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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형 연재소설

아홉 마디 @오메가

제9화 미행

아홉 마디 @오메가

여옥은 밤새 깨어 있었다. 그건 유령이 아니었다. 순을 닮은 여자, 아니 순이었다. 혼란스러웠다. 하얀 시트 아래 차가운 시신으로 누워 있던 그 순이 서울 거리를 활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령일까? 여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다 동이 틀 무렵 살짝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순은 잿빛 수렁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여옥은 순에게 물었다. 네가 왜 이런 곳에? 순은 여옥에게 손을 내밀었다. 잡아달라고. 여옥은 순의 손을 잡았다. 순은 새처럼 날아 여옥 앞에 섰다.

깍 깍 깍, 까치 소리가 여옥의 새벽잠을 깨웠다. 눈을 떴지만 순의 모습은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일어나 어젯밤 그 장면을 떠올려봤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여옥은 출근하기 무섭게 전화기를 들었다.

“장 대표가 전화를 다 주시고….”

경찰관은 여옥을 반겼다.



“설순을 보았습니다.”

“설순? 설순이라면… 에이, 그럴 리 있나요.”

“무슨 음모가 있는 것 아닙니까?”

“….”

반쯤 열린 사장실 문틈으로 필승은 여옥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순에 관한 이야기였다. 필승은 어젯밤 순을 찾아 이리 뛰고 저리 뛰다 허탈한 심정으로 돌아왔는데, 여옥은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잘못 본 건가 봐요”라고 했는데 여옥은 이런 말을 던졌다.

“순일 리 없고 유령을 본 것 아냐?”

통화가 길어지고 있었다. 편지를 돌려주겠다는 여옥의 말도 들렸다. 여옥은 필승이 모르는 비밀을 아는 듯했다. 필승은 통화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여옥의 방을 노크했다.

“네, 들어오세요!”

보라는 필승을 곤경에 빠뜨린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나 정말 힘들어 하는 말이 귓전에 맴돌며 사라지지 않았다. 반짝 떠오른 생각을 여과 없이 전했을 뿐인데 그게 필승의 이야기였다니, 보라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보라는 필승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필승아, 미안해.”

“됐어. 앞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그래, 약속할게.”

“꼭 지켜야 해. 그리고 내 부탁도 꼭 들어줘. 네 도움 없이 할 수 없는 일이거든.”

필승의 말을 듣고 보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엄청난 일이었고, 기술적으로도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전화로는 안 되고 만나서 해야 한다는 필승의 말뜻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필승은 보라의 손을 잡아끌었다.

“걷자.”

“탐정놀이라도 하려는 거야?”

“난 절박하단 말이야. 해줄 거지?”

“노력은 해보겠는데 내 힘만으로 할 수 없어서…. 암튼 한 번 해볼게.”

필승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보라는 잠시 세미를 떠올렸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바닥을 떠난 놈에게…. 그렇다면 철방이나 수일 둘 중 하나다. 보라는 결심한 듯 수일의 사무실 쪽으로 길을 잡았다.

자동차 한 대가 경찰서를 빠져나갔다. 택시에서 대기하던 필승은 그 차를 뒤따랐다. 자동차는 잠실대교를 건너 강변북로를 거쳐 한양대 앞을 지났다. 잠시 후 국립의료원 주차장에 섰다. 차에서 내린 경찰관은 병원 입구로 향했다. 필승도 택시에서 내려 경찰관의 뒤를 밟았다. 경찰관은 한 병실로 들어갔다. 필승은 그 병실 앞을 지나쳤다. 방문에 리철령이란 이름이 적혀 있었다.

“리철령?”

중얼거리며 다시 한 번 병실을 확인하려는데 문이 열렸다. 경찰관이 나왔다. 필승은 몸을 숨겼다가 다시 그의 뒤를 밟았다. 그는 길 건너 한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잠깐 기다렸다가 필승도 그곳으로 향했다.

한쪽 구석에 앉아 있던 한 무리의 사람이 일어섰다. 경찰관은 그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필승은 경찰관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 귀를 기울였다.

