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2

2013.08.26

‘여덟 살 어른아이’ 동화 속에 갇히다

뮤지컬 ‘뮤직박스’

  • 김유림 월간 ‘신동아’ 기자 rim@donga.com

    입력2013-08-26 11: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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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덟 살 어른아이’ 동화 속에 갇히다
    어느 날 갑자기, 필자의 돌쟁이 아기가 잠잘 때 공갈젖꼭지를 찾지 않았다. 혼자 잠드는 게 불안한 듯 무언가를 쉴 새 없이 빨아야 겨우 잠이 들던 아기가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스스로 잠드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이처럼 인생에는 그 나름의 단계가 있다.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나면서 독립적인 인간으로 성장한다.

    뮤지컬 ‘뮤직박스’의 주인공 강민석은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를 거부한 채 어머니가 떠난 여덟 살에 머물러 있다. 어른이 돼서도 그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대신, 자기 세계에 갇혀 모든 사람과 추억을 맹목적으로 재해석한다.

    폭력적인 아버지가 집을 나가고, 유일한 가족이던 어머니마저 여덟 살 때 세상을 떠나자 혼자 남게 된 민석은 어른이 돼서도 어머니가 남겨준 뮤직박스의 자장가를 들어야만 잠이 든다. 장난감이 유일한 친구였던 민석은 어른이 돼 단점을 가진 동화 속 인물들을 고쳐주는 독특한 장난감 디자이너가 된다. 우연히 아이돌가수 이하나의 목소리가 어머니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하나를 만나려는 과정에서 뮤직박스가 망가지는 바람에 민석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불안해진 민석은 하나를 납치하고, 하나는 민석만을 위한 자장가를 녹음하게 된다.

    11시 59분에 시간이 멈춘 신데렐라, 사과에 묻은 독을 감지할 수 있는 ‘은 립스틱’을 바른 백설공주, 거짓말을 못하는 직선적인 피노키오 등 민석이 만드는 장난감은 저마다 가진 단점을 보완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신데렐라는 12시에 구두를 잃어버려야 왕자를 만날 수 있는데 민석은 이후 다가올 위기와 갈등이 두려워 그냥 멈춰 놓았을 뿐이다.

    이 작품을 보면 우리 사회에 산재한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가 떠오른다. 이들이 민석처럼 비극적 결말을 맞지 않도록 세상 밖으로 인도해야 한다는 자각이 든다.



    ‘여덟 살 어른아이’ 동화 속에 갇히다
    이 작품이 단순한 ‘잔혹동화’가 되지 않은 것은 아름다운 음악과 섬세한 무대 덕분이다. 수많은 시계와 오래된 가구,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들어선 무대는 동화 속 나라처럼 아름답다. 그래선지 커튼콜 때 객석에서 엄청난 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졌다. 때로는 급박하게 돌아가는 수십 개의 벽시계는 민석의 불안정한 심리를 대변한다. 뮤지컬 넘버도 사랑스럽다. 일본 국민밴드 ‘서던 올스타스’의 음악에 연출가 성재준이 가사를 붙이고 작곡가 하광석이 편곡한 넘버는 아름답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멜로디를 잊지 않으려고 흥얼거리게 될 정도다.

    뮤지컬 ‘스트릿 라이프’ ‘카페인’, 연극 ‘광해, 왕이 된 남자’ 등에서 감각적인 연출을 선보인 성재준이 3년간 공들여 만든 창작 뮤지컬이라 화제다. 뮤지컬 ‘완득이’에서 ‘퉁퉁한 하느님’으로 주목받았던 이정수가 램프의 요정 지니로 출연해 명불허전의 연기력을 뽐낸다. 민석 역에 베테랑 뮤지컬 배우 김수용과 더블캐스팅된 정원영은 신예임에도 그 존재감이 대단하다. 9월 1일까지, 서울 대학로 문화공간 필링 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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