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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제주도에 살어리랏다

도시 탈출 이주민 급증 8월 인구 60만 돌파 ‘제2 인생’ 기회의 땅…섣부른 결정 땐 쓴맛도

제주도에 살어리랏다

제주도에  살어리랏다

올레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 제주에 올레길 열풍이 불면서 젊은 층의 이주가 늘었다.

“중국인에 대한 무비자 제도는 성형 등 의료관광의 허브가 될 수 있는 최대 무기입니다. 제주를 제2 고향으로 삼고 남은 인생을 걸었습니다.”

최근 제주시 제주지방법원 인근에 8층 건물을 매입해 ‘제8요일’ 병원을 건립한 신희창(45) 병원재단 이사장의 표정은 사뭇 결의에 찼다. 서울 강남 유명 병원의 국내 마케팅과 해외 시장을 담당하는 임원으로 일하다 안정적인 직장을 단숨에 내려놓고 제주행을 선택했다.

신 이사장은 제주행을 결정한 후 가장 먼저 가족이 마음에 걸렸다. 가정이 안정돼야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는 데 힘을 얻을 수 있어서였다. 처음엔 가족을 설득하는 데 다소 애를 먹었지만 결국 5월 제주시 연동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아내, 세 자녀는 물론 처제, 장모와 함께 이사했다. 자녀의 제주 생활에 마음이 쓰였지만, 큰딸(9)이 제주 초교에 순식간에 적응하고 제주 사투리를 쓰는 것을 보면서 걱정을 내려놓았다.

신 이사장처럼 제주를 새로운 터전으로 삼는 이주민이 크게 늘면서 제주는 8월 12일 인구 60만 명을 돌파했다. 7월 말 제주 인구는 내국인 58만9622명과 외국인 9922명 등 모두 59만9544명으로 잠정 집계된 이후 계속 늘어 12일 현재 60만 명에 도달했다. 제주 인구 증가율은 2010년 1.6%, 2011년 1.1%, 2012년 1.6% 등으로 인구 감소로 애먹는 다른 시도에 비해 1%p 이상 높다.

느림의 미학을 쫓아온 사람들



제주에 정착하려는 내국인 전입인구와 외국인 증가가 두드러진다. 전체 전입인구에서 전출인구를 제외한 순유입인구는 2010년 437명에서 2011년 2342명, 지난해 4873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전입자는 고향을 떠났다가 귀향하거나 제주에서 제2 인생을 살려는 이주민이 대부분이다. 관광객 증가 등으로 관련 산업이 활성화해 유입인구가 늘기도 했으며, ㈜다음커뮤니케이션처럼 본사를 제주로 이전하는 기업과 기관이 늘면서 직원들이 제주로 이사하는 사례도 많다.

제주 전입과 관련해 ‘이주’보다 ‘이민’이라는 단어가 더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 바다를 건넌 이국적인 풍경, 이색적인 문화, 쉽게 알아듣기 힘든 제주어(語) 등이 있기 때문이다. 제주 이주민들은 초기엔 자연을 벗 삼아 조용히 지내려는 은퇴자 중심이었다.

하지만 ‘올레 열풍’이 불고 이주민들이 젊은 층으로 확산되면서 풍속도가 변했다. 제주 해안, 오름(작은 화산체), 밭, 마을 등을 찬찬히 둘러보는 올레의 탄생은 ‘제주의 재발견’을 알린 신호탄이었다. ‘놀멍 쉬멍 걸으멍(놀면서 쉬면서 걸으면서)’을 표방한 올레에 빠진 ‘올레꾼’들은 제주 속살에 열광하고 환호했다.

일부는 제주 매력에 젖어 아예 그대로 눌러앉았다. 주로 30~40대층이었다. 대도시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빡빡하게 살아가는 일상에 염증을 느껴 탈출을 감행한 이들이다. 이들이 정착생활을 하려고 눈을 돌린 것이 카페, 레스토랑, 게스트하우스다. 올레길을 걸으면서 손쉽게 먹을 만한 공간과 숙소가 마땅치 않았다는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 올레길이나 해안에 이색 카페, 게스트하우스가 우후죽순 생겨난 요인이기도 하다.