“상복이는 몇 학년이지?”

“고2입니다.”

“벌써 삼 년이 됐구나.”

“삼 년 전 오늘이 상복 남매와 무환이네 세 식구가 서울에 온 날입니다. 새 삶을 시작한 날이니 오늘이 생일이지요.”

음식 나르는 사람이 생일 케이크를 가지고 왔다. 전화가 걸려와 경찰관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필승의 스마트폰이 주머니에서 진동하기 시작했다. 확인 후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현금으로 계산한 후 음식점을 나왔다. 전화를 받던 경찰관의 음성이 갑자기 높아졌다.

“뭐라고?”

경찰관은 음식점 문을 열고 나와 골목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필승은 재빨리 몸을 숨겼다. 골목을 한 바퀴 돌아 지하철에서 빠져나온 인파 속으로 숨었다. 한 여자가 필승을 따르고 있었다. 그녀는 인파 속에서도 필승을 놓치지 않고 뒤를 밟는다.

보라는 필승과 시간을 맞춰 스마트폰을 들었다. 수일이 알려준 대로 중개소에 접속했다. 드디어 필승이 말해준 그 경찰관의 전화와 한 휴대전화가 연결됐다.

“오늘은 된다고 했는데 왜 오지 않았니?”

“가는 중이었습네다. 아저씨를 뒤따르는 사람이 있어서 갈 수가 없었시오.”

“뭐라고? 날 미행한다고?”

화장실 앞에서 전화를 받던 경찰관은 음식점 출입구 쪽으로 걸어 나왔다. 통화를 엿듣던 보라는 재빨리 필승에게 ‘철수’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서울말 빨리 배워야겠다.”

“알겠습네다.”

“근데 누가 날 미행했지?”

“글씨, 그기 저… 제가 그걸 어케 알갔시오?”

“하긴 그렇지.”

“젊은 남자였습네다. 키도 훤칠하고.”

보라는 다시 필승에게 ‘철수’ 신호를 보냈다. 보라의 통화종료 신호와 함께 수일의 신호가 중개소에 접속됐다. 그리고 보라의 감청 흔적을 말끔히 지웠다. 수일은 다시 한 번 청소 상태를 확인한 후 보라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잘하네. 흔적은 말끔히 지웠다.’

아홉 마디 @오메가

일러스트레이션·오동진

필승은 가장 안전한 곳은 가장 복잡한 장소라는 브로커의 말을 떠올렸다. 필승은 보라에게 장소를 일러주고 지하철을 탔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건대역에서 내려 뒤따르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 다음 뒤 칸으로 다시 탔다.

미행하던 여자는 필승이 내리자 부리나케 뒤따라 내렸다. 필승이 다음 칸으로 갈아타자 그 여자는 서둘러 타고 있던 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필승이 탄 칸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그곳에서 필승을 확인하고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강남역에 도착한 필승은 멀리서 보라의 주변을 관찰했다. 아무도 없었다. 필승은 보라에게 다가가 슬쩍 한 마디 던졌다.

“그 경찰 누구와 통화했어?”

“응, 필승이구나.”

보라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북한말을 쓰는 여자였지만 이름은 알 수 없었어.”

“북한말을 많이 써?”

“응, 이렇게. ‘글씨, 그기 저… 제가 그걸 어케 알갔시오’라고.”

보라는 필승의 어깨를 살짝 친다. 그리고 팔짱을 낀다. 다정한 연인처럼 보인다.

“필승아, 배고프지? 저녁 먹고 가자.”

미행하던 여자도 강남역에서 내린다. 필승이 멈추자 그녀도 멈춰 서서 필승을 살핀다. 필승이 한 여자에게 다가가 말을 건넨다. 미행하던 여자가 걸음을 멈춘다. 필승과 마주 선 여자는 한두 마디 말을 하다 필승에게 팔짱을 낀다. 연인처럼 다정하다. 미행하던 여자의 발걸음이 제자리에 얼어붙는다.

그 여자는 둘을 따라갈 듯하다 돌아선다. 돌아선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주간동아 2013.07.29 898호 (p6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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