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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미친 전셋값…주택시장 판이 바뀐다

전세→월세로 중·장기 구조 변화… 서민층 주거비용 증가 사전 대책 세워야

  • 임일섭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금융분석실장 ilseop.lim@woorifg.com

미친 전셋값…주택시장 판이 바뀐다

미친 전셋값…주택시장 판이 바뀐다

8월 10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아파트 인근 부동산중개업소에 전세 매물은 없고 월세 매물을 알리는 시세표만 잔뜩 붙어 있다.

최근 수년간 주택 매매가격 안정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전셋값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국민은행 전국주택가격 동향 조사에 따르면, 2010년 1월부터 올해 7월까지 전국아파트 매매가격은 11.8% 상승에 그친 반면, 전셋값은 35.4% 상승했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의 경우 매매가격과 전셋값 움직임이 더 큰 괴리를 보이는데, 매매가격은 8.5% 하락한 반면 전셋값은 28.0% 상승했다.

일반적으로 상품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며, 전세주택이라는 상품의 가격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최근 전셋값 상승 원인은 전세주택에 대한 공급과 수요의 변화에서 파악할 수 있다.

매매가격 올라야 유지되는 전세제도

다른 지역으로 전근, 일시적인 해외 이주 등의 이유로 자기 집을 전세로 내놓는 경우를 제외하면 전세주택 공급자는 대부분 다주택 보유자다. 즉 전세주택의 공급이 증가하려면 기존 주택 보유자들이 추가로 주택을 구매해 전세시장에 내놓아야 한다.

전세주택 공급자인 집주인 처지에서 보면, 비거주주택을 구매해 전세를 주는 행위, 즉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것은 전세금이라는 형태로 타인(세입자)의 돈을 빌려 주택투자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경우 집주인이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은 주택 매매가격이 얼마나 상승하는지에 달렸다. 전셋값이 매매가격보다 낮은 한 주택을 구매하려면 집주인 자신의 돈(자기자본)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전세를 끼고 자기 돈을 보태어 집을 살 때의 비용은 자기자본을 은행에 넣어뒀을 때 받을 수 있는 이자를 포기한 부분과 주택 보유에 따른 세금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의 비용보다 향후 주택 매매가격의 상승분이 더 클 것으로 기대되는 경우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것은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행동이 된다.



요컨대 전세주택의 공급은 향후 매매가격 전망에 크게 좌우된다. 주택시장 호황에 따른 투기적 매매 수요 증가는 전세주택 공급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주택가격이 하락하거나 제자리에 머문다면 집주인은 주택 보유에 따른 세금과 포기한 이자수입 등을 감안할 때 손실을 보게 된다. 따라서 전세주택의 공급은 매매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에 대한 기대를 전제로 한다. 만약 매매가격이 안정되고 추가 상승에 대한 기대심리가 사라질 경우 전세주택의 공급은 위축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전세는 월세로 전환되거나 매매시장에 나오면서 주택가격의 추가 하락을 부추길 것이다.

또한 매매가격 안정은 전세주택 수요를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매매가격이 안정되거나 하락할 것으로 예상될 경우, 주택 구매 대기자들은 주택 구매를 미루게 되며 이는 전세주택 수요 증가로 나타난다. 이처럼 매매가격 안정은 한편으로는 전세주택 공급의 위축,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세주택 수요의 증가로 이어진다. 그래서 최근 매매가격이 정체된 가운데 전셋값이 급등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주택임대차 제도로 알려진 전세제도는 매매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을 전제로 할 때만 유지될 수 있다. 인구구조의 고령화, 소득 대비 높은 주택가격 수준, 부진한 가계소득과 과도한 가계부채 부담 등을 감안할 때, 향후 매매가격의 안정화 가능성은 매우 높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조가 중·장기적으로 지속되는 한 궁극적으로 임대차시장에서 전세주택이 점차 사라지면서 월세주택 형태로 대체될 공산이 크다. 이는 자산가격 상승에 따른 자본이득을 목적으로 하던 주택투자 형태(=전세)가 안정적인 고정 수입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월세)로 변화할 것임을 의미한다.

물론 전세에서 월세로의 변화가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는 없다. 매매가격이 꾸준히 안정되리라는 기대가 확산, 정착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또 수십 년간 지속돼온 전세제도가 하루아침에 없어질 리도 없다. 집주인이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하려면 전세보증금을 내줘야 하는데 자금력이 약한 집주인은 당장 월세로 전환하기 힘들다.

이런 경우 최근 나타나는 흐름처럼 전셋값 상승분을 월세로 대체하는 ‘반전세’ 형태가 과도기적으로 등장할 수 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매매가격의 하향 안정화 전망이 확산하면서 전세시장이 위축될 수밖에 없으며, 결국 전세제도 자체가 소멸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미친 전셋값…주택시장 판이 바뀐다
주택 투기자들 사라짐을 의미

단기적으로는 이미 나타나고 있듯, 신규로 다주택을 보유하고자 하는 욕구가 쇠퇴하면서 전세주택의 추가 공급이 둔화할 것이다. 이 경우 매매가격의 안정에도 전셋값은 상승세를 지속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기존 전세주택이 점차 월세주택으로 전환되면서 전세제도 자체가 사라질 개연성도 높다.

이상의 논의를 전제로 할 때, 최근 매매가격 안정과 전셋값 상승은 우리나라 주택시장의 중·장기적 구조변화 가능성을 암시하는 신호라고 볼 수 있다. 그럼 이러한 변화는 무주택자와 서민층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국내에선 내 집 마련이 다수 서민의 인생목표가 됐지만, 선진국은 자가주택 보유율이 60% 내외에서 맴돈다. 모든 사람이 자가주택을 보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임대차시장의 존재는 불가피하다. 서민 처지에서는 매매시장뿐 아니라 임대차시장의 변화가 더 중요한 문제인 셈이다.

따라서 매매가격이 안정된 가운데 전셋값이 꾸준히 상승하면서 기존 전세주택이 점차 월세주택으로 전환될 경우, 서민층의 주거비용은 오히려 증가하고 주거 불안도 심화할 수 있다. 요컨대 주택가격 안정과 서민의 주거 안정은 별개 문제인 것이다. 정부의 주택정책도 이러한 주택시장의 구조변화 가능성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전제로 수립할 필요가 있다.

중·장기적으로 전세시장의 위축과 소멸은 임대주택의 공급자 구실을 담당하던 주택투기자들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택가격 상승에 따른 매매 차익을 목적으로 한 투기적인 주택 수요의 소멸은 바람직한 방향일 수 있으나, 그동안 이들이 담당하던 구실, 즉 임대주택의 공급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다. 이는 정부가 주도하는 공공 임대주택뿐 아니라, 민간회사의 장기임대주택 등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장기적 시각에서 주거환경 안정을 위해 공공 및 민간이 공급하는 다양한 형태의 임대주택을 활성화하는 정책적 노력과 제도 개선이 시급한 과제다.



주간동아 2013.08.19 901호 (p20~21)

임일섭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금융분석실장 ilseop.lim@woorif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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