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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형 연재소설

아홉 마디 @오메가

제12화 뻐꾸기 둥지

아홉 마디 @오메가

하늘에 뭉게구름이 떠가다 하얀 반달을 감싼다.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철방은 강모래에서 조약돌 하나를 집어 호수를 향해 날린다. 물 위에 네댓 번 튀어 물수제비를 만든다.

“멋지다.”

다림이 철방을 향해 웃는다.

곰배령 할배 나무의 선물 같기도 했다. 철방은 그날 판수처럼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지은 죄를 용서해달라고 진심으로 빌었다. 돌아와 보니 꿈속에서 죽음 체험을 했던 그 노인이 보낸 봉투가 배달되어 있었다. 열어보니 손으로 쓴 메모가 있었다.

‘난 평생 전장을 누비고 다녔소. 한국전과 월남전…. 살기 위해 저지른 일이지만 내 총검에 죽어간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잊을 수 없어요. 그들이 원귀가 되어 괴롭힌 밤이 셀 수 없이 많았지. 원귀에 시달리다 죽어간 전우도 한둘이 아니오. 몇 남지 않은 전우들, 아직도 그 악몽에 시달리고 있소. 그들을 위해 좋은 일을 부탁합니다.’



노인은 거액의 꿈 제작비와 참전 노병들의 명단을 보내왔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도 단체 주문이 줄을 이었다.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웠지만 뛸 듯이 기뻤다.

“꿈 제작 사업…. 다음 단계 준비가 필요한데 수일이가 함께 가줄까?”

“친구잖아. 잘될 거야.”

여름도 끝나려는지, 호수가 황혼으로 물드는가 했는데 어느새 어둠이 깔려 있었다. 철방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수일이었다.

“철방아, 보라가 깨어나지 않아.”

희미한 불빛은 낯선 곳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눈을 뜨면 항상 혼자였는데 주변에 사람들이 있었다. 누굴까? 보라는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림, 철방, 그리고 수일. 세 얼굴이 보였다.

“내가 왜 여기에?”

“잠에서 깨어나질 않아서.”

보라는 기억의 시계를 어젯밤으로 돌렸다. 마법 같은 힘, 거부할 수 없었다. 벨소리가 났는데 일어날 수도 없었다. 그 힘에 이끌려 잠이 들었다. 보라는 셋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꿈 같기도 하고…. 자다가 그림을 봤어요!”

“꿈을 꿨다고?”

수일이 물었다.

“진짜 그림을 봤다니까요. 화가 이름도 생각나요.”

모두 다림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명화감상 끝 무렵에 전화가 왔어요. 노랫말처럼 속삭이는 거예요. 당신은 더는 출구가 없어요. ‘중독되어 있으니까요’라고요. 가위 눌린 사람처럼 움직일 수 없었어요.”

“화가가 누군데?”

수일이 물었다.

“루치안 프로이트요. 누워 있는 남자, 얼굴을 한 손에 파묻고 앉아 있는 여자,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남녀, 아, 모두 나체 그림이었어요.”

“루치안 프로이트라고?”

철방이 묻자 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일은요, 그림 속 여자가 나 같기는 했는데 완전 일치하는 느낌은 아니었어요. 꿈도 아니고, 현실도 아니고….”

“그래?”

철방에게 섬광처럼 판수의 말 한 마디가 스쳐갔다. 너를 겨누는 칼끝이 있다면서 조심하라던. 철방은 서둘러 병실을 빠져나와 오토바이를 타고 달렸다.

다림은 아직 발을 뺄 수 있다고 보라를 다독였다. 병원을 나서며 보라가 다림의 손을 잡았다. 함께 있어 달라고. 꿈속의 그림은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인 루치안 프로이트의 작품이 맞았다. 보라가 다림을 향해 입을 열었다.

“꿈을 꾼 건 아니었어요.”

“컴퓨터 모니터에서 본 거야?”

“판단이 서질 않아요.”

보라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어제 그 음성이었다.

“오늘의 명화는 ‘페르세포네의 납치’입니다.”

“페르세포네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여신이에요. 참, 전날 후속편도 잘 보셨나요?”

“후속편이라뇨?”

“명화 세 점을 더 감상하셨을 텐데….”

“아, 루치안 프로이트 그림 말이죠?”

“환상적인 밤을 보내셨나요?”

