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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中 치부 다룬 ‘막장 드라마’

보시라이 재판, 지도층 비도덕성 만천하에 공개 다음 타깃은 저우융캉…좌우파 권력 투쟁 심화될 듯

  • 고기정 동아일보 베이징특파원 koh@donga.com

中 치부 다룬 ‘막장 드라마’

中 치부 다룬 ‘막장 드라마’

보시라이 전 중국 충칭시 서기(가운데)가 8월 22일 수뢰와 부패, 직권 남용 등의 혐의로 산둥성 지난시 중급인민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중국 형사재판에서 일반 범죄인은 수갑을 차고 법정에 서지만, 부부장(차관) 이상은 평상복을 입은 채 수갑도 차지 않고 재판에 임할 수 있다.

보시라이(薄熙來) 전 중국 충칭(重慶)시 서기에 대한 법원 심리가 8월 26일 닷새간 일정을 마쳤다. 문화혁명 이후 최대 정치적 사건이라고 불리는 이번 재판은 이제 검찰 구형과 선고 절차만 남았다. 보 전 서기가 상소를 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기각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에게 대들었다가 1998년 비리 혐의로 징역 16년형을 받은 천시퉁(陳希同) 전 베이징(北京)시 서기도 상소했지만 기각됐다.

지난해 2월 6일 심복이던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시 공안국장의 미국 망명 시도로 촉발된 이번 사건은 골 깊은 중국 계파정치의 단면을 드러냈을 뿐 아니라, 지도층의 비도덕성을 전 세계에 공개하는 계기가 됐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보시라이를 단죄함으로써 향후 10년의 집권 기반을 다지려는 의욕을 보였지만 이번 재판이 중국 전체에 남긴 상처를 치유해야 하는 숙제도 떠안았다.

좌파 아이콘의 처절한 몰락

보시라이는 화려한 정치인이었다. 공산당 8대 원로인 부친 보이보(薄一波) 전 부총리의 후광으로 일찌감치 태자당(혁명 원로나 고위 간부 자제 그룹)의 선두주자로 꼽혔다. 시 주석 역시 시중쉰(習仲勳) 전 부총리의 아들로 태자당이다. 하지만 시 주석은 1962년 마오쩌둥(毛澤東)의 심기를 건드린 ‘류즈단(劉志丹) 사건’으로 집안이 풍비박산난 뒤 산시(陝西) 벽촌으로 하방(下放)돼 어려운 유년기를 보낸 반면, 보시라이는 출세가도를 달린 아버지 덕에 일찍부터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닦았다.

보시라이가 중국 정치에서 확실한 공간을 확보한 건 ‘충칭 모델’을 추진하면서부터다. 중국 지도부는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시장과 민영화에 초점을 맞춰왔다. 이는 이후 30년간 연평균 9.9% 경제성장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의 근원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빈부격차 등 부작용도 낳았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도 개혁·개방이 초래한 홍역이었다.



보시라이의 충칭 모델은 더 큰 정부를 추구하고 분배를 중시한다. 마오쩌둥이 추구했던 사회주의 교리에 좀 더 충실하다. 서민들도 이를 지지했다. 여기에 창훙다헤이(唱紅打黑·사회주의 이념을 고취하고 사회악을 척결함) 운동을 통해 홍색가요(혁명가요) 부르기, 범죄와의 전쟁 등을 밀어붙였다. 보시라이가 좌파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건 이 같은 정치적 배경 때문이다. 이는 곧 보시라이 재판이 중국 당국이 발표한 ‘수뢰와 부패, 직권 남용’ 때문이 아닌 좌우파 간 권력 다툼에서 기인했다는 추론으로 이어진다. 좌파세력을 찍어내려는 작업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재판이 좌파 척결이라는 인적 쇄신을 이뤄냈을까. 중국 정치는 전통적으로 권력을 독점하지 않고 분배한다. 패자에게도 일정 지분을 인정해주는 구조다. 국가 최고지도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현재 7명)을 계파별로 안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보시라이 재판을 통해 좌파의 뿌리를 뽑는 강수는 두지 않으리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렇더라도 좌파 준동을 관리할 수 있는 수준까지 제압하는 데는 성공했어야 한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인다.

먼저 보시라이가 재판정에서 무죄를 강력히 주장하면서 좌파의 아이콘에서 좌파의 희생양으로 이미지 변신을 꾀한 측면이 있다. 이는 곧 좌파세력이 보시라이를 중심으로 결집할 수 있는 명분과 동기를 제공한다. 더욱이 최근 중국 당국이 보시라이를 비호해왔던 저우융캉(周永康) 전 상무위원 겸 중앙정법위원회 서기에게 사정의 칼날을 들이대는 정황이 감지되면서 향후 좌우파 간 권력투쟁이 더 심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中 치부 다룬 ‘막장 드라마’
패자에게도 일정 권력 지분 인정

국가 감찰부는 보시라이 심리가 끝난 8월 26일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CNPC) 왕융춘(王永春) 부총경리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 사건은 다음 날 홍콩과 상하이(上海) 증시에서 CNPC 주식이 일시 거래 정지될 정도로 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당국은 다음 날 CNPC 자회사인 리화린(李華林) 쿤룬 에너지 주석, 란신취안(新權) CNPC 부총재, 왕다오푸(王道富) CNPC 탐사개발연구원 원장도 ‘엄중한 기율위반 혐의’로 붙잡아 조사 중이라고 공개했다. 이들은 석유방(석유업계 출신 정치·경제인 그룹)을 이끄는 저우융캉의 뒤를 떠받치는 석유업계 핵심 인물이다.

