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8

2013.07.29

또 한국은 ‘현금지급기’인가

미국 출구전략 따른 국내 주식시장 외인 자금 움직임 꼼꼼히 살펴야

  • 이승훈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이코노미스트 seunghun.lee@kbfg.com

    입력2013-07-29 1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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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한국은 ‘현금지급기’인가
    미국의 출구전략이 시작되려는 찰나다. 6월 하순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매달 850억 달러의 국채와 모기지담보증권(MBS)을 매입해오던 것을 축소할 수 있음을 시사했고, 시장에서는 9월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첫 단추가 꿰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출구전략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먼저 2008년 이후 전 세계로 공급되던 달러 유동성의 환수를 뜻한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풍부한 달러 유동성을 배경으로 신용공급을 확대한 신흥국의 유동성 위험 확대를 야기할 수 있다. 신용공급 측면에서 한국은 다른 신흥국보다 상황이 크게 나쁘지 않다. 부동산경기 부진으로 신용 증가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반면 신흥국으로 유입된 주식 및 채권 투자 자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위기 때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현금지급기 구실을 해온 한국 금융시장에 대한 걱정이 과도한 것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외국인 주식투자자 다변화 부족

    먼저 외국인의 국내 주식투자에 대해 살펴보자. 과거 경험을 살펴보면, 외국인의 한국 주식 매도는 포트폴리오 재조정 또는 유동성 확보 측면에서 발생했다.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 증시에서 외국인 시가총액 비중은 42%에 달했다. 외국인은 포트폴리오 내에서 한국 비중이 높아지면서 차익 실현 및 비중 조절을 위해 주식을 순매도하기 시작한다. 이 같은 추세는 2008년까지 지속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2008년 9월 세계적인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누가 또 위험에 빠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시장을 덮쳤다. 극도의 신용경색이 발생한 것이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가용한 유동성을 확보하기 시작했고, 한국 증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2007년 350억에 달하던 외국인 시가총액은 주가지수 하락과 주식 순매도가 겹치면서 2009년 초 160억 달러까지 급감했다. 당시 한국에서 자금을 회수한 주요 지역은 미국, 영국과 조세회피지역이었다.

    올해 상반기 중에는 외국인 주식투자와 관련해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다. 뱅가드 인덱스펀드가 벤치마크 지수를 변경하면서 기술적으로 주식 약 10조 원을 매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상반기 전체 외국인의 한국 주식 순매도 규모가 10조 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외국인의 한국 주식 매도 규모가 컸던 것은 아니다. 다만 6월에만 5조1000억 원의 외국인 주식 순매도가 집중되면서 자금 이탈에 대한 불안감이 확대됐다. 더구나 하반기 미국의 자산매입 규모 축소가 예상되면서 외국인의 자금 유출 우려도 잠재된 상태다.

    특히 외국인 주식투자와 관련한 불안요인으로는 그 규모가 작지 않다는 점과 미국 비중이 높다는 점을 들 수 있다. 2009년 이후 외국인 주식 순매수가 이어지면서 외국인 시가총액은 2010년 이미 전고점을 돌파했으며, 올해 7월 기준 380조 원으로 증가했다. 외국인 시가총액 비중은 31%로, 역사적 고점보다 낮긴 해도 꾸준한 상승세다.

    2009년 이후 급증한 외국인 채권투자

    또한 외국인의 주식 보유잔액 가운데 미국 비중이 높다. 2009년 이후 아시아와 중동계 자금이 국내 증시로 각각 11조 원과 5조5000억 원 유입됐으나, 이 중 미국 비중은 2008년 말 37.8%였던 것이 2013년 6월 말 38.8%로 오히려 소폭 증가했다. 이처럼 미국 의존도가 높다는 것은 미국의 유동성 환수에 취약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그래프1’ 참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로 채권시장에서도 자금 20조 원이 해외로 유출됐다. 그해 외국인의 국내 채권 보유잔액이 55조 원 수준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작은 규모는 아니다. 당시 선물환 순매도 포지션과 연계해 차익거래 차원에서 단기채권을 매수했던 외국인들은 신용경색이 발생하자 손해를 감수하고도 국내 채권을 매도했다. 2009년 초 35조 원 수준으로 떨어졌던 외국인 채권 보유잔고는 2013년 6월 말 최초로 100조 원을 돌파했다. 전체 채권시장에서 외국인의 비중은 7.5%로 높지 않으나, 국채와 통안채를 각각 13.8%, 23.0% 보유하게 됐다.

    금융위기를 전후로 일어난 외국인의 채권투자 변화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정부기관과 해외펀드의 국내 채권 보유 비중이 증가했다. 사실 2009년 이전까지도 외국 정부기관의 국내 채권 보유는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2012년 말 외국 정부기관의 국내 채권 보유 규모는 35조 원으로 전체 외국인 투자의 38.7%를 차지했다. 또한 템플턴 펀드의 국내 채권투자가 확대되면서 투자회사 비중도 34.2%를 기록하고 있다.

