 손에 휴대전화를 쥐어주었다.

“받아보라우.”

“여보세요.”

“아, 필승 씨, 안심하세요. 사람을 찾는다고 하지 않았소? 그 사람들에게 알려주면 잘 안내할 게요.”

번돌의 모니터에는 필승에게 전화를 건 상대의 전화번호가 떴다. 경찰관은 전화번호로 신원을 확인하고는 여옥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 친구 제대로 만났네요.”

“무슨 말씀인지….”

“연변에서 활동하는 북송 브로커예요.”

경찰관은 휴대전화번호를 적어 철방에게 내밀었다. 철방이 컴퓨터에 전화번호를 입력한 후 연결하자 사방에서 자동차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하나는 연길, 다른 하나는 용정, 또 다른 하나는 백산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경찰관은 전화로 하나에게 필승이 탄 자동차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다른 요원들에게도 필승이 탄 자동차를 향해 압박해 들어가도록 조치를 취한 후 모니터를 주시했다. 경찰관은 그들에게 수시로 납치 차량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도백하에 진입하기 전 사거리에서 납치 차량을 포위한 후 필승만 끌고 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몇 시간을 달렸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필승의 왼쪽 어깨에 햇살이 따갑게 느껴질 즈음이었다. 자동차가 서행한다 싶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들이닥치고 순식간에 납치범들을 제압했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음성이 들렸다.

“괜찮으세요? 필승 씨가 만날 사람은 서울에 있대요.”

아홉 마디 @오메가

일러스트레이션·오동진

전광판으로 확인해보니 연길에서 오는 비행기 도착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다. 보라는 고개를 돌려 순을 쳐다보았다. 순은 눈가에 번진 눈물자국을 손끝으로 찍어내고 있었다.

“고맙습네다.”

“오해하셨던 거예요. 필승이와 전 그냥 친구예요.”

순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보라와 필승이 함께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순이 도망치듯 날아간 곳은 제주시 바오젠 거리였다. 경찰관의 지원도 있었다. 바오젠 거리는 제주의 차이나타운이다. 순은 중국말이 유창해 양꼬치집 점원으로 취직을 했다.

보라는 비행기에서 내려 아침 일찍 그 집 문을 열었다. 손님들의 시선이 보라에게 쏠렸다. 순이 다가와 보라 앞에 섰다. 빤히 쳐다보다가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보라가 테이블로 향하자, 순은 “양꼬치 하시겠어요”라면서 간신히 한 마디 건넸다.

“오늘 아침 혼쭐이 빠지는 줄 알았습네다.”

“그러셨겠죠. 전 설순 씨가 도망이라도 가버리면 어쩌나 하고 조마조마했어요.”

“비행기가 도착했나 봅네다.”

잠시 후 출구를 향해 걸어오는 사람들 사이로 필승의 모습이 보였다. 순은 목을 길게 빼고 필승을 쳐다보았다. 그를 놓칠 새라 눈도 깜박이지 않았다. 보라가 순 대신 필승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필승이 순에게로 달려왔다.



주간동아 2013.10.07 907호 (p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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