중화권 언론이 이번 조사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보시라이에 이어 저우융캉에게도 사정의 손길이 뻗칠지 여부 때문이다. 이는 곧 좌파에 대한 전면 공세를 의미한다. 저우융캉에 손을 대는 건 상무위원 출신은 처벌받지 않는다는 중국공산당의 묵계를 깨는 일이다.

중국 관영언론은 보시라이 재판 내내 반(反)부패 의지를 강조했다. 하지만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는 다시 한 번 확인된 중국 지도층의 비도덕성과 치부에 대한 비판으로 들끓었다. “부패 문제가 보시라이에만 국한된 것이냐”는 반응이다.

검찰이 밝힌 보시라이의 수뢰액(비자금 횡령 포함)은 총 2679만 위안(약 49억 원). 문제는 수뢰 방식과 용처다. 공소장에 따르면, 보시라이의 아내 구카이라이(谷開來)는 2000년 프랑스 해변도시 니스에 별장을 구매하려고 쉬밍(徐明) 다롄스더(大連實德)그룹 회장으로부터 231만 위안(약 34억4000만 원)을 받아서 썼다. 구카이라이는 이 집을 아들 보과과(薄瓜瓜)에게 물려주려고 샀다고 밝혔다.

물론 보시라이는 돈 거래와 주택 구매 등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아내와 쉬밍 간 일일 뿐이라는 것. 하지만 이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자택에 부부만 열 수 있는 비밀금고를 뒀으며, 그 안에 수억 원 규모의 달러와 위안화 다발을 보관했다는 게 드러났다. 2011년 위정성(兪正聲) 당시 상하이 서기가 밝힌 월급은 1만1000위안(약 200만 원). 평생 공직에 있었던 보시라이도 명목상 월 수입이 그 정도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번 재판에서는 보시라이 일가의 전횡도 일부 드러났다. 구카이라이는 남편 권력을 등에 업고 충칭시 공안국 간부를 마음대로 부려 국가 권력을 사유화하기도 했다. 아들 보과과는 부모의 스폰서였던 쉬밍으로부터 전용기를 받아 아프리카를 여행하는가 하면 미국에 있는 친구 40여 명을 다롄으로 초청하면서 전화 한 통으로 5성급 호텔과 항공료 일체를 제공받았다.

전횡과 애정행각 그리고 불륜

지도층 비리에는 애정 행각도 빠지지 않았다. 보시라이는 아내의 별장 구매 사실을 몰랐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자신의 불륜마저 자백했다. 2000년 자신의 외도 때문에 구카이라이가 중학생이던 아들을 데리고 영국으로 갔으며 이후 두 사람 간 이렇다 할 대화조차 없었다는 것. 그가 밝힌 외도 상대는 다렌TV의 전 여성 앵커로 알려졌다. 인터넷과 일부 반중(反中) 매체에는 쉬밍 회장이 보시라이에게 여성 100여 명을 상납했으며, 그중에는 영화배우 장쯔이(章子怡)도 포함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보시라이는 구카이라이와도 외도 끝에 결혼했다. 전처 리단위(李丹宇)는 보시라이가 자신과 이혼하기 전부터 구카이라이를 사귀었다고 이혼 소송에서 폭로했다. 구카이라이의 언니는 리단위의 오빠와 부부 사이다. 따라서 보시라이와 구카이라이는 원래 사돈지간이었다.

보시라이는 왕리쥔이 구카이라이를 짝사랑했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그는 왕리쥔이 마치 집사처럼 구카이라이의 일을 봐주면서 “서로 아교풀처럼 딱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如膠似漆·여교사칠)”고 말했다. 여교사칠은 일약 중국 인터넷에서 유행어가 됐다. 왕리쥔은 이후 편지 등을 통해 구카이라이에 대한 연정을 고백했고, 이 사실이 보시라이에게 발각되자 미국 망명을 시도했다는 게 보시라이의 주장이다.

서방 언론들에 따르면 구카이라이는 자신이 2011년 11월 3일 충칭 한 호텔에서 독살한 영국인 닐 헤이우드와도 연인관계였다. 구카이라이는 프랑스 별장 구매 사실을 숨기려고 다른 회사 명의로 집을 샀고, 이 회사 주주로 헤이우드를 올려놨다. 헤이우드는 별장 관리인으로 있으면서 구카이라이와 동거했다는 설이 있다.

이번 재판에서는 쉬밍 회장도 전 중국중앙(CC)TV의 아나운서 출신인 장펑(姜豊)과 내연관계였다는 게 드러났다. 장펑은 헤이우드 이후 프랑스 별장의 관리인으로 있었다.

보시라이는 이번 재판을 통해 권력과 함께 가족까지 잃었다. 중국은 반부패 기치를 내세웠지만 지도층의 음습한 비리 구조가 공개됐음은 물론, 사법부의 공정성과 투명성에도 생채기가 났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보시라이와 중국 정부 모두 이번 재판의 ‘패자(敗者)’라고 지적했다.



주간동아 2013.09.02 903호 (p48~50)

고기정 동아일보 베이징특파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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