지난해 서귀포시 대정읍에 짝게스트하우스를 연 김태원(35) 씨는 ‘부산 사나이’에서 ‘제주 청년’으로 거듭 태어났다.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부산 국제시장 점원으로 일하면서 장사를 배웠고 몇 년 뒤 독립해 도매상을 차렸다. 어린 나이에 큰돈을 만졌지만 상인을 상대하는 일에 염증을 느꼈고 흥정하면서 스트레스가 늘었다. 그래서 지난해 7월 머리를 식힐 겸 올레길을 걷으며 제주를 여행하다 “바로 이거야”라며 무릎을 쳤다.

제주도에  살어리랏다

제주에 병원 ‘제8요일’을 건립한 신희창 병원재단 이사장(왼쪽). 짝게스트하우스를 연 김태원 씨.

제주 바람이 바꾼 인생행로

“시끄러운 흥정판을 벗어나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제주가 ‘딱’이었어요. 제주에 게스트하우스가 400~500개에 이르지만 실제 수익을 보는 곳은 50여 개에 불과한 것으로 압니다. 안목과 수완이 있다면 생활에 지장이 없을 듯합니다.”

김씨는 제주에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저녁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펼쳐지는 제주바비큐 파티 등을 장점으로 내세워 영업을 확장하고 있지만 40대 중반이면 동력을 잃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때쯤이면 땅을 사서 캠핑사업을 해볼 생각이다.

제주도에  살어리랏다

제주에서 부부 연을 맺은 등공예가 윤성재(왼쪽) 씨와 세계 전통 음식 연구가 강가자 씨.

서귀포시 예래동 슬레이트 지붕 사이에 들어선 아담한 단층 목조주택. 재일교포 3세로 세계 각국 전통음식을 연구하는 강가자(31·여) 씨와 전통 등공예가인 윤성재(33) 씨가 지난해 부부의 인연을 맺고 새롭게 출발한 곳이다. 강씨는 아시아, 남미 등을 돌아다니며 전통음식을 연구하다 2년 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서 ‘로컬푸드 레스토랑’ 운영을 위한 메뉴개발자로 일했다. 사는 곳에서 나는 유기농 재료로 만든 음식이 최고라고 강조하는 강씨는 당시 입주 작가인 윤씨와 만나면서 인생행로가 바뀌었다. 서울이 고향인 윤씨는 전통 등을 연구하다 제주 신화를 등으로 제작하는 목표를 세우고 눌러앉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집 마당 텃밭에 토마토, 고추, 옥수수, 이색 허브식물 등을 무농약으로 재배한다. 강씨는 이를 재료로 요리를 만들고 강습도 한다. 부부 사이에 아들 수오(4개월)가 태어나면서 식구도 늘었다. 이들 부부는 태양, 바람 등 자연 에너지를 쓰면서 유기농으로 농사짓고,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는 공동체를 꿈꾼다. 아기가 크면 셋이서 유럽 지역공동체 문화를 돌아보고 제주에서 실행하는 계획도 세워놓았다.

서귀포시 신시가지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출신인 빅토르 랴센세브(40) 씨는 지난해 ‘제주에코스위츠펜션’을 오픈하고 아내 나타샤(41)와 함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낸다. 그는 제주 비경에 빠져 2001년 정착한 이민 12년 차 고참이다. 초기에 언어, 풍습이 너무 낯설어 애먹었지만 지금은 제주 사람보다 더 제주를 잘 아는 인사가 됐다. 제주에코여행사를 설립해 주로 외국인에게 제주 생태를 소개하면서 해외에서 더 유명한 ‘제주의 창’이 됐다.

제주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환경이라는 점에 이견이 없을 듯하다. 유네스코 자연과학 분야에서 세계자연유산,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지질공원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것도 자연환경 덕분이다. 그랜드캐니언의 협곡, 나이아가라 폭포 같은 웅장함은 없지만 1849㎢ 넓이에 폭포, 하천, 오름, 자연림 등을 제주처럼 다양하게 갖춘 지역도 드물다. 여기에 코발트, 에메랄드빛 바다, 수중 산호에 연중 불어오는 바람은 시시각각 제주의 색깔을 변화시킨다. 예술가의 혼을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가 제주로 들어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술감각 자극하는 ‘영혼의 고향’

제주도에  살어리랏다

제주의 상징인 돌하르방이 자리하고 있는 금릉해안.

