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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선진화법 족쇄에 속 타는 여당

박근혜 정부 1년 차 뒷받침할 현안 처리 산적…야당 협조 없인 입법 어려워 고민

  • 배수강 기자 bsk@doga.com

선진화법 족쇄에 속 타는 여당

선진화법 족쇄에 속 타는 여당

9월 25일 정기국회 의사일정 협의를 위해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만난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오른쪽)와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

10월 정기국회가 시작되면서 여야 공방의 불꽃이 국회로 옮겨 붙었다. 1일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부터 여야는 기초연금 공약 수정과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퇴 논란을 놓고 한 치 양보도 없는 공방을 벌였다. 여당은 채 전 총장 사퇴를 두고 ‘개인의 도덕성 문제’라고 규정했고, 야당은 ‘청와대의 찍어내기’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사퇴로 이어진 기초연금 공약 수정과 관련해선 야당은 ‘대선(대통령선거) 공약 파기’라고, 여당은 ‘국가재정을 감안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맞불을 놓았다. 사실 10월 국회에서 여야의 불꽃 대결은 이미 예견된 터였다.

청와대와 여당은 10월 국회에서 그간 늦춰진 경제활성화 입법에 박차를 가하고 기초연금 수정안도 확정 짓는다는 구상이지만, 야당은 “야당의 협조 없이 (국회 운영이) 어렵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겠다”(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고 공언한 상황. 전 원내대표의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이유는 바로 국회선진화법 때문이다.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한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의 효율적 운영과 합의형 의사 진행을 촉진하려고 새누리당이 발의해 여야가 합의했다. 국회 상임위원회(상임위)에서 이견 조정을 위한 안건조정위원회 의결 요건을 상임위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으로 규정하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쟁점 법안의 경우 재적의원 5분의 3(180명) 이상 동의를 얻어야만 본회의 상정이 가능하도록 했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 또한 천재지변, 전시나 사변, 여야 원내대표와 합의한 경우로 엄격히 제한해 쟁점 법안의 일방적 직권상정이 원천 봉쇄된 상태다. 여당은 직권상정과 날치기 통과를, 야당은 의사당 점거 등 물리력 행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게 해놓았다. 이 때문에 10월 정기국회 최대 현안으로 부상한 기초연금 관련법 개정 등을 새누리당 단독으로 처리하기는 난망하다. 새누리당 일부 의원이 국회선진화법을 ‘식물국회법’ ‘국회마비법’이라고 깎아내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주당이 국회선진화법을 악용해 여러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고 멀쩡한 안건과 연계한다면 우리도 대비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산적한 국정현안과 예산 등을 제대로 처리하려면 지난 한 달 동안 못 한 것을 한꺼번에 짧은 기간 안에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기국회 종합상황실을 설치해 상황팀과 이슈대응팀을 중심으로 의원 한 분 한 분이 결의를 가지고 협조해달라.”



국회마비법 원성 터져 나와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9월 30일 의원총회에서 이같이 말하며 전열을 다졌지만, 야당 도움 없이는 안건처리가 어렵게 된 상황이라 새누리당은 ‘뾰족한 대비책’이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박근혜 정부 1년 차에 이른바 경제활성화법과 예산 등을 집권당이 적극 나서서 뒷받침해줘야 하는 만큼 시름도 깊다.

이런 고민 끝에 나온 ‘대비책’이 국회선진화법 태스크포스(TF)팀(팀장 주호영 의원). 새누리당은 당내 율사 출신 중심으로 TF팀을 만들어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만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게 한 조항이 헌법이 규정한 다수결원칙에 위배되는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5분의 3 규정이 과반 출석과 과반 찬성을 본회의 의결 요건으로 규정한 헌법 제49조에 위배된다는 주장.

그러나 TF팀 활동이 ‘뾰족한 대비책’이 아니라는 것을 새누리당 내에서도 공감하는 분위기다. 새누리당이 나서서 만든 법을 법 제정 1년 만에 폐기하는 것은 ‘도끼로 제 발 찍기’라는 비판과 함께, 당시 황우여 대표 등 새누리당 율사 출신이 대거 참여해 국회선진화법을 만들었는데 이제 와서 위헌 소지가 있다며 다시 손질하자는 것 또한 겸연쩍다는 반응이다.

국회선진화법 제정에 참여한 새누리당 한 재선의원의 말이다.

