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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한마당

  • 이영광

공


결국은 나 아니겠느냐는 듯

축구 끝난 운동장에 혼자

놓여 있는







수만의 함성과

험악하고 강력한 발들이 차다가,

차다가 끝내 터뜨리지 못해 놓고 간

침묵 한 덩이



침묵 속에서 모두를 몰살시킬 허무가

터질 듯,

비어 있다



폭탄을 걷어차느라

발들이 부르트고

목들이 붓고 쉰 뒤에도 공은

세계의 배꼽처럼 동그랗고

빵빵하다



터지지 않을 것 같은 것은 무섭다

몰살당하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은 무섭다.

공을 空으로 읽는다. 이 시를 보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든다. 공을 차면서 공을 생각한 적은 없다. 공이 멈추어 있을 때도 공을 생각한 적이 없다. 공은 그냥 굴러가는 것, 바람을 집어넣어야 되는 것, 차야 되는 존재인 줄만 알았다. 아, 그런데 공과 좀 떨어져 있으니 시인의 눈에 공이 보이는 모양이다. 말장난 아니다. 몸과 마음이 허물어져 허전한 가을날에 하는 공허하고 ‘진지한’ 생각이다. ─ 원재훈 시인



주간동아 2013.09.30 906호 (p8~8)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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