1990년 교수직을 버리고 아무 연고도 없는 서귀포에 정착한 이왈종(68) 화백이 ‘제주생활의 중도’ 시리즈로 화단과 대중의 관심을 받은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후 예술가들의 제주행이 줄을 이었다. 제주 한경면 저지예술인마을을 중심으로 곳곳에 예술가들이 자리 잡았다. 2010년 저지예술인마을에 ‘갤러리노리’를 만든 중견화가 이명복(55) 씨는 아내 김은중(51) 씨와 함께 작품 활동을 하고 주변 초등생들의 전시회를 개최하며 터를 닦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마을미술프로젝트의 총괄감독을 맡은 김해곤(48) 씨는 제주를 ‘예술 섬’으로 꾸미길 원한다. 김씨는 올해 서귀포 공공미술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면서 우중충한 서귀포 시내에 예술의 옷을 입혔다. 홍익대 미대 출신으로 전북 남원이 고향인 김씨는 2003년 아내 고향인 제주에 뿌리내렸다.“1989년 중문해수욕장 주변에서 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더군요. 이유 없이. 서울로 돌아가서는 열병을 앓았어요. 그러다 제주에 오면 병이 사라졌어요. 나중에야 깨달았죠. 제주가 육체의 고향과 전혀 다른 ‘영혼의 고향’이라는 것을요. 제주에서 바람을 소재로 ‘깃발전’을 하면서 인생 퍼즐처럼 하나씩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고 육체, 정신이 더욱 건강해졌어요.”

김씨는 제주에서 활동하면서 설치미술을 처음 알렸고, 중앙정부로부터 지원받는 길이 있다는 사실도 전해줬다. 제주 미술계와 서울을 잇는 가교 구실을 하기도 했다. 김씨는 “어느 지역에나 텃세가 있듯이 제주도 마찬가지다. 연고, 인맥이 없으면 활동하기 힘들지만 다른 지역에서 입주한 작가들은 자기 작품의 내실을 다지며 지역 작가와 도움을 주고받는 길을 열어간다면 정착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제주 정착을 원하는 이주민 가운데 건강 회복이 이유인 사람도 적지 않다. 숲 속을 거닐며 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를 한껏 마시다 보면 자연스레 몸이 좋아지는 경험을 한다. 제주 절물휴양림 방갈로는 연중 여유가 없을 정도로 꽉 들어찬다. 휴양객도 있지만, 질병을 앓는 환자들이 몇 달씩 머물며 휴양림 숲길에서 건강한 공기에 흠뻑 빠지다 보면 시들했던 몸에 생기가 돌아온다.

한라산 둘레길, 삼다수숲길, 사려니숲길, 교래휴양림 곶자왈(용암암괴 위에 형성된 자연림)숲길 등 제주 전역에 걸쳐 특색을 갖춘 숲길이 포진해 있다. 이들 숲길에는 피톤치드 발산량이 많은 편백나무를 비롯해 삼나무, 상록수, 활엽수가 가득하다. 숲의 효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제주 숲길도 덩달아 인기다. 여름철 높은 습도가 건강에 악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숲길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숲길의 인기와 함께 제주의 약초, 산나물도 재조명을 받고 있다. 그동안 제주에서 자생하는 약초와 산나물은 주목받지 못했다. 과거 지천에 널린 자생식물에 대한 제주 사람들의 지식이 얕아 활용도가 높지 않았다. 대체의학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제주의 식물 또한 관심 대상이 됐다. 해풍을 맞은 쑥, 농로에 다닥다닥 자라는 질경이, 산과 들판의 꾸지뽕나무, 국내 자생지의 70%를 차지하는 황칠나무, 오름 경사면 등에 무리지어 자라는 쇠무릎, 강장제로 알려진 비수리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화산섬이라는 토양 특성에다 온대에서 난대에 이르는 기후 특성상 다양한 종이 자라기 때문이다.