“환상적이라뇨?”

“아, 네. 실례…. 직설적이었나?”

“전송하신 거군요. 어떻게요?”

“음, 그건 말이죠. 우린 보라 씨에게 거는 기대가 큽니다.”

남자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 순간 ‘문 열어’ 하고 외치던 수일의 음성이 선명하게 들렸다. 아무렇지 않았을 일을 수일이 크게 만든 것 같았다.

컴퓨터 모니터에서는 명화를 소개하고 있었다. 둘의 시선은 명화에 쏠렸다.

아홉 마디 @오메가
수일은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은 철방의 노하우를 보호하는 일뿐이었다. 수일은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남자 BJ(방송자키)의 등 뒤로 그림 한 점이 보였다.

“니콜로 델 아바테의 그림입니다. 그리스신화를 즐겨 그린 화가예요.”

여덟 명의 여자가 무대 위에 나란히 섰다. 남자는 그들과 눈을 맞추며 말을 이어갔다.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납치해 아내로 삼습니다. 딸을 잃은 토지의 여신 데메테르는 너무 슬퍼 땅을 저주하지요. 땅이 메말라 갔어요. 제우스가 하데스를 설득합니다. 마침내 페르세포네는 일 년 중 반은 지하에 머물고, 나머지는 지상에서 지내게 됐지요. 그녀가 땅 위에 머물면 봄이 오고, 지하로 내려가면 겨울이 됩니다.”

남자의 말이 끝나자 리한나의 ‘Right Now’가 흘러나온다. 남자는 빠른 리듬에 맞춰 여자 앞으로 걷는다. 리한나의 노랫말로 속삭인다.

“가까이 와요, 맛볼 수 있게(So close I can taste you).”

여자들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남자는 한 여자 앞으로 다가선다.

“당신을 데려갈 거예요, 두려워 말아요(Ain’t scared I can take you).”

여자는 다가설 듯 뒤로 물러선다. 남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 감정 거부하지 말아요(Can’t fight the feeling). 당신이 날 그렇게 만들잖아요(You got me feel it).”

리한나의 비트가 흘러 가슴을 울린다. 그 노래가 무대를 채운다.

내일은 너무 멀고(Tomorrow way too far away)… 어제로는 돌아갈 수 없어요(And we can’t get back yesterday)… 이봐요 오늘밤 당신을 원해요(Baby tonight I need you)… 당신을 본 순간 내 느낌이에요(And I feel it when I see you).

철방은 동영상 검색엔진을 돌린다. 같은 동영상이 돌아가는 인터넷 사이트에 불이 켜진다. 판수는 불 켜진 동영상 사이트의 분류 작업을 시작한다. 점조직이어서 좀처럼 흐름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리한나의 노래가 이어진다.

내일은 너무 멀고(Tomorrow way too far away)… 어제로는 돌아갈 수 없어요(And we can’t get back yesterday)….

무대 위 남자는 여자의 손을 움켜잡는다. 여자는 저항할 듯 저항하지 않는다. 남자는 여자를 이끌어 침대에 몸을 누인다. 무대 위의 일곱 나신은 침대 주변에서 춤을 춘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향해 속삭인다.

“이봐요 난 당신을 원해요(Baby I need you)… 난 언제나 당신 거예요(Whenever baby I’m yours)… 소리를 질러봐요, 그래요, 더 크게요(Turn it up, scream it loud, yeah).”

침대 위 남녀의 몸이 엉키는 순간 사방에서 반짝거리던 신호가 한곳으로 모였다. 판수는 그 신호를 따라갔다. 철방의 마우스도 그 사이트로 향했다. 클릭하고 사이트를 열었다.

“오 마이 갓!”

둘은 동시에 소리쳤다. 판수의 알파 투 오메가였다. 철방의 휴대전화에 보라로부터 온 문자메시지가 떴다.

“화가 프로이트는 꿈 해석으로 유명한 프로이트의 손자예요. 오늘의 명화는 소중한 걸 납치하는 어둠의 지배자고요.”

철방은 원격으로 사무실 컴퓨터를 차단했다. 그리고 판수를 향해 입을 열었다.

“꿈 제작 사업이 뻐꾸기 둥지가 되는 거 아냐?”

철방은 수일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주간동아 2013.08.19 901호 (p6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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