“박근혜 정부 1년 차는 정부가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집권당이 적극 나서서 뒷받침해줘야 하는 시기인데, 국회선진화법이 미합의된 법안의 본회의 상정 자체를 어렵게 한다. 이렇게 되면 기초연금법 같은 시급한 현안은 허송세월할 개연성이 높고, 집권당으로서 정기국회 전략을 세우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국회선진화법) 개정이나 헌법 제소가 이뤄져도 ‘누워서 침 뱉기’ 꼴이 된다. 헌법 제49조에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과반수를 존중한다는 단서가 있고, 법이 합의 통과된 만큼 위헌 판결 개연성도 낮다. 이런 상황에서 ‘위헌이 아니다’로 나오면 그 비난은 고스란히 새누리당 몫이 된다. 내년 지방선거가 있는데 우리가 적극적으로 법 개정에 나서면 여론이 불리해질 게 빤하다. 황우여 대표의 말처럼 결산이나 법안 처리에 정해진 시한을 지키지 않는 사례에 대해선 보완 방법을 찾는 선에서 마무리해야 할 거 같다. 오죽하면 TF팀을 만들었겠나.”

문제는 또 있다. 만약 TF팀이 적극적으로 활동한다면 자칫 내분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현재 새누리당 지도부 내에서도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온도차가 느껴진다. 황 대표는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에서 몸싸움이 사라지는 변화를 가져온 새 정치의 상징”(9월 25일 시도당위원장 회의)이라며 개정 반대 의견을 분명히 밝혔지만, 최 원내대표는 “국회선진화법을 국정 발목잡기에 이용한다면 야당은 국민의 매서운 심판에 직면하고, 국회선진화법의 수명도 오래가지 못할 것”(9월 24일 원내대책회의)이라며 개정 의지를 천명했다. 자칫 친박(친박근혜) 주류가 ‘힘’으로 밀어붙이고, 황 대표와 국회선진화법 제정에 적극적이던 남경필 의원 등 개혁 성향 의원들이 세 결집에 나설 경우 새누리당은 자중지란에 빠질 수도 있다.

선진화법 족쇄에 속 타는 여당
“TF팀 구성 잘못” 비판도

현재 남 의원 등 국회선진화법 제정에 적극 나선 새누리당 의원들은 민주당 중도파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가 만든 국회선진화법을 정쟁에 악용하면 안 된다”고 설득하고 있다. 남 의원 측 관계자는 “국민 여론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에서 야당도 국회선진화법을 마냥 악용할 수도 없다”며 “지금은 법 제정에 나선 여야 의원들에게 대화와 타협에 적극 나서달라고 부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최근 새누리당의 TF팀 구성과 지도부의 강성 발언은 민주당이 여당 압박용으로 국회선진화법을 들고 나온 데 대한 또 다른 압박용 카드라는 해석이 나온다.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박근혜 정부의 공약 실행이 어려울 거 같으니까 이런 방법을 찾은 거다. 민주당이 발목잡기를 하거나 국회선진화법을 악용하면 (TF팀 분석 결과) ‘위헌 소지가 있다’면서 야당을 압박하려는 거다. 국민 여론도 우호적으로 만들고 민주당을 압박해 법안처리에 협조하게 하는 전략 말이다. 만약 전병헌 원내대표의 말처럼 민주당이 정말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다’면 종국에는 위헌소송도 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 당 역시 어려워진다. 현재로서 TF팀은 국민 여론을 의식한 전략적 행보다.”

새누리당 일각에선 지도부의 TF팀 구성 등 국회선진화법을 대하는 전략이 잘못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처음부터 프레임을 잘못 잡았다. 친박 진영에서 국회선진화법 위헌 소지를 주장하는 게 아니었다. 우리가 나서서 만든 만큼 대화와 타협, 상호존중과 합의라는 국회선진화법 정신과 명분을 충분히 얘기하고 새누리당은 법정신을 존중한다고 했으면 국민 여론도 우호적이 된다. 그럼 야당이 그것을 악용할 수 있겠나. 만일 악용한다면 그때 가서 ‘우리는 고육지책으로 TF팀을 만들었다’며 민주당의 잘못을 부각했어야 한다.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성사시킨 제도를 이제 와서 우리가 먼저 정쟁 대상으로 삼는 건 모순이다.”



주간동아 2013.10.07 907호 (p8~9)

배수강 기자 bsk@do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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