위암 판정을 받고 위 70%를 절제한 뒤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제주에 내려와 15년째 약초 등으로 몸을 다스리는 윤갑로(58) 씨는 “제주에서 자라는 식물을 들여다보면 각기 저마다 효능을 지닌다. 화산회토에 바닷바람을 맞고 성장하면서 다른 지역과 다른 효능을 보이는 듯하다. 단순히 약초를 달여 먹기보다 약초를 얻으려고 경건한 마음으로 숲을 거니는 과정 자체가 병을 치유하고 예방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윤씨는 제주 약초를 이용한 된장, 치유 개념의 항암 야생화차 등을 직접 개발하고 있다.

25년 전 제주로 이주한 최순남(62·여) 씨는 약선요리 전문가로 유명하다. 남편(67)의 건강을 위해 제주 조천읍에 농장을 마련하고 산나물과 꽃 100여 가지를 가꾸고 있다. 비만, 고혈압, 심장병 등으로 고생하던 남편을 위해 시작한 일이다. 밥상은 직접 재배한 약초를 기본으로 한 채식이다. 약초로 효소를 담가 음식에 쓰기도 한다. 지금은 약선요리, 효소 만들기 등을 전수하고 있다. 최씨는 “곰취, 두릅, 돌나물은 물론이고 밭 주변에 자라는 쇠비름, 해안에 자라는 갯기름나물도 훌륭한 산나물인데 제초제 사용 등으로 인해 버려지고 있다”며 “제철 야생식물을 활용한다면 제주 밥상은 더욱 건강하고 풍성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도에  살어리랏다

제주를 예술 섬으로 꾸미는 김해곤 마을미술프로젝트 총괄감독(왼쪽). 우도 전경, 제주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환경이다.

몸과 마음 치유…회생의 공간

제주 정착에는 낭만이 깃들어 있지만 쉽게 생각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이주민이 몰려드는 만큼, 적응에 실패하고 발길을 돌리는 이도 적지 않다. 대구에서 직장을 다니던 김모(50) 씨는 제2 인생을 꿈꾸며 4년 전 서귀포시 안덕면에 감귤과수원 3300㎡를 사들였다. 농사 초보였던 김씨는 농업기술원 등지에서 자료를 구하며 홀로 감귤나무와 씨름했다. 하지만 정작 수확기 감귤은 시고 맛이 없었다. 농사 경험이 없기도 했지만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는 과수원을 사들인 탓에 당도가 높지 않았다. 지인을 통해 알음알음 팔아봤지만 소득이 없었다. 결국 김씨는 농사를 접으면서 제주 정착 의지마저 접었다.

사업 실패를 겪은 뒤 제주에서 재기에 도전해 자전거여행, 게스트하우스 운영 등으로 이름을 날린 이모(48) 씨는 최근 도망치다시피 제주를 떠났다. 부지런함과 성실성, 이색 아이템 등으로 터전을 닦으며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안정됐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이 화근이었다. 결국 여기저기서 돈을 빌린 뒤 갚지 못해 빚에 쪼들리다 야반도주했다.

제주에 정착한 이주민은 섣부른 판단으로 ‘이민’을 결심하지 말라고 이구동성으로 조언한다. 제주가 ‘기회, 도전, 축복의 땅’임에는 분명하지만 다른 농어촌지역과 마찬가지로 의료, 일자리, 문화활동 등에서 열악한 만큼 사전에 철저한 준비와 현지 적응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착 이주민은 ‘목표와 목적을 분명히 하고 고집을 가져라’ ‘마음을 열고 먼저 지역주민, 문화와 소통하라’ ‘선배 정착민에게 정보를 얻어라’ ‘정착을 결심하기 전 몇 달 동안 살아보라’고 조언한다.

인천에서 제철회사에 다니다 2001년 제주에 내려와 감귤농사를 짓던 한승훈(53) 씨는 최근 제주 생태, 환경을 주제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제주문화포럼 원장을 맡았다. 역사, 문화를 이해하려고 열과 성을 다한 덕분이다. 한씨는 “제주 사람들이 배타적이라고 하지만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 농촌에서는 이방인을 환영하는 분위기도 있다. 마을 구성원으로서 먼저 다가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문화적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지만 차근차근 배우면서 몸에 익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간동아 2013.08.26 902호 (p36~39)

  • 제주=임재영 동아일보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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