    둘째, 지역별 구성도 크게 변했다. 2008년 지역별 채권투자자 구성의 경우, 유럽과 태국이 각각 30.2%와 24.1%였으나, 올해 6월 말에는 10.7%와 7.6%로 하락했다. 그 대신 템플턴 펀드의 영향으로 미국과 룩셈부르크 비중이 같은 기간 9.5%와 5.3%에서 20.8%와 16.8%로 상승했다. 아시아에서도 중국과 말레이시아가 0.2%, 0.1%에서 12.8%와 8.0%로 상승했다. 특히 아시아 자금의 약 79%가 정부기관 보유분이다(‘그래프2’ 참조).

    또 한국은 ‘현금지급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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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째, 2008년 이전 차익거래 성격의 단기투자 일변도의 투자 패턴에서 중·장기 투자가 확대됐다. 이는 잔존만기 8~10년 국채에 주로 투자하는 해외 정부기관의 비중 증가와도 연관성이 높다.

    이처럼 외국인 채권투자자의 구성이 다양화, 장기화한 점은 긍정적이지만, 채권시장은 근본적으로 외국인 자금 이탈에 취약하다는 특징이 있다. 주식은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면 주가가 급락해 더는 매각을 지속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하게 된다. 반면 채권은 금리 급등이 없는 한 큰 손해 없이 매각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금리 급등에 따른 실물경기 둔화를 피하려 할 것이므로, 외국인은 필요하다면 안정적으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만기 보유 성향이 높은 아시아 정부기관의 비중이 높아졌다고는 하나, 외국인 채권 보유 규모가 증가하고 민간 보유 비중이 여전히 절반을 크게 상회한다.

    과거 글로벌 금융 불안이 발생했을 때, 한국 금융시장은 외국인의 현금인출기 구실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한국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이 자유화되면서 다른 신흥국에 비해 매각 및 태환이 한결 자유롭다는 것을 뜻한다.

    또 한국은 ‘현금지급기’인가

    연내에 양적완화 규모를 축소할 수 있다고 밝힌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발언의 영향으로 금융시장이 이틀 연속 출렁였던 6월 21일, 서울 중구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주가와 환율 움직임을 검토하고 있다.

    주요 신흥국의 금융시장 규모를 간단히 비교해보자. 한국 증시의 시가총액은 중국과 인도를 제외하면 가장 크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의 증시 시가총액은 한국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한국의 국채시장 규모도 신흥국 가운데 중국, 브라질, 인도에 이어 네 번째로 크다. 다른 아시아 신흥국은 한국 국채시장 규모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외국인의 신흥국 투자 규모는 어떨까. 국제통화기금(IMF)의 2011년 말 외국인 포트폴리오 투자 잔액 자료를 보면, 중국과 브라질이 5020억 달러와 4970억 달러로 가장 많고 한국이 4040억 달러로 뒤를 잇는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 아시아 국가의 외국인 포트폴리오 투자 잔액은 약 1000억 달러 또는 그 이하다. 외국인에게 한국은 위기 때 자금을 환수하기 편하고 환수할 자금도 많은 장점을 지닌 시장인 것이다.

    대내외 금리 동조화 성향 강화

    지금까지 외국인 주식·채권 자금의 이탈 가능성을 위주로 살펴봤다. 그러나 외국인 자금 이탈은 글로벌 신용경색과 금융기관의 유동성 부족을 전제로 한다. 이 같은 사태가 발생하기 전 한국 주식 및 채권 시장은 다른 신흥국에 비해 매력적일 공산이 크다.

    연초부터 동남아시아 증시가 상승했으나 한국 주식시장은 보합세를 유지하면서 저평가됐다. 국내 채권은 미국의 출구전략 우려가 부각되면서 차익거래 유인이 확대됐다. 또한 한국의 경기 펀더멘털은 상대적으로 양호하다. IMF는 내년 아세안의 경제성장률이 둔화하고 중국은 소폭 반등에 그칠 것으로 전망한 반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p 상승하리라고 예상했다. 올해 경상수지 흑자가 530억 달러로 전망되는 등 원화가 강세를 보일 개연성이 크다는 점도 외국인에게는 메리트가 있다.

    다만 외국인의 채권투자가 확대되면서 금리 하락기에는 국내 금리를 더욱 낮추고 금리 상승기에는 금리를 더욱 높일 개연성이 있다. 2010년 이후 한국의 국고채 금리가 외국인 채권투자 확대와 함께 추세적인 하락세를 보인 바 있다. 6월 말 버냉키 의장이 자산매입규모 축소 가능성을 언급한 이후 한국의 금리 상승폭은 미국보다 컸다. 이와 같은 대내외 금리 동조화가 강화됨에 따라 한국 경제는 금리 상승 위험에 크게 노출된 것이다.

    주요 투자은행들은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현재 2.4% 수준에서 내년 3%를 상회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국내 경제 여건이 충분히 개선되지 못한 상황에서 대외 여건 변화에 따라 금리가 상승하면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채권 운용 손실 외에도 기업 및 가계 부실 증가, 조달·운용 만기 불일치에 따른 유동성 문제 등에 대비